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내 일상에 날개 달아줄 소리 한자락 불러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65)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쌈 들으시오 어떤 사람 팔자가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호의호식 하련만은 우리야 농부네 팔자가 기박하야 불과 같이 뜨거운 날에 비지땀을 흘러야 하나 어러 허어야 지러한다.” 충북 보은의 소리꾼 고 서정각 님과 생전에 나눈 인터뷰가 그가 부른 ‘논매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아이 맬 때는 호맹이루 파서 엎기 때문에 참 힘이 들어. 힘이 들거덩. 그래두 인제 그 노래 힘으로 파 엎는겨, 노래 힘으루.”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전남 고흥군의 정영엽 님의 소리도 귀에 꽂혔다. “맷돌아 맷돌아 밀 간 맷돌 마리 가운데 맞체놓고 도리방석 채 감시롱. 어매 어매 어디 가서 울어매는 달밖에서 점심때나 오실 건데 이 맷돌은 맥혔는가 거렸는가 밀가리를 안 내노네.” 떡을 만들기 위해 밀을 가는 맷돌질을 하며 부르는 ‘맷돌질 소리’ 다. 맷돌이 밀가루를 안 내놓는다며 투정 부리듯 장난스레 노래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밀개떡 만들 준비가 다 되었을 테다.

창덕궁 정문 앞에 위치한 서울우리소리박물관. 단아한 한옥 안에서 듣는 우리 소리 한 자락, 시내 한 복판에서 잠시 쉬어가면 좋을 소중한 공간이다. [사진 김현주]

창덕궁 정문 앞에 위치한 서울우리소리박물관. 단아한 한옥 안에서 듣는 우리 소리 한 자락, 시내 한 복판에서 잠시 쉬어가면 좋을 소중한 공간이다. [사진 김현주]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고, 그 힘으로 고된 몸과 마음을 추스리며 일을 해왔다는 옛 어른의 삶, 그들의 노래를 담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창덕궁 정문 앞에 위치한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의 특별전 ‘이 땅의 소리꾼: 길 걷는 선비는 의복이 날개요, 일하는 우리는 소리가 날개라’이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민요 소리꾼 6분의 생애와 그분들이 부른 민요 17곡을 들을 수 있는데,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셨기에 더욱 소중한 소리들이다.

우리의 옛 어른들은 소리를 통해 서로 간에 힘든 처지를 위로하기도 했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기도 했고, 자연의 순리와 아름다움을 읊조리기도 했다. 향토민요는 판소리와 달리 전문 소리꾼이 아닌 보통 사람이 생활하며 부르던 소리로 이를 통해 일상의 시름을 잊고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우리 소리가 도시화, 산업화 속에서 점점 잊히고 있는데, 이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개관한 곳이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이다.

‘이 땅의 소리꾼: 길 걷는 선비는 의복이 날개요, 일하는 우리는 소리가 날개라’에 소개된 충북 보은의 소리꾼 서정각과 전남 고흥군의 정영엽.

‘이 땅의 소리꾼: 길 걷는 선비는 의복이 날개요, 일하는 우리는 소리가 날개라’에 소개된 충북 보은의 소리꾼 서정각과 전남 고흥군의 정영엽.

전시장을 찾은 이유는 ‘일하는 우리는 소리가 날개라’라는 멋진 전시명에 끌린 것도 있지만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문화정보원에서 새로 시작하는 이벤트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소리 따라부르기 이벤트’가 그것으로, 공공저작물로 개방된 우리 소리 향토민요 중 따라 부르고 싶은 곡을 한 곡 정해 직접 불러보고 느낌이 어땠는지 전해주는 이벤트다. 6월 21일부터 3주 동안 진행되는 이번 이벤트는 국민이 다양한 분야의 공공저작물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획됐다. 공공저작물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이 업무상 작성하여 국민에게 공표한 저작물들을 말한다. 공공저작물로 개방된 사진, 영상, 음원, 어문, 데이터 자료 등은 국민 누구나 별도의 이용허락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국가에서 마련한 이 제도를 공공누리 제도라고 부르며 공공누리 홈페이지를 통하면 1700만건의 사용 가능한 공공저작물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속한 부서의 사업이 바로 이런 공공저작물을 확충하고, 국민이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하는 것이다.

우리 소리를 멋지게 불러준 소리꾼 고영열 씨. [사진 고영열]

우리 소리를 멋지게 불러준 소리꾼 고영열 씨. [사진 고영열]

작년 서울우리소리박물관과 함께 확충작업을 진행해 올 초 개방한 공공저작물이 바로 전국 8개 지역에서 실연한 향토민요였다. 모찌는 소리, 고기 잡는 소리 등 일을 할 때 부르는 노동요를 중심으로 84가지 소리를 재연해 녹음했고 이를 개방했는데, 이 소리를 더 많은 국민이 들어보고 불러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이벤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벤트를 알리는 CM은 EBS FM이 제작해 방송하고 있는데, 팬텀싱어 수상자인 국악인 고영열씨가 직접 출연해 우리소리를 따라부르며 추천했다.

“뭉치고 점치세~에헤이야 이 모자리 뭉치세~안녕하세요. 소리꾼 고영열입니다. 방금 제가 부른 곡은 충청북도 현도면에 전해져 내려오는 두레 농요인데요. 모내기 전 모를 뽑는 모찌기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입니다. 구성진 가락을 따라 부르다 보면 어깨가 들썩이며 절로 흥이 나는데요. 우리 옛 어른들은 이렇게 소리를 하며 노동의 시름을 달래고 신명을 돋우었다고 합니다.”

나의 일상에 날개를 달아 줄, ‘흥’ 나는 소리 한 자락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아나. 노래 힘으로, 지친 하루를 한고비 넘길 수 있을지.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