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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전현직 직원들 “화장실 갔다고 시말서"···쿠팡 "거짓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4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물류센터 전현직 근무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24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물류센터 전현직 근무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한두 달에 한 번씩은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했다.”

“안전교육은 처음 알바 시작할 때 한 번만 받았다.”

불이 난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2년 전부터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했으며 안전 교육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는 근무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24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는 진보당 주최로 쿠팡 물류센터 전·현직 근무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쿠팡 전·현직 근무자들과 진보당 관계자들은 ‘노동자를 일회용품 취급하는 쿠팡 규탄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쿠팡 김범석이 책임져라’, ‘소화기, 비상구 위치도 모르는 안전교육’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회견을 했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이규랑(34)씨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덕평물류센터에서 피킹·패킹 업무를 주로 했다”며 “안전교육은 처음 알바 시작할 때 한 번 받았고, 이후로는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마저도 센터 내 구조에 대한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을 시작하면) PDA 화면에 뜨는 업무 지시를 보고 따라 한다”며 “물류센터가 아파트 한 채보다도 큰데, 그런 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핸드폰만 보고 일하는 식이다. 업무 구역마다 관리자도 적고, 계약직 사원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물류센터는 출구도 찾기 힘들다. 3층은 3-1층, 3-2층이 있어서 (3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찾고 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 내려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2년 전에도 한두 달에 한 번은 화재 경보 오작동”

진보당원들과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24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앞에서 쿠팡물류센터 노동자 현장 실태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진보당원들과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24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앞에서 쿠팡물류센터 노동자 현장 실태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덕평물류센터에서 3~4개월간 입고(IB) 업무를 맡았다던 원은정(29)씨는 “당시에도 한두 번 화재경보기 오작동이 났다. 한두 달에 한 번은 경보 오작동이 났던 셈”이라며 “안전 교육은 한 번도 받아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이름이 아닌 연락처 뒷번호 네 자리로 불렸다”고 했다.

원씨는 “조금이라도 업무 속도가 안 나면 관리자가 번호를 부르며 속도를 내 달라고 방송을 했고, 그래도 안 되면 관리자에게 불려나가거나 다른 업무로 옮겨졌다”며 “화재사고를 보면서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과 외부 전문가들이 건물 구조 안전진단을 하고 있다. 뉴스1

21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과 외부 전문가들이 건물 구조 안전진단을 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소재의 모 쿠팡 물류센터에서 수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최모(21)씨는 “물류센터에서 여러 번 일해봤지만, 안전 교육을 받은 건 두 번밖에 없다”며 “한 번은 교육자가 마이크나 확성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기계 소리에 묻혀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영상 자료조차 없는 교육을 5분도 받지 않고 근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진보당은 22일부터 쿠팡 물류센터 근무했던 전·현직 근무자들 22명에게 물류센터 노동환경 실태를 제보받았다고 이날 밝혔다. 진보당이 공개한 제보 내용에는 “영하 18도 냉동창고에서 쉬는 시간도 없이 일했다”, “안전교육을 받았지만 비상구나 소화기 위치, 비상 대피 요령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화장실을 갔다고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는 등 내용이 포함됐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에 전국의 모든 물류센터를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를 점검하고 노조가 참여하는 형태의 특별근로 감독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의 모습. 뉴스1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의 모습. 뉴스1

이날 오전 쿠팡 본사 앞에선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지회(노조)의 기자회견도 열렸다. 노조는 쿠팡에 전환 배치된 기존 덕평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적응 등 실질적인 고용안정 대책을 마련하고, 화재 재발 방지를 위한 전국 물류센터 안전 점검 및 훈련을 시행하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노조와 진보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본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년 전 퇴사한 직원의 일방적 주장을 근거로 쿠팡을 비방하는 등 사실 왜곡을 통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밝혔다. 쿠팡 측은 해명자료를 통해 "화재가 발생하자 직원들의 발빠른 대처로 근무자 전원이 화재 신고 후 5분만에 대피를 완료해 직원들의 인명 피해가 전혀 없었다. 쿠팡은 이후 화재 진압 과정에도 초기부터 대표이사가 현장에서 직접 비상대응팀을 구성한 뒤 화재 대응에 나섰고, 18일에는 많은 분들께 심려 끼쳐 드린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했다.

또 쿠팡은 "이날 (노조 기자회견 등) 발언대에 선 직원들 가운데에는 이미 수 년 전에 쿠팡을 퇴사한 직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며 "이와 같이 쿠팡에서 제대로 근무한 적도 없는 ‘전’ 일용직 직원을 내세워 거짓 주장을 계속하는 것을 멈추기를 호소한다"고 했다. 다만 쿠팡 측은 안전 교육이 부실하게 이뤄졌다거나, 화재 경보기가 수 년 전부터 오작동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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