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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가 작위를 수여한 '왕의 채소' 아스파라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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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는 감칠맛, 단맛은 물론 부드러운 식감이 균형잡힌 채소다. [사진 픽사베이]

아스파라거스는 감칠맛, 단맛은 물론 부드러운 식감이 균형잡힌 채소다. [사진 픽사베이]

밥하고 국 말고, 버터 향 가득한 음식이 당길 때가 있다. 쉽게 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스크램블드에그를 떠올려본다. 버터를 두른 팬에 휘휘 저은 달걀을 빠르게 볶고 그 옆에 베이컨을 노릇하게 굽는 상상이다. 내친김에 플레이팅까지 해볼까. 머릿속에서 넓은 접시를 꺼내고 스크램블드에그와 베이컨을 예쁘게 담는다. 아, 하지만 뭔가 부족한데? 그래, 초록색이 필요하다. 그때 어김없이 떠오르는 채소가 아스파라거스다.

곁들이는 채소가 아니라 아스파라거스가 주인공이 되는 방법도 있다. 아스파라거스의 감칠맛과 단맛, 그리고 부드러운 식감은 메인 재료로도 손색이 없으니까 말이다. 채소를 활용해 다양한 발효 조미료와 발효요리를 만드는 큔의 김수향 대표는 “아스파라거스는 설탕과 향신료, 조미료가 부족했던 옛날 사람들에게 특별한 향과 맛을 주는 채소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유럽에서는 아스파라거스를 복잡하게 요리하지 않는다. “가장 잘 어울리는 달걀을 올리거나, 달걀로 만든 소스만 뿌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버터만 뿌리거나 하는 심플한 요리법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음식과 재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백과사전처럼 쏟아부은 책 『음식과 요리』에도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소개하고 있는데, 김 대표의 설명대로 익힌 아스파라거 위에 달걀노른자와 버터로 만든 소스를 올렸다. 이 요리의 부제는 무려 ‘17세기의 세련된 채소 요리’다. 출처는 프랑수아 피에르 드 라 바렌(François Pierre de La Varenne)이라는 17세기 프랑스 요리사가 쓴 책 『프랑스 요리』다.

‘커다란 아스파라거스를 선택해 밑동을 긁고 씻는다. 적절한 양의 물에 넣고 익히고 소금을 고루 뿌린다. 너무 익히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익으면 물기를 빼고, 약간의 질 좋은 생버터, 약간의 식초, 소금, 육두구와 함께 넣고 소스를 만든다. 달걀노른자 하나를 넣어 소스를 결합한다. 액체와 고체가 분리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아스파라거스에 원하는 고명을 올려 식탁에 올린다.’ 라 바렌의 『프랑스 요리(1655)』

17세기 레시피라는 것도 놀랍지만, ‘세련된 채소 요리’라는 부제도 흥미롭다. 그런데, 실제로 세련된 고급 요리가 맞다. 라 바렌은 궁중 요리사였고, 그가 쓴 책은 이후 프랑스의 고급 요리, 즉 상류층과 귀족을 위한 음식을 칭하는 오트 퀴진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17~18세기 프랑스는 왕가를 중심으로 음식문화가 절정을 이룬 때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조리학과에서 서양 조리를 강의하는 신재근 교수는 “태양왕 루이 14세부터 프랑스대혁명으로 막을 내린 루이 16세까지, 프랑스 음식문화가 엄청난 발전을 이룬 대변혁기”라며 “비록 왕족과 귀족에 국한된 그랜드 퀴진, 오트 퀴진이었으나, 그럼에도 고기와 빵 위주였던 식문화가 채소로까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세련된 요리에 쓰인 아스파라거스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일 확률이 높다. 한국에서는 주로 그린 아스파라거스를 먹지만, 유럽에서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더 인기다. 검은 천에 덮어 빛을 차단해 콩나물을 노랗게 키우듯, 흙으로 덮어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하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된다. 맛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극의 채소 맛을 알고 있는 김수향 대표에게 그 차이를 물어봤더니 탁월한 답이 돌아왔다. 듣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맛 표현이다.

