[팩플] “달리는 쿠키, 역사만 300쪽…게임사 아닌 IP기업”

중앙일보

입력 2021.06.25 06:00

업데이트 2021.06.25 11:47

마녀의 오븐을 탈출한 쿠키가, 6년 내리 적자이던 게임회사 데브시스터즈를 로켓에 태웠다. 애니팡에 이은 국민게임 '쿠키런 포 카카오(이하 쿠포카, 2013년 출시)'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 없이 4000원대까지 내려앉은 주가(2020년 3월 기준)는 1년새 3448% 뛰었다.

팩플인터뷰, 쿠킹덤 이은지·조길현 데브시스터즈 PD

올해 1월 출시한 모바일 게임 '쿠키런: 킹덤(이하 쿠킹덤)' 덕이다. 현재 이 회사 주가는 9만~10만원대.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475% 급등했다(183억원→1054억원). 쿠킹덤 개발을 총괄한 이은지·조길현 PD 겸 데브시스터즈 킹덤 대표를 팩플이 만났다.

올해 최고 인기 게임으로 각광받고 있는 쿠키런 킹덤 개발한 데브시스터즈 이은지, 조길현 PD(왼쪽부터)가 25일 서울 강남구 데브시스터즈 사무실에서 쿠키런 캐릭터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올해 최고 인기 게임으로 각광받고 있는 쿠키런 킹덤 개발한 데브시스터즈 이은지, 조길현 PD(왼쪽부터)가 25일 서울 강남구 데브시스터즈 사무실에서 쿠키런 캐릭터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요즘 모바일 게임의 주류는 전투형 MMORPG(다중접속 온라인역할수행 게임)인데, 캐주얼 게임으로선 이례적인 성과다.
쿠킹덤은 캐릭터를 모아 전투시키는 수집형 롤플레잉게임(RPG)과 마을을 운영하는 건설형 소셜네트워크게임(SNG)이 섞여 있다. 기존의 장르나 흥행 공식은 신경쓰지 않았다. 게임 유저(이용자)들은 '나는 20대 남성이니 하드코어한 RPG 게임만 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이 재밌어 보이고, 주변에서 많이들 하면 해본다. 유저들이 보고 싶어할 장면이 뭔지에 집중했다.
새로운 IP를 개발하지 않고 8년 전 쿠키런 IP를 계속 끌고 가는 이유가 있나.
우리가 쿠키런을 너무 사랑한다. '이대로 쿠키런 IP를 버리긴 아깝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2016년 10월에 2박 3일 제주도 합숙회의를 떠났는데, 뛰고 쓰러지고 고생만 한 우리 쿠키들이 평온한 왕국에서 복작복작 살아가는 모습,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는 모습 등을 다음 게임에 담아보자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쿠킹덤의 기초가 그때 나왔다. 쿠키런의 세계관을 확장하면 게임에서도 '퀀텀 점프'를 할 수 있겠다고 봤다.
2016년 10월 떠났던 2박 3일간의 제주도 합숙회의에서 탄생한 쿠키런: 킹덤의 초기 기획 스케치. 사진 데브시스터즈

2016년 10월 떠났던 2박 3일간의 제주도 합숙회의에서 탄생한 쿠키런: 킹덤의 초기 기획 스케치. 사진 데브시스터즈

먹히지 않기 위해 탈출한 쿠키라는 기본 설정이 재밌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호감을 살 소재를 찾다가, 이지훈 대표가 서구권 동화 '진저브레드맨'을 들고 왔다. 사람처럼 생긴 쿠키에 인간사 삼라만상을 담아보자면서. 쿠키 입장에서 보면 '먹히는 운명'은 야속하고 가혹하지 않겠나. 불합리한 상황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을 쿠키에 투영했다.

역사만 300쪽…이토록 심오한 쿠키의 세계 

쿠키에 삼라만상을 담는다?
우리가 만든 쿠키 120여 종의 참고자료는 70억 명의 지구인이다. 캐릭터마다 행동 원리가 다르다. 뭘 좋아하고, 어떻게 자랐고, 어떤 걸 참을 수 없고, 무슨 동력으로 살아가는지. 외형, 갖고 다니는 물건, 대사 등에 쿠키별로 제각각인 성격을 반영했다. 공고하게 설정을 짜두니 나중엔 캐릭터가 알아서 움직였다. 다른 쿠키들과 관계도 맺고, 갈등도 빚고, 팀도 짜고.
예를 들면?
포도송이 모양의 땋은 머리를 한 연금술사 쿠키는, 숙성된 포도주스를 달고 사는 뱀파이어 쿠키의 여동생이다. 싱싱한 포도와 숙성된 포도니까(웃음). 에스프레소맛 쿠키와 라떼맛 쿠키는 함께 커피마법 논문을 쓴 사이지만, 각자 순수마법과 응용마법으로 추구하는 길이 달라진 마법학교 선생님들이다. 악역에도 사연이 있다. 최종 보스인 어둠마녀 쿠키는 인간이 '먹기 위해' 쿠키를 만들었다는 걸 알고 세상을 전복시키기 위해 사는, 삐뚤어진 캐릭터다.
쿠키런: 킹덤의 남매 쿠키인 연금술사맛 쿠키와 뱀파이어맛 쿠키 소개. 사진 데브시스터즈

