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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서울 16위, 상하이 3위…도쿄는 홍콩 겨냥해 세제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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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금융센터지수로 본 한·중·일 금융허브 경쟁력

글로벌 금융 허브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의 상대적 퇴조와 중국의 급부상이 얽힌 패권 대립의 좌표축이 세계 금융지도에도 반영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유럽과 아시아 금융 허브를 대표하는 런던과 홍콩의 정치 환경이 급변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했고, 중국이 홍콩에 대한 강권 지배에 나섰다. 금융 질서의 새 판이 짜일지도 모른다. 최근 10년간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보고서의 창(窓)에 비친 금융 허브의 경쟁력도 다극화가 뚜렷하다.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공산당 100주년, 금융도 용틀임 #상하이·베이징·선전 톱10 포진 #일본은 당정, 지자체 함께 뛰는데 #한국은 새 전략도, 결의도 안보여

한·중·일 주요도시 2011~21년 GFCI 순위

한·중·일 주요도시 2011~21년 GFCI 순위

GFCI는 영국 싱크탱크 지옌(Z/Yen)이 2007년 이래 3월과 9월에 내는 금융허브 도시 경쟁력의 대표적 잣대다. 2016년부턴 중국종합개발연구원(CDI)이 파트너로 참가 중이다. GFCI 보고서는 비즈니스 환경, 인적 자본, 인프라, 금융부문 발전, 평판의 5개 분야를 점수화해 순위를 매긴다. 올 3월 보고서(GFCI 29)의 10위권은 뉴욕·런던·상하이·홍콩·싱가포르·베이징·도쿄·선전·프랑크푸르트·취리히 순이다. 서울과 부산은 16위, 36위다.

2011~21년의 20회 보고서 가운데 톱 7을 기준으로 삼아보자. 전 기간 순위 1, 2위는 뉴욕과 런던이다. 뉴욕은 2014년 3월 처음 1위로 올라섰다. 2015년 9월 런던에 1위를 내주었다가 2018년 9월 이래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두 도시에 대해선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신구 패권 국가의 프리미엄을 향유한다. 브렉시트(Brexit)로 유럽 대륙의 취리히나 프랑크푸르트가 얼마나 반사이익을 볼지 관심거리다.

3, 4위는 2019년 9월까지 홍콩과 싱가포르의 고정석이었다. 두 도시 간 순위는 엎치락뒤치락했다. 홍콩은 중국 기업의 자금 조달 현관이다. 싱가포르는 자산운용업의 선진 도시다. 낮은 소득세·법인세와 영어 소통도 두 곳의 강점이다. 하지만 지난해 3·9월과 올 3월 홍콩은 6→5→4위를, 싱가포르는 5→6→5위를 기록했다. 대신 상하이(4→3→3위)와 도쿄(3→4→7위)가 치고 들어왔다. 홍콩의 순위 변동은 지난해 국가안전법 제정, 정정 불안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당장 홍콩의 금융허브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관문 역할과 위안화 역외 유통시장을 대체할 도시가 없다. 하지만 홍콩의 중국화(一國一制)가 가져올 불확실성은 엄존한다. 홍콩 매체 빈과일보의 폐간은 강압의 결정판이다. 일본의 적극적 금융허브 전략은 홍콩의 원심력을 겨냥한 포석이다. 지난 10년간 5~7위는 아시아·유럽·미주 도시로 빈번히 교체됐다.

한·중·일로 범위를 좁혀보자. 중국 도시의 상승 기류가 단연 눈에 띈다. 상하이·베이징·선전이 지난해 9월 이래 두 번 연속 10위권에 포진했다. 상하이는 처음으로 두 번 연속 3위였다. 1990년 상하이 푸둥(浦東)지구 개발·개방 결정 이래 30년 만이다. 국제금융센터 상하이는 중국의 국가 전략이자 비원(悲願)이다. 올 7월 100주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의 창당 대회 장소는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외국인거류지)다. 상하이의 GFCI 3위는 중국의 경제력에 비춰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입성 시기는 흥미롭다.

상하이와 더불어 중국 개혁·개방의 시발점인 선전의 존재감도 꾸준하다. 중국은 이 세 도시 외에 광저우(22위)·청두(35위)·칭다오(42위)가 50위권에 들어갔다. 아태 지역 톱 15에 중국의 6개 도시가 포함된 의미는 적잖다. 금융 패권을 넘보는 새로운 중국의 모습이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은 지난해 9월보다 각각 9, 4 계단 올랐다. 하지만 서울이 2012년 3월부터 8회 연속 10위권에 들어간 것과 비교하면 후퇴 국면이다. 당초 서울의 꿈은 2020년까지 아시아 3대 금융 허브로의 발전이다.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을 마련하면서 내놓은 목표였다. 세계 50대 자산운용사 지역본부 유치 등 야심 찬 계획이 들어갔다. 하지만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국내 유치 성적표는 초라하다. 2019년 기준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아태 본부는 모두 다른 나라에 있다. 외국계 금융회사는 162개로 2016년(168개) 이래 감소세다.

