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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재준의 의학노트

강의 평가와 진화의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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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 의학교육실장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 의학교육실장

대학 교수는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요즘 강의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녹록하지 않다. 모든 강의가 학생들의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가끔은 녹화되어 동료 교수들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늘 좋은 점수를 받는 교수들은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렇지만 썩 좋지 않은 점수를 받는 교수들은 학생들의 평가가 강의 내용이나 전달력뿐 아니라 다른 요인의 영향도 받는다며 불만스러워한다. 강의 자체와 별다른 연관이 없지만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대학생들의 강의 평가에도 #교수의 외모가 영향을 끼쳐 #외모 중시는 진화의 흔적이나 #인품과 실력이 우선시돼야

미국 텍사스 대학 경제학과 다니엘 해머메시 교수의 연구를 보자. 그는 평소 강의 평가에 불만이 있었는지, 혹시 교수들의 외모가 학생들의 강의 평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텍사스 대학의 학생들은 한 학기 수업을 마치면 그 강좌에 대해 5점 만점으로 평가하는데, 연구팀은 이 점수와 담당 교수 외모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이들은 우선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텍사스 대학에서 진행된 463개의 수업을 수강했던 학생 1만6957명의 강의 평가 점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남학생 3명과 여학생 3명에게 담당 교수들의 사진을 보고 외모를 1점에서 10점 사이로 평가하게 한 후 학생들이 매긴 강의 평가 점수와 비교했다.

결과는 아주 분명했다. 교수들의 외모 등수가 높을수록 학생들의 강의 평가 점수도 높아졌다. 그런데 외모의 영향을 받는 것은 여자 교수의 수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여자 교수보다 남자 교수의 강의 평가 점수가 외모의 영향을 거의 3배나 더 많이 받았다.

배우나 모델이야 외모가 중요할 수 있지만,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강의 평가에까지 외모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비이성적으로 상대방의 외모에 휘둘리는 걸까? 설명은 둘로 나뉜다. 첫 번째 설명은 원래는 그렇지 않게 태어났지만 자라나면서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에 세뇌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 주장은 우리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어떤 주장이 진실에 가까울까?

텍사스 대학 심리학과의 주디스 랑루아 교수는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여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얻으려고 했다. 랑루아 교수팀은 생후 6개월 된 아기들 60명을 모집하여 3개월 된 남자 아기 16명과 여자 아기 16명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잘생기고 예쁜 아기와 그렇지 않은 아기의 사진을 반씩 포함했다. 그렇지만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기들이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을까? 연구팀은 아기들이 사진을 얼마나 오랫동안 쳐다보는지를 사진 속의 인물을 좋아하는 척도로 삼았다.

의학노트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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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결과를 보자. 아기들은 귀엽고 예쁜 동생들의 사진을 7.2초 동안 쳐다보았는데, 외모가 평범한 동생들의 사진은 6.6초만 살펴보았다. 작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 아기들에게 어른들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기들은 잘생긴 남자나 예쁜 여자의 사진을 더 오래 쳐다보았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들이 외모에 집착하는 것은 경박한 문화에 오염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날 때부터 그랬다는 주장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에게 더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진화심리학적인 설명은 간단하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그런 짝을 찾는 것이 건강한 후손을 많이 남기는 것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西) 호주 대학 심리학과 질리언 로즈 교수는 여러 문화권에서 선호되는 미남 미녀의 얼굴에는 그 집단의 평균적인 이목구비, 온전한 좌우 대칭, 두드러진 여성성 혹은 남성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특성들은 건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수렵 채집 시대가 아니다. 환경 개선과 의학 발전으로 특별히 강건한 신체를 타고나지 않더라도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낳고 해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상대방의 외모에 집착하는 것은 기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수컷의 화려한 날개에 끌리는 암컷 공작만큼 아둔하고, 척박한 시대에 얻은 습성 때문에 기름진 음식에 군침을 흘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외모보다는 따뜻한 마음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이 인기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 의학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