쿠키런: 킹덤의 남매 쿠키인 연금술사맛 쿠키와 뱀파이어맛 쿠키 소개. 사진 데브시스터즈

쿠킹덤은 고대 쿠키왕국에서 시작한다. 세계관이 정교한데.
어느 날 성(城)을 그리던 원화가가 '성의 깃발, 석상, 스테인드글라스에 다 역사가 깃들어 있을텐데 배경 지식도 없이 어떻게 그리냐'고 하더라. 그 말 무시하고 '예쁘게만 그려주세요'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중요한 질문 같았다. 그 때부터 두 달 간 300쪽짜리 역사서와 세계 지도를 만들었다.
왜 중요해보였나.
사람들이 가상세계를 사랑하려면 납득하고 몰입할 수 있는 디테일, 즉 역사와 문화 같은 인간 세상의 맥락이 필요하다. 가령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은 종족의 언어 체계나 동물 사전까지 있지 않나. 세계관을 정립해두니 게임 개발의 모든 단계에서 길을 잃지 않았다. 막힐 때마다, 새로운 콘텐트를 기획할 때마다 역사와 지도를 펼쳐놓고 '이번엔 슈가오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하는 식으로 세계관의 도움을 받았다.
쿠키런: 킹덤의 세계지도를 그리며 내부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모습. 사진 이은지 PD

쿠키런: 킹덤의 세계지도를 그리며 내부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모습. 사진 이은지 PD

개발진이 참고하는 역사의 요약판인 쿠킹덤 한정판 아트북(절판)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쿠키 왕국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닌자맛 쿠키', 퓨어바닐라맛 쿠키', '마들렌맛 쿠키' 등 개성 뚜렷한 캐릭터 설정은 물론 쿠키들의 역사가 시작된 고대 5개 왕국의 건국 신화, 식생, 발달한 산업, 식문화, 건축 양식, 주민들의 특징, 명절 등이 빼곡히 적혀있기 때문.

세계 지도도 톡톡 튄다. 태초의 마녀가 구워낸 거대한 반죽 대륙에는 설탕 빙하가 녹아 형성된 피오르, 크림케이크 산맥, 사워드레싱강 등 달콤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쿠키런: 킹덤의 세계지도. 가로로 된 지도를 세우면, 왕관 쓴 주인공 '용감한 쿠키' 모양. 사진 데브시스터즈

쿠키런: 킹덤의 세계지도. 가로로 된 지도를 세우면, 왕관 쓴 주인공 '용감한 쿠키' 모양. 사진 데브시스터즈

"한국의 포켓몬이 목표" 

제작기간 4년 동안 주가와 실적이 바닥이었다. 게임을 빨리 내거나 간접광고(PPL)를 하는 등 타협할 수도 있었는데 왜 안 했나.
솔직히 '완성도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니냐, 좀 빨리 내면 어떠냐'는 외부의 압박이 컸다. 근데, 짧게 한 번 돈 벌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회사의 꿈이 명확했다. 사람들 삶 속에 오랜 친구로 남아 50년, 100년 가는 IP를 만들자는 것. 단기적 이익을 위해 IP를 소모해버리는 건 회사의 성장에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봤다.

100년 가는 IP라. 롤모델이 있나.
가장 닮고 싶은 건 '포켓몬스터'다. 게임에서 출발했고, 사람들이 몰입할 만한 세계관이 있고, 귀여운 캐릭터가 일상 곳곳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쿠키런과 같은 '런 게임'(run game)인 '마리오'도 많이 참고한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에선 세계관의 깊이, 마블이나 디즈니에선 캐릭터를 소중하게 유지하는 모습 등을 배운다.
쿠키런(데브시스터즈)와 무신사 입점사 '이벳필드' 콜라보 제품 [사진 무신사]

쿠키런(데브시스터즈)와 무신사 입점사 '이벳필드' 콜라보 제품 [사진 무신사]

쿠키런 IP는 2009년 '오븐브레이크'를 시작으로 '쿠포카', 'LINE 쿠키런', '쿠키런: 퍼즐 월드' 그리고 '쿠키런: 킹덤'까지 여러 게임에 꾸준히 등장했다. 이 IP를 경험한 글로벌 누적 유저만 1억 5000만 명. 데브시스터즈는 이달 7일 쿠키런 IP 신사업을 이끌 신규법인 '쿠키런 키즈'와 '마이 쿠키런'을 설립했다. 아동 콘텐트 및 굿즈 사업을 하는 법인이다. 최근에는 무신사(의류), 빙그레(식품) 등과 협업하며 생활 속에 쿠키 캐릭터를 새겨 넣고 있다.

쿠키런 IP, 앞으로 어떻게 키울 건가.
아동 학습만화와 굿즈 사업은 2013년부터 했다. 앞으로는 웹툰·애니메이션·공간사업 등을 하려 한다. 아직은 극초기 단계다. 게임개발사를 넘어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콘텐트 기업이 목표다. 우리의 모토인 '세상을 즐겁게!'에 걸맞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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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박민제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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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6월 8일 팩플 뉴스레터로 구독자들에게 발송된 "'IP의 힘' 이 정도? 1년 새 주가 35배 쿠키"의 인터뷰 버전입니다. 전문 기자들의 분석과 인사이트, 자세한 개발 스토리가 추가된 팩플 뉴스레터 전문을 보고 싶으시면 이메일로 구독 신청하세요. 요즘 핫한 테크기업 소식을 입체적으로 뜯어보는 ‘기사 +α’가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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