지난해 5월 금융위원회의 ‘제5차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2020~2022)’엔 새로운 전략도, 결의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는 길은 험난해 보인다. 외국계 금융회사와 전문가들은 홍콩·싱가포르에 비해 높은 법인세와 소득세, 경직적 노동시장, 불투명한 금융 규제 등이 여전히 걸림돌임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금융중심지 추진위에서의 은성수 금융위원장 발언이 한국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 중심지가 되려면 풍부한 비즈니스 기회, 세계 표준에 맞는 금융 관련 법과 규정,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도시 등이 필요조건이지만 서울은 아직 아시아 최고가 아니다”며 “당분간 한계가 있는 만큼 소규모 특화 금융 중심지로 키우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서울(여의도)·부산(문현지구)의 생각은 어떨까. 정영준 서울시 경제정책과장과 임재선 부산시 서비스금융과장은 관련 실무를 총괄한다.

서울과 부산의 GFCI 순위가 지난해 이래 상승세다.
(정 과장) “서울 순위 중 눈여겨볼 부분은 금융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손꼽히는 디지털 금융 분야의 경쟁력이다. 핀테크 경쟁력 부문에서 114개 도시 중 13위를, 미래 부상 가능성 높은 도시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점은 무엇보다 고무적이다.”

(임 과장) “부산시는 지난해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해외 금융기업 6개사를 유치했고, 국내 최초의 블록체인 특구로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BIFC 3단계 개발을 통한 금융 클러스터 조성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런 점들이 순위 상승을 견인했다고 본다.”

향후 역점 분야는.
(정 과장) “증권사·자산운영사·보험사의 전통 금융기관 중심지인 여의도가 핀테크와 기존 금융기관이 융합하고, 전문 인재들이 상주하는 새 금융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혁신 스타트업, 금융 전문인재, 금융기관의 집적 효과를 높여 여의도를 아시아 금융 허브로 만들어가겠다.”

(임 과장) “핀테크 육성과 인프라 확충, 국내외 금융기관의 BIFC 내 유치를 통한 금융 분야의 집적화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산·학·연 연계 사업과 해외 마케팅에도 박차를 가하겠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도쿄가 GFCI 순위에서 3~7위다. 오사카는 15~59위로 진폭이 크다. 일본의 최근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각·집권 자민당·지자체가 국제금융도시 실현을 향해 함께 뛰고 있다. 올 재팬(All Japan)이란 말이 나온다. 홍콩 사태를 계기로 거점 분산을 꾀하는 해외 투자업자 등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자민당은 지난해 7월 금융 인재 유입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10월 국회 연설에서 “해외의 금융 인재를 받아들여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국제금융센터를 지향하겠다. 이를 위해 세제(稅制), 행정 서비스의 영어 대응, 체류자격 완화를 신속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올해 관련 조치들이 가시화했다. 국외 재산을 상속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상속세와 법인세·소득세에 특례를 두는 법 개정에 나섰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해외 금융기관 유치의 고질적 장벽인 세제에 손을 댄 제도개혁은 결기의 표시다.

도쿄도는 2019년 4월 관민 합동의 도쿄국제금융기구(핀시티 도쿄)를 설립해 도쿄의 매력을 발신해왔다. 올해는 3년 전 만든 ‘국제금융도시 도쿄 구상’을 업데이트한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는 “도쿄는 사람·재화·돈이 모이는 강점이 있어 아시아의 첫 번째가 충분히 가능하다”며 “지금은 세계·아시아의 금융 허브 지위를 확립하기 위한 큰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지난해 12월 강연). 오사카는 아시아의 파생금융상품 거점으로 특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변혁의 시기다. 기술·산업혁명이 거세고, 미·중 패권 대립의 지정학도 점치기 어렵다. 금융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금융 경쟁력을 재점검하고, 금융 허브로 가는 전략을 다듬어야 할 때다. 무엇보다 범정부, 민관 합동의 새로운 청사진이 긴요하다. 금융 중심지는 일류(一流) 국가의 조건이다. 금융 허브 실현의 꿈을 멈춰선 안 된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