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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현대판 시황제? 무슨 근거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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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현대판 시황제인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3년 5월 4일자 표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청나라 황제 용포를 입은 합성 이미지다. ⓒ이코노미스트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3년 5월 4일자 표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청나라 황제 용포를 입은 합성 이미지다. ⓒ이코노미스트

충분히 납득할만한 문제 제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제18차 당 대회에서 ‘중국몽’ 국가 비전을 선포했다. 그리고 5년 후 19차 당대회에서는 주석직 임기의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당헌을 통과시켰다.

‘중국몽’은 중화제국의 위대한 부흥을 연상시키고, 연임 제한의 철폐는 무한 권력의 통치자를 상상케 한다. 그러니 '시황제가 되려 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고대 황제의 곤룡포는현대 중국에서도 휘날리고 있는가?  

고대 황제의 빛나는 통치술은 오늘도 여전히 발휘되는 듯하다.

먼저 역대 중화 제국의 초기, 황제들은 국가급 대공사를 감행했다. 진나라의 만리장성 축조,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 명나라의 대항해로 개척 등은 제국의 위용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성과였다.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현대판 제국의 대공사로 볼 수 있다.

일대일로

일대일로

둘째, 역대 황제들은 국가 표준을 구축하는 도량형의 통일을 추진했다.

도량형 통일은 때로는 도로와 화폐의 표준으로, 때로는 국가이념의 일원화로 표출되었다. 표준의 구축은 강력한 중앙통제, 규모의 팽창, 속도의 상승을 동시에 불러왔다. 제국의 사상과 이념을 확장한다.

이는 '중화식 글로벌 스탠다드'의 구축을 꿈꾸는 시진핑 정부의 정책 방향과 꽤나 맞닿아 있다.

ⓒ신화통신

ⓒ신화통신

셋째, 역대 황제들은 법 위에 군림하는 군주 통치술을 즐겨 구사했다.

법술세(法術勢)로 대표되는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태생적으로 전제적 군주 통치술과 결합하면서 한 몸을 이루었다. 이로 인해 왕조시대의 법은 늘 인민을 향한 법령과 절대군주의 권력이 상호 긴장되기보다는 서로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법령과 권력의 상호 시너지 효과는 시진핑의 중국에서도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그러나 역대 황제의 찬란한 곤룡포 뒤로는
어김없이 참혹한 역사의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졌다.  

최초로 대일통(大一統)을 이룩한 진시황은 절대 권력의 자기반성 능력 상실로 인해 곧바로 붕괴했다. 진시황릉과 병마용의 화려함은 진제국이 가진 얼굴의 양극단을 여실히 보여준다. 화려한 제국의 건설과 부질없는 내세의 집착은 과학과 미신이 용솟음치던 당시 국가의 정체(政體)를 잘 보여준다.

ⓒEBS 〈불멸의 진시황〉

ⓒEBS 〈불멸의 진시황〉

황제의 몰락, 사례는 너무 많다.

명나라 주원장은 몽골 원제국의 잔재를 없애고 송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때부터 중국의 전제정치가 본격화되었다.

몽골 칸의 테니스트리(tanistry 적임자 계승제)와 송 황제의 장자 계승제는 명대 이후 오히려 전제주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송대에 견실했던 군신(君臣) 호혜적 유교주의는 명대 정치 속에서 황제와 환관의 권모술수로 일탈해갔다. 주원장은 재상 호유용(胡惟庸)을 외국 세력과 결탁했다는 죄명을 들어 처형했다.

일파의 제거 작업은 14년이나 계속되었다. 이 패턴은 아들 영락제에게도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원근법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고대와 현대가 남긴 영욕의 역사가
상호 교차하는 착각에 빠진다.  

민본(民本)의 전통과 더불어 황제의 통치는 역대로 여러 부작용도 함께 양산했다. 진대(秦代) 이래로 100대가 모두 진의 정치를 행했다는 화술은 역사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를 잘 상징한다.

법 위에 군림한 황제는 권력의 일체화와 일원화에 집착한 나머지 다원적 생각을 용납지 않는 분서(焚書)를 일삼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가두는 문자옥을 행하고 심지어 갱유하기도 하였다.

왕조가 뒤바뀌면서 통례적으로 행해진 사상 억압과 또 다른 사상의 해방은 근대 이후 중국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였다.

분서갱유를 묘사한 18세기 작자 미상의 그림.

분서갱유를 묘사한 18세기 작자 미상의 그림.

오늘날 중국 공산당의 통치는 자체적으로 완결된 내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세계 역사의 무대에서 중국식 사회주의의 성공은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이 몰락한 오늘날 거의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즈음하여 국가경영을 떠맡은 시진핑 정부의 중압감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국몽(Chinese Dream)’이란 키워드는 제국의 영광과 국가의 부흥을 함께 말하고 있다.

찬란했던 중화제국의 노하우를 되살려 오늘의 사회주의 중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는 열망을 담고 있다. 중화제국 천 년의 영광과 중국 공산당 백 년의 위업이 교차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그러나 중화제국의 역사는 위대했던 성세(盛世)만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그 뒤로 길게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를 해소해야 할 숙제 역시 준엄하게 말하고 있다.

숙제는 사회주의 중국의 실체 속에서도 여전히 책장을 넘기고 있다. 역사는 쳇바퀴 돌 듯 반복 순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변곡점을 넘으면 대하를 건너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가곤 한다.

중국공산당 100년의 영욕은 해묵은 반복의 쳇바퀴를 넘어 과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중국몽’이란 글자가 함축하는 다의성은 당면한 시진핑 정부의 감격과 더불어 숙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글 강진석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철학박사)
정리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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