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날짜 지난 버터 기내로? 업체 간부 "뜯어써라" e메일

중앙일보

입력 2021.06.25 05:00

업데이트 2021.06.25 06:45

국내 대형 항공사에 기내식을 납품하는 중견기업이 유통기한이 지난 기내식용 버터를 폐기하지 않고 재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유럽에 본사를 둔 기내식 납품업체 G사의 전‧현직 직원은 중앙일보 기자에게 “G사가 유통기한이 지난 3월까지로 표기돼있는 버터를 지금까지 기내식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대형 항공사에 탑승하는 승객이 먹는 기내식은 전량 G사가 납품하고 있다.

지난해 7월 G사 사내 메일을 통해 공유된 '1회용 버터 뜯기 작업' 추정 사진. [G사 직원 제공]

지난해 7월 G사 사내 메일을 통해 공유된 '1회용 버터 뜯기 작업' 추정 사진. [G사 직원 제공]

유통기한 지난 일회용 버터 모아서 재활용

폭로 내용에 따르면 G사는 이코노미석 기내식에 제공되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1회용 버터를 납품한다. 이 버터의 유통기한이 지난 뒤에 포장을 일일이 뜯어 한곳에 모은 뒤 기내식에 들어가는 빵이나 음식을 만드는 데 다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제보자들의 주장이다.

G사에서 사용하는 1회용 버터.

G사에서 사용하는 1회용 버터.

G사가 버터를 납품받은 건 지난해 초라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말 버터를 대량으로 주문했으나 코로나19 이전까지 하루 2만5000~3만개가량 쓰이던 1회용 버터는 지난해에는 일일 사용량이 1000개 미만에 그쳤다고 한다. 버터의 유통기한은 약 1년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G사 측은 “버터 제조사로부터 유통기한을 연장해도 된다는 확인을 받았다. 철저히 품질 관리를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버터 제조사에서 최초에 설정한 유통기한을 일단 넘겼다는 점에서 식품 당국의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최고위층 “1회용 버터 뜯어 써라” e메일

제보자들에 따르면 유통기한이 2021년 3월 1일까지로 표기된 버터의 재고가 줄지 않자 G사 최고위층은 사내 팀장급 관리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발송한 메일은 “재고를 소진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1회용 버터의 포장을 뜯어 베이커리와 식당에서 사용하도록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버터 재고는 수백만개였고 당시엔 유통기한은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지난달 17일 기내식 업체인 G사 창고에 보관된 1회용 버터 박스. 유통기한이 3월 1일로 표시돼 있다. [G사 직원 제공]

지난달 17일 기내식 업체인 G사 창고에 보관된 1회용 버터 박스. 유통기한이 3월 1일로 표시돼 있다. [G사 직원 제공]

그러나, G사의 ‘버터 뜯기 작업’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G사 직원들에게 공지된 내용에 따르면 매주 월‧수‧금 작업을 진행할 부서까지 지정됐다고 한다. 23일엔 인사팀, 25일엔 재무팀이 작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버터뿐 아니라 발사믹 오일도 작업 대상에 추가됐다는 게 제보자들의 주장이다. 버터와 마찬가지로 1인분으로 포장된 것을 뜯어 기내식에 사용하라는 취지다. G사의 한 직원은 “1회용 버터의 포장을 제거하고 한 곳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오염될 가능성이 있어서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신경 남부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기내에서는 음식으로 인한 질병이 발생했을 때 응급조치를 하기 어렵고, 조리한 것을 운반하다 보니 위생에 특히 신경써야 하는 게 기내식”이라며 “버터를 냉동 보관하면 일반적으로 유통기한을 더 늘릴 수는 있지만, 1회용 버터를 손으로 까는 과정에서 오염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G사 “사실 아니다. 유통기한 공식 연장”

G사 측은 “유통기한이 지난 버터를 사용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G사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제조사로부터 버터를 영하 19℃에 보관했을 때 6개월 더 사용해도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 실질적인 유통기한이 9월까지인 것”이라며 “그 기간이 지나면 즉각 폐기할 예정이다. 실제 유통기한이 지난해 11월까지였던 버터는 6개월이 더 지나기 전에 폐기했다”고 말했다.

G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재고 소진’의 해법으로 진행된 작업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재고가 많이 쌓여 이를 소진하기 위한 차원이다. 포장을 뜯은 일회용 버터는 보관하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양의 버터만 포장을 뜯고 녹여서 빵을 만들거나 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며 “사용하기 전에 미생물 검사를 모두 거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거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보자들과 업계 전문가들은 유통기한 지난 재사용 버터의 안정성, 비즈니스석 기내식 등 다른 용도로도 사용됐는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 이유로 승객 안전 도외시” 지적 

지난해 1월까지 하루 평균 3만2000여 개의 기내식을 만들었던 G사는 코로나19 이후 일일 생산량이 1500개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 구조조정을 시작해 10여 명이 퇴사했고, 이어진 휴업과 업무 과중으로 퇴사가 잇따랐다. 하청업체를 포함해 2019년 말까지 1000여명이었던 임직원은 이달 기준 300여명으로 줄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에서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기내식의 위생과 품질 관리 업무를 맡았던 직원은 대부분 회사를 나갔고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 제보자는 “관련 업무를 기획이나 시설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담당하는 식이었다. 반면 G사 사장과 부사장의 연봉은 인상됐다”고 주장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회사의 어려움을 핑계로 승객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직원들의 희생으로 회사와 경영진의 안위를 챙긴 행위에 대해서는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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