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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최저임금 과속에 무너진 ‘사장님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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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경제에디터

주정완 경제에디터

대한민국은 ‘사장님’의 나라다. 말이 좋아 사장님이지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겨운 영세 자영업자가 대부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24.6%(2019년 기준)에 이른다. 취업자 네 명 중 한 명이 자영업자란 얘기다. 미국(6.1%)이나 일본(10%)은 물론 OECD 평균(16.8%)을 훨씬 웃돈다.

벼랑 끝 내몰린 자영업자 한숨뿐 #“소주성 말하는 사람 다 사기꾼” #최저임금 지역·업종 차등화해야

장사가 잘되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폐업 직전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도 많다. 최근에는 서울 명동·동대문·이태원 등 중심상권에도 빈 점포가 속출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해마다 80만 명 넘는 개인사업자가 국세청에 폐업 신고를 한다. 폐업은 안 했어도 매일 한숨만 쉬며 근근이 버티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에 집중된 고용 충격은 외환위기 당시와 유사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직원을 두고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시기와 비슷한 수준이란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자영업자들에겐 끔찍한 악몽이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저녁 장사 위주였던 일부 업종에 ‘저녁 손님이 없는 삶’을 안겨줬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자영업자뿐 아니라 아르바이트 직원에게도 충격이었다. 상당수 자영업자는 인건비 부담으로 직원을 내보내거나, 주휴수당이 없는 주 15시간 미만 아르바이트로 돌렸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중에선 사람을 쓰는 대신 자동화 기기를 도입한 곳도 많았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횟집 주인 함운경씨가 “소득주도성장을 말한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라고 한 건 자영업자 대다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사이다 발언’이었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시간당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올해 8720원으로 올랐다. 지난 4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35%다. 그나마 지난해(2.9%)와 올해(1.5%)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지 않아 자영업자들이 다소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최저임금이다. 24일 공개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최저임금 요구안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격차가 커 보인다.

노동계는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이번에야말로 시간당 1만원을 넘기고 말겠다는 기세다. 청와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문 대통령은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한국 정부는 장시간 노동시간을 개선하고 최저임금을 과감하게 인상해 소득주도성장을 포함하는 포용적 성장을 추구했다”고 자랑했다. 한동안 수면 아래에서 잠잠하던 소득주도성장이란 참담한 실패작이 되살아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현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얼마 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맡았다. 그는 청와대 재직 시절 “최저임금 탓에 일자리가 대폭 감소했다는 주장은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아직도 이렇게 주장하는지, 만일 그렇다면 통계청의 고용통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묻고 싶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8년 8월 국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임금을 지불해야 되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오히려 늘었다. 지금 자영업자가 극히 어려운 부분은 고용원이 없는, 즉 규모가 작은 자영업자들 문제다.” 실상은 전혀 딴판이었다. 지난 4년간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28만 명 넘게 줄었다. 같은 기간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5만 명 증가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워진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직원을 내보내고 ‘나홀로 사장님’이 되거나, 아예 장사를 접었다는 얘기다. 그러는 사이 오랜 시간 한 곳에서 일하는 일자리는 줄고 ‘쪼개기 알바’만 대폭 늘었다. 지난 4년간 17시간 이하 취업자 수가 88만 명이나 증가한 배경이다. 일시적으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던 시기도 있기는 했다. 이건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에 의한 착시 효과였다는 게 최승재 전 소상공인연합회장의 설명이다.

현 정부가 자영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소화하는 게 맞다. 동시에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지역이나 업종·연령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것이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에서도 최저임금 차등화를 시행 중이다. 상식적으로 서울의 1만원과 지방 소도시의 1만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 수도권에 있는 기업이 최저임금이 저렴한 곳으로 옮겨간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제발 자영업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주정완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