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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는 DNA가 성장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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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안홍상 일진하이솔루스 대표이사는 “중견기업에는 큰돈인 127억원을 투자해 모든 인증시험을 할 수 있는 R&D 센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의 내재화를 위해서라고 한다. 김상선 기자

안홍상 일진하이솔루스 대표이사는 “중견기업에는 큰돈인 127억원을 투자해 모든 인증시험을 할 수 있는 R&D 센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의 내재화를 위해서라고 한다. 김상선 기자

일진하이솔루스 안홍상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깜짝 방문 #세계 최고 품질의 수소탱크 생산 #당분간 따라올 해외 경쟁사 없어 #‘소부장’ 탄탄해야 수소차도 가능

지난 25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뜻밖의 장소에 나타났다.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서 수소탱크를 생산하는 일진하이솔루스 공장. 도청·시청에서 보고받는 판에 박힌 방식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이 대표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찾은 곳이다. 이 회사 안홍상(53) 대표이사는 “(서울) 과학고를 거쳐 (하버드대) 컴퓨터 과학을 공부해서인지 테크놀로지에 대해 박식했다”면서 “전문가 수준의 날카로운 질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왜 이곳을 찾았을까. 그 의문은 이 대표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동료 의원들의 감탄사에서 풀렸다. 안 대표의 설명을 듣고 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게 된 일행들 사이에선 “이런 곳에 이렇게 대단한 기업이 있는 줄 몰랐다”는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이들이 놀란 이유는 수도권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미래산업의 총아로 떠오른 수소 전기차(이하 수소차)의 핵심인 수소탱크가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수소차는 배터리를 사용하는 배터리 전기차(이하 전기차)와 함께 친환경 자동차의 간판으로 떠오르고 있다.
두 쪽 모두 전기로 차량을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특성은 꽤 다르다. 특히 수소차의 관건은 수소탱크의 안전성과 경제성이다. 수소탱크는 자칫 폭발할지 모른다는 선입견과 함께 전기를 만드는 원료인 수소 확보가 의문시되면서 성장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급반전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이 수소차를 핵심적 친환경 자동차로 육성하고 나서면서다. 한국을 필두로 유럽·미국·일본·중국이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소차 도입을 확대한다. 2025년 120만대에 달하고 2030년에는 560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안 대표는 이같이 급성장하는 수소산업의 적임자로 꼽힌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를 거쳐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화학재료 박사 학위를 받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 전문가다. 이런 전문성을 토대로 맥킨지와 올리버와이만에서 10년간 경영컨설팅을 한 뒤 최근 10년간 현대모비스에서 부품 분야를 담당했다. 지난 1월 일진하이솔루스 합류 직전까지 약 4년간 런던에 주재하면서 격변하는 유럽의 수소차 시장 동향을 직접 지켜봤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둘째)가 안홍상 대표로부터 수소탱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둘째)가 안홍상 대표로부터 수소탱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

-왜 회사가 큰 주목을 받고 있나.
“수소차 생산에 없어선 안 될 핵심 부품을 만들고 있다. 바로 수소탱크다. 수소탱크는 수소차 가격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가격이 비싼 수소차의 핵심 부품이다. 수소를 고밀도로 주입해야 차량의 무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차 성능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진하이솔루스는 ‘타입 4’(Type 4)라고 불리는 차세대 용기를 국내 최초로 양산하고 있다. 타입 4는 전 세계에서 현재 일진하이솔루스와 도요타자동차 단 2개사만 생산할 수 있다.”

-일진복합소재에서 최근 일진하이솔루스로 바꾼 회사 이름은 수소(hydrogen)와 해결(solution)의 합성어다. 일진하이솔루스가 수소탱크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의미를 담았나.
“해외에서도 우후죽순처럼 수소탱크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연간 4만8000개의 수소탱크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당분간 따라올 경쟁자가 없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뭔가.
“수소탱크는 가벼우면서도 안전성이 높아야 한다. 현재 일진하이솔루스는 우리를 추격하는 경쟁사 대비 5~8년 정도 기술이 앞서 있다. 강철을 사용해 만드는 Type 1은 사용압력이 300기압에 그친다. 일진하이솔루스가 개발한 Type 4는 탄소섬유 복합재와 비금속 재질 소재를 사용해 Type 1에 비해 용기 무게를 3분의 1 이하로 줄였다. 사용압력은 최대 700기압에 달한다. 같은 크기의 용기라면 주입되는 수소의 양이 많이 늘어난다.”

