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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인 걸 절대 잊지 마" 中 화교 정책이 아슬아슬한 까닭

중앙일보

입력

“수천만 명의 중국인이 해외에서 살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중국의 가족이다. 그들의 몸에는 중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그들은 조국을 잊지 않았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

최근 필리핀 마닐라에서 중국을 규탄하며 벌어진 시위 [EPA=연합뉴스]

최근 필리핀 마닐라에서 중국을 규탄하며 벌어진 시위 [EPA=연합뉴스]

시진핑 주석이 애정을 담아 언급한 ‘수천만 명의 중국인’은 ‘화교(華僑)’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화교는 중국 밖에서 거주하는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로, 현지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은 화인(華人)으로 구분해 부르고 있다. 전 세계 168개 국에 약 87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중국의 ‘소프트파워 굴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으로 꼽힌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화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이 공세적으로 바뀌면서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보도했다. 이들 중 대다수가 동남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인인 걸 절대로 잊지 마라” ... 갈등 씨앗 될 수도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 [사진 셔터스톡]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 [사진 셔터스톡]

화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통적인 정책은 ‘최대한 현지 문화에 적응하고 뿌리를 굳건히 내리라’는 것이었다. 중국은 자국민이 현지에서 시민권 혹은 국적을 얻고 해당 지역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오랫동안 장려해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원래의 뿌리를 잊지 말라’고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국적을 가지고 어디에서 살아가든, 중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방침이다.

때문에 이 새로운 정책이 동남아시아에 이미 뿌리를 내린 중국인들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남아 내에서 민족적 긴장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진핑 주석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주석 [로이터=연합뉴스]

SCMP는 “특히 화교 인구가 70%가 넘는 싱가포르와 같은 곳에서 이런 정책은 매우 큰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반중 정서가 높아지고 있기에 이런 정책이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필리핀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등에서 반중 시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고, 말레이시아에선 중국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중이라서다. 미국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많은 이들이 이런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고 짚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중국의 위구르인 탄압에 맞서 벌어진 시위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중국의 위구르인 탄압에 맞서 벌어진 시위 [EPA=연합뉴스]

동남아시아를 쥐락펴락하는 거부들 대부분이 화교라는 점도 중요하다.

태국의 최대 기업으로 꼽히는 CP그룹, 필리핀 최대 패스트푸드 업체 졸리비 등이 대표적인 화교 기업이다. 더 디플로맷은 “동남아시아의 억만장자 중 많은 이들이 화교”라며 동남아 재벌 중 화교 자본과 닿아있지 않은 곳을 찾기가 외려 더 힘들 정도라고 전한다. 경제 양극화가 비교적 심한 이 지역에서 ‘부의 상징’인 화교가 현지에 제대로 동화되지 못한다면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단 지적이다.

SCMP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선 민족주의가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 살고 있는 화교들은 본국의 정책에 굉장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며 “해당 지역의 정치적ㆍ경제적 안정을 위해 관련 정책을 더욱 깊이 고려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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