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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6월은 음력으로 치면 ‘仲夏’, 여름의 한복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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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03)

옛날 혼례에 사용된 편지 문구를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혼인을 허락하는 허혼 편지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한다.

‘伏惟孟冬(복유맹동)
尊體動止候萬重仰慰區區之至(존체동지후만중앙위구구지지, 존체 요즈음 편안하시길 저의 작은 정성스런 마음이오나 우러러 바랍니다)~’

여기에 나온 계절 ‘맹동’을 보면서 추위가 맹렬한 ‘한겨울’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니었다. ‘맹동’은 겨울이 시작되는 ‘초겨울’이란 뜻이었다. ‘맹동’ 앞의 ‘복유’는 ‘삼가’의 뜻 정도다. 그래서 ‘삼가 초겨울에’란 문구로 편지가 시작된다. 요즘 들어 기온이 30도를 훌쩍 뛰어넘으니 그런 한겨울이 그리워진다.

이제 음력으로 계절 이야기를 할 차례다. 옛날 편지에 등장하는 간지(干支)는 모두 음력이다. 앞에 등장한 ‘맹동’도 음력이다.

요즘은 대부분이 양력에 길들어져 사계절을 말할 때 봄은 흔히 3월, 4월, 5월을 떠올리고 여름은 6월, 7월, 8월로 생각한다. 또 가을은 9월, 10월, 11월을 상정하고 겨울은 12월, 1월, 2월을 연결한다. 그러면 음력에서 계절은 어떻게 볼까. 양력보다 늦게 가는 음력도 계절은 같은 달이 될까.

아니다. 전혀 다르다. 음력에서 봄은 1월과 2월, 3월이다. 여름은 또 4월과 5월, 6월이 된다. 이어지는 가을은 7월, 8월, 9월이고, 겨울은 남은 10월과 11월, 12월이다. 다시 말해 음력으로는 1월이 봄이 되고 4월이 여름이며, 7월은 가을, 10월은 겨울이다. 즉 설날부터 시작되는 음력 1월은 한창 춥지만 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혼인을 허락하는 허혼 편지. 편지의 시작에 ‘맹동(孟冬)’이란 표현이 나온다. 맹동은 음력 10월을 가리킨다. [사진 송의호]

혼인을 허락하는 허혼 편지. 편지의 시작에 ‘맹동(孟冬)’이란 표현이 나온다. 맹동은 음력 10월을 가리킨다. [사진 송의호]

여기서 봄‧여름‧가을‧겨울에 달을 부르는 다른 명칭이 나온다. 봄의 시작인 음력 1월은 ‘초춘(初春)’ 또는 ‘맹춘(孟春)’으로 부른다. ‘맹춘’의 ‘맹(孟)’은 ‘맏이’ 또는 ‘으뜸’이란 뜻이다. 그래서 아들이 여러 명일 때 맏아들 이름에 ‘맹’자를 넣기도 한다. 봄의 둘째 달인 음력 2월은 ‘중춘(仲春)’이라 부른다. ‘중(仲)은 ‘둘째’ 또는 ‘버금’이란 뜻이다. 봄의 셋째 달이자 마지막인 음력 3월은 ‘계춘(季春)'이라 말한다. 한자의 ‘계(季)’에는 ‘끝’ 또는 ‘막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옛날 편지에 봄의 경우 ‘맹춘’ ‘중춘’ ‘계춘’이란 말이 등장한다.

여름과 가을, 겨울도 같은 원리로 달 이름이 만들어진다. 여름의 시작인 음력 4월은 ‘맹하(孟夏)’가 되고 음력 5월은 ‘중하(仲夏)’, 음력 6월은 ‘계하(季夏)’라 부른다. 또 가을의 시작인 음력 7월은 ‘맹추(孟秋)’로 부르고 음력 8월은 ‘중추(仲秋)’로, 음력 9월은 ‘계추(季秋)’로 표현한다. 여기 나온 음력 8월 중추는 그래도 8월 보름 추석이 들어 있어 비교적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음력으로는 1월이 봄이 되고 4월이 여름이며, 7월은 가을, 10월은 겨울이다. [사진 pixabay]

음력으로는 1월이 봄이 되고 4월이 여름이며, 7월은 가을, 10월은 겨울이다. [사진 pixabay]

마지막으로 겨울의 시작인 음력 10월은 같은 원리로 ‘맹동(孟冬)’으로 부르고, 음력 11월은 ‘중동(仲冬)’, 음력 12월은 ‘계동(季冬)’으로 쓴다. 따라서 오늘 6월 24일은 음력으로 5월 15일이니 계절로는 ‘중하(仲夏)’가 된다. 여름의 한복판이다. 그러니 이즈음 더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로 이 편지 계절 인사 뒤에 붙은 어려운 한문은 격식을 중시한 어려운 표현들이다. 그 뜻을 잠간 새기면 ‘복유(伏惟·삼가 생각하옵건대)’, ‘존체(尊體·다른 사람의 몸을 높여 부르는 말’,‘만중(萬重·평안하다)’, ‘구구지구(區區之至·간절하다)’가 된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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