통바베큐, 탱크 뚫는 철갑탄 실험 통과

-성능이 높아진 만큼 안전성은 보장되나.
“최소 15가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열을 가해도 견디는지 검증하기 위해 수소를 채운 채 통바베큐 굽듯 한 시간 동안 가열 시험을 한다. 탱크를 뚫는 철갑탄 시험은 구멍이 나더라도 폭발하지 않고 가스만 안전하게 새어 나오는지 검증하는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일진하이솔루스의 수소탱크는 경제성과 안전성을 모두 확보했다.”

-수소차 생태계 전체 상황은 어떤가.
“수소차는 수소 생산부터 이송 장비, 충전소, 저장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그 틀이 갖춰지면서 본격적인 수소차 시대가 오고 있다. 2050년에는 수소로 일으키는 전기가 전통적인 전기를 대체하는 핵심 에너지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친환경 에너지의 엔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대표 방문 때 박성일 완주군수가 요청한 대로 완주 테크노밸리가 수소특화 산업단지로 지정되면 수소 밸류 체인이 구축된다.”

-지금은 테슬라 같은 전기차가 눈에 많이 띈다. 전기차 대비 장점은 무엇인가.
“전기차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서 항공기·트럭·선박·기차 같은 대형 모빌리티에는 대응하기 어렵다. 드론도 마찬가지다. 전기 배터리는 같은 용량의 수소연료전지보다 전력소모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체공 시간이 짧다. 미래형 고출력 모빌리티에는 수소차가 압도적 강점을 보인다.”

-장점을 살릴 계기가 있어야 할 텐데.
“수소차는 이산화탄소(CO2) 감축과 직결돼 있다. 유럽에서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2030년 이후 아예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전기차만으로는 대응이 어렵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수소차 의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럽부터 중국까지 수소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한국은 보급 속도가 느려 보인다.
“지금까지 생태계 구축에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수소차의 연료인 수소를 확보하는 기술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고, 충전소도 늘어나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충전소에 수소를 운반하는 튜브 트레일러 제작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충전소 건설과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기술·현대차·정부지원 3박자가 성공비결

-회사 직원이 178명에 불과하다. 어떻게 이런 역량을 보유하게 됐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먼저 기술집약적인 기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진하이솔루스의 모기업인 일진그룹은 오랫동안 소재를 만들어왔다. 소재산업은 ‘많이 만들어 본 놈을 못 당한다’는 말이 있다. 일반 제조업과는 달리 소재는 실패해도 계속 도전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DNA가 있다. 창업자(허진규 회장)의 지론이다. 둘째는 현대차의 전폭적인 견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가 질주할 때 현대차는 수소차 육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수소탱크를 집중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셋째는 정부의 육성 전략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우리는 이미 2003년부터 고성능 수소탱크 개발에 착수했다. 연구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정부 과제로 추진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개발 기간이 짧았다는 점도 놀랍다.
“거듭 말하지만, 소재는 노동집약 단계를 벗어난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우리나라도 소재 산업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만큼 기술력이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수소차 개발 전략에 맞춰 2003년부터 수소탱크 개발에 착수했고, 2014년 현대차의 투싼 개조 차량에 수소탱크를 탑재할 수 있었다. 2018년 수소 전용차 넥소가 나오면서 수소탱크 양산이 본격화했다. 지금까지 수소차에 들어간 수소탱크는 모두 6만 개에 달한다. 단 한 번도 수소탱크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개발에 착수해 양산까지 10년 세월이 걸렸지만, 내부에 축적된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수소탱크를 개발할 수 있었다.”

-한국에 제대로 된 강소기업이 등장한 느낌인데, 해외 수요 전망은 어떤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해외 수요도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더구나 우리가 만드는 수소탱크는 국가 보호 기술로 지정되면서 기술 격차는 압도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관심을 끌 것 같다.
“올해 8월 한국거래소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소차 수요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상장하게 됐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수소탱크와 튜브 트레일러를 포함한 수소사업 이외에 환경사업의 성장 가능성도 크다. 환경사업은 경유차부터 건설기계까지 매연 저감기술 부문에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최근 중시되고 있는 환경·사회·기업 책임(ESG)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