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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구조사' 때려죽인 구조단장···CCTV 보면 상상초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검찰이 지난해 12월 24일 경남 김해의 한 사설 응급구조단에서 부하직원인 응급구조사를 때려 숨지게 한 구조단장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24일 창원지법 등에 따르면 검찰은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43)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1시쯤 김해의 한 사설응급구조단 사무실에서 부하직원인 B씨(44)를 주먹과 발로 장시간 폭행했다. 이어 거동이 불가능한 B씨에 대해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9시간 넘게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 방치해 25일 오전 10시 30분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초 경찰은 이 단장을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이 보강수사를 벌인 결과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사건은 하루 전인 12월 23일 B씨가 낸 차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 대해 A씨가 불만을 품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폭행 현장을 녹음한 음성파일에서 A씨는 “너 같은 XX는 그냥 죽어야 한다”“너는 사람대접도 해줄 값어치도 없는 개XX야”라고 말하며 여러 차례 B씨를 때렸다. 그런 뒤 A씨의 폭행으로 B씨가 넘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 뒤 “팔로 막아?”“안 일어나”“열중쉬어, 열중쉬어”“또 연기해”라는 A씨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B씨는 그때마다 “죄송합니다”“똑바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울먹였다.

 응급구조사가 사망하기 한달 전 쯤 단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모습. JTBC

응급구조사가 사망하기 한달 전 쯤 단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모습. JTBC

폭행 이후 A씨 부부 등의 행동도 상상을 초월했다. A씨 등은 구타를 당해 몸을 가누기도 힘든 B씨를 사무실 바닥에 방치한채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 뒤 이들은 다음날 오전 9시가 넘어 B씨를 구급차에 태워 B씨 집 쪽으로 이동했다. 사무실 외부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보면 B씨는 구급차 안에서 거의 의식이 없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검찰 구형이 나온 뒤 숨진 직원의 여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빠가 사망한 뒤 아버지까지 밤낮으로 잠도 못 주무시고 시름시름 앓다가 뇌출혈로 돌아가셨다”며 “A씨는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죽인 피의자인 만큼 징역 300년, 아니 무기징역까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직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허점이 많아 응급구조사들의 인권 침해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피해를 보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환자 이송을 위한 인력과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설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옮기던 중 숨지는 사람만 매년 700명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이송단 등에 종사하는 응급구조사들은 이날 경남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병원 간 전원 제도 개편을 촉구했다. 이들은 “민간 구급차를 이용해 이송된 환자가 구급차 내에서 심정지가 발생해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 사고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운전자를 제외하고 2명이 동승하는 119구급차와 달리 사설 구급차에는 보통 1명이 환자를 관리하면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5일 숨진 응급구조사가 폭행을 당한 뒤 구급차에 태워져 자신의 집으로 이동하기 직전의 모습. JTBC

지난달 25일 숨진 응급구조사가 폭행을 당한 뒤 구급차에 태워져 자신의 집으로 이동하기 직전의 모습. JTBC

그러면서 “병원 간 환자 전원은 분명하게 의료기관과 의료인의 의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경제적 효율성만을 중시해 정부가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시행해 국가가 민간이송업자에게 병원 간 환자 전원 전체를 떠넘기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정부는 환자를 적절히 이송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구급차 이송비 등 전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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