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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유튜브에 올리면 되는 시대에…" 나홍진·조성희 배출한 미쟝센단편영화제의 고민

중앙일보

입력

24일 개막하는 20주년 미쟝센단편영화제 포스터. '이십'이란 글자 안에 다양한 장르 이미지를 담았다.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24일 개막하는 20주년 미쟝센단편영화제 포스터. '이십'이란 글자 안에 다양한 장르 이미지를 담았다.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나홍진‧윤종빈‧이경미 등 차세대 감독 등용문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올해 20주년을 맞아 경쟁부문 공모 없이 24일 상영회 형식으로 개막한다. 그간 영화제 발자취와 단편영화 의미를 되짚는 상영 및 도서 출간 방식을 통해서다.

올해 20주년 미쟝센단편영화제 24일 개막 #경쟁공모 없이 단편 발자취 되짚는 특별상영

매년 사회파 영화(비정성시), 공포‧판타지(절대악몽), 로맨스‧멜로(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코미디(희극지왕), 액션‧스릴러(4만번의 구타) 등 장르로 구분한 다섯 부문 경쟁작을 현역 영화감독들이 직접 심사해 신인을 발굴해온 터다. 경쟁 공모 없이 열리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 1월 “20주년을 기점으로 영화제 형식의 페스티벌을 종료한다”는 발표에 따라서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코로나19의 유행과 극장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에 따른 한국 영화계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으로 단편영화는, 또 영화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긴 고민의 시간을 갖고 있다. 새로운 형식으로의 전환을 통해 지속해나갈지 여부는 추후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 되는대로 별도 공지하겠다”고 집행부는 밝혔다.

2002년 1회부터 참여해온 명예집행위원장 이현승 감독은 지난해 19회 폐막식에서 “미쟝센영화제도 앞으로의 변화들 속에서 어떻게 나아갈지 머리를 맞대고 질문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한 바다. 18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그는 “다른 감독들도 그렇고 저도, 뭔가 새롭게 한국 영화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게 아니라면 계속 해왔다고 유지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여러 의견을 들어보고 오늘날 한국영화에서 단편의 위상과 의미를 생각해보려 한다”고 했다.

"장르가 순수성 해친다? 왜 단편만 순수해야 하나"

명예심사위원을 맡은 임권택 감독(가운데)이 2011년 제10회 미장센단편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서울 용산 CGV 포토존에서 밝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옆은 이현승 감독과 류승완 감독. [중앙포토]

명예심사위원을 맡은 임권택 감독(가운데)이 2011년 제10회 미장센단편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서울 용산 CGV 포토존에서 밝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옆은 이현승 감독과 류승완 감독. [중앙포토]

미쟝센영화제는 단편, 하면 어려운 실험영화를 떠올리던 시절 그가 장르적 상상력을 내세운 단편영화로 후배 감독을 양성하자고 제안하며 출발했다. 이 감독은 “한국영화가 막 산업화로 들어가려는 시기였다”면서 “단편영화는 아직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뤘는데 관객들과 소통하려면 상업 장르가 중요했다”고 돌아봤다. “영화제 가보면 진짜 관객이 없었어요. 단편영화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자기들은 상업영화 만들고 왜 애들 단편영화는 백의 전사처럼 순수해야 하냐’ 싶었죠.”

“다른 영화제에서 절대 초청하지 않던 액션 영화에도 관심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멜로만 조금 대접을 받았고 스릴러‧코미디 등은 진짜 하위장르였죠. 그런 영화를 발표할 기회를 주려 했다”고 그는 돌이켰다.

따뜻한 허진호, 도전적 박찬욱…극과극 심사 묘미

1회 당시엔 그가 초대 집행위원장, 박찬욱 감독이 부집행위원장을 맡아 김성수‧김대승‧김지운‧류승완‧봉준호‧허진호 등 각 장르 대표 감독들과 뭉쳤다. 2011년 10회 폐막식에서 강형철‧나홍진‧민규동‧윤종빈‧이경미 감독 등이 2기 집행위원, 이후 노덕‧엄태화‧조성희 감독 등이 합류했다.