빛을 차단해 키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향과 은은한 단맛으로 유럽사람들이 즐겨먹는다. [사진 픽사베이]

빛을 차단해 키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향과 은은한 단맛으로 유럽사람들이 즐겨먹는다. [사진 픽사베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섬세하고 품위 있는 맛이다. 요리해 먹으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올라온다. 끝에 약간의 쓴맛이 존재하는 동시에 은은한 단맛을 지니고 있다. 또 즙이 아주 많은데, 즙을 먹으면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반면 그린 아스파라거스는 초록색 채소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싱그러운 향과 은은한 단맛, 양배추를 상상하게 하는 야생의 풍미도 매력이다. 그린 아스파라거스는 요리에 따라 변화하는 식감이 화이트와 꽤 다른데, 어떤 재료하고도 잘 어울리면서 맛을 해치지 않고 서로의 장점을 끌어올리는 유연함이 있다.”

맛만큼이나 아스파라거스를 부르는 별명도 품위가 넘친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궁에 전용 온실을 만들고 아스파라거스에 ‘식품의 왕’이란 작위를 하사했다는 역사 때문인지 ‘왕의 채소’, ‘귀족 채소’, ‘서양 채소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수식어 때문은 아니겠으나, 아스파라거스는 비싼 채소라는 이미지가 있다. 강원도농업기술원의 『아스파라거스 재배기술』을 보면, “처음 2~5년은 육성 기간이 필요해 초기 자본회전이 느려”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아스파라거스는 대표적인 줄기채소다. 비타민, 아미노산, 단백질이 풍부하다. [사진 픽사베이]

아스파라거스는 대표적인 줄기채소다. 비타민, 아미노산, 단백질이 풍부하다. [사진 픽사베이]

23년째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해온 김영림 강원도 아스파라거스생산자연합회장에 따르면, 현재는 농법이 발달해 2년 차에도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예전에는 꽃이 핀 후 암수를 걸러내느라(암그루보다 수그루가 큰 줄기를 많이 길러내기 때문에 보통 수그루를 골라 심는다) 시간과 노동력이 더 걸렸지만, 현재는 2월에 육묘(번식용으로 이용하는 어린 모를 못자리에서 기르는 일)를, 4월에 정식(밭에 정식으로 옮겨 심는 일)한 후, 그다음 해에는 수확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작물에 비해 한 번 심으면 15~20년까지 수확할 수 있다. 내년이면 무슨 농사짓나 고민할 필요 없어 맘도 편하단다. 재배하기도 쉬운 편이라 귀농인이 많이 도전하는 작물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화이트나 퍼플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는 농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비량이 적어서다.

또 다른 별칭은 ‘봄 채소의 황제’다. 4월부터 길게는 6월까지가 제철로, 겨울 동안 지친 몸에 활력을 넣어주는 봄 채소다. 우리가 봄이 되면 냉이, 두릅, 달래, 풋마늘 같은 채소를 찾는 것과 비슷하게 유럽인들이 이 시기에 아스파라거스를 먹는다. 물론 한국은 하우스 재배가 대부분이라, 9월~10월 초까지도 맛있는 아스파라거스를 먹을 수 있다.

영양도 뛰어나다. 비타민A, B1, B2, C가 균형 있게 들어 있고 아미노산, 단백질이 풍부하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라긴산도 많다. 콩나물보다 5~10배 높다. 애초에 아스파라긴산은 아스파라거스의 액즙에서 최초로 분리됐다. 드링크제에 들어간다는 그 아스파라긴산으로, 피로와 숙취 회복에 도움을 준다. 또, 그린 아스파라거스 줄기 끝의 뾰족한 부분에는 루틴이 많이 함유돼 있다. 루틴은 활성산소 발생을 억제해 혈관 건강에 도움을 준다.

▶도움말 : 발효카페 큔 김수향 공동대표, 김영림 강원도 아스파라거스생산자협의회장,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조리학과 신재근 교수

이세라 쿠킹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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