배우 한예리(사진)가 데뷔 초 주연한 김민숙 감독 단편 '기린과 아프리카'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소개됐다. 올해 20주년 특별부문에서 상영된다.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배우 한예리(사진)가 데뷔 초 주연한 김민숙 감독 단편 '기린과 아프리카'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소개됐다. 올해 20주년 특별부문에서 상영된다.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개성 강한 감독들이 돌아가며 심사위원을 맡아 매해 수상작이 ‘등수 매기기’보단 ‘지지선언’에 가까웠던 것도 묘미다. 이 감독은 “재밌었던 게 멜로 부문인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허진호 감독은 따뜻하고 휴머니즘적인 엔딩을 완성도 높다고 뽑았는데 그 다음 해 박찬욱 감독은 ‘야 무슨 젊은애들이 벌써 이렇게 행복한 세상을 꿈꾸냐. 도전하고 화내고 막 갈등 팍팍해야지’ 하면서 휴머니즘적인 작품은 다 떨어졌다. 일관성 있지 않은 게 우리 영화제 심사의 매력이고 그래서 ‘지지한다’고 표현해왔다”면서 “심사하는 감독들 개성이 강하고 영화적 취향이 합의가 안 돼 깜짝 놀랄 만큼 반대를 격렬하게 하기도 했다. 만장일치가 안 되면 그해 대상작은 없다는 게 전통이 됐다”고 말했다.

미디어환경 급변 영화제도 고민 필요

그는 미디어 환경이 급변한 만큼 영화제도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젠 재밌는 감독이 ‘숨어있기’ 쉽지 않다. 1회 때만 해도 영화제 아니면 재능을 보여줄 방법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잘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도 발표할 수 있다”면서다. “플랫폼도 온라인 등 기회가 많아졌죠. 그런 측면에서 어떻게 단편을 재정립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어떤 영화를 뽑아야 하는가. 아니, (수상작을) 뽑는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영화제도 많아졌고요. 후원사 아모레퍼시픽은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를 갖고 있어서 올해 여러 의견을 들어보려 합니다.”

봉준호·나홍진 초기 연출작…윤여정 이색 단편

올해 미쟝센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배우 윤여정(사진) 주연, 김초희 감독 단편 '산나물 처녀'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올해 미쟝센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배우 윤여정(사진) 주연, 김초희 감독 단편 '산나물 처녀'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앞으로 향방을 결정할 계기가 될 올해 미쟝센영화제는 24일부터 30일까지 일주일간 서울극장,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진행된다. 개막작은 데뷔작 ‘엑시트’로 942만 관객을 동원한 이상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쟝센 웨이브’다. 영화제 10주년 다큐 ‘MSFF비긴스’를 연출했던 그가 지난 20년간 영화제의 발자취를 참여 감독‧배우 등의 목소리로 담았다.

20주년 특별부문에선 그간 한국 단편영화 발전과 변화를 짚었다. 먼저 ‘인사이드 더 20’에선 1회부터 지난해까지 19년간 본선 경쟁 진출작 총 1171편 중 역대 심사를 맡은 감독 25인이 꼽은 20편이 상영된다. 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요리’,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 김종관 감독의 ‘폴라로이드 작동법’, 배우 한예리가 주연한 ‘백년해로외전’(감독 강진아) ‘기린과 아프리카’(감독 김민숙) 등 미쟝센이 배출한 감독‧배우의 초기작을 만날 기회다.

올해 미쟝센영화제가 준비한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 상영작 '백색인' 장면.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올해 미쟝센영화제가 준비한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 상영작 '백색인' 장면.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아웃사이드 더 20’ 부문에선 배우 박해일의 데뷔 초를 볼 수 있는 ‘모빌’(감독 임필성), 윤여정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과 만든 판타지 로맨스 ‘산나물 처녀’(감독 김초희) 등 국내외 타 영화제 화제작 20편을 선보인다. 또 올해 가장 먼저 매진된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에선 봉 감독의 초기 단편 ‘백색인’ ‘인플루엔자’ ‘지리멸렬’ ‘프레임속의 기억들’까지 총 4편을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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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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