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생물학적으로 젊다는 이유로 정권의 간택을 받아 평범한 청년들은 꿈꿀 수도 없는 1급 공무원 자리에 오른다면, 그것은 나와 무관한 누군가의 벼락출세라고 느낄 뿐이다.”
청년과 소통한다며 박성민 발탁 #청년들 “불공정 벼락출세” 분노 불러 #“차라리 공채 했으면 덜 억울할 것” #경쟁 통해 당대표된 이준석과 대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20대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청년비서관으로 임명한 다음날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이다. ‘여의도 대나무숲’은 보좌진 등 국회 근무자들이 이용하는 페이지다.
이날 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엔 “상대적 박탈감”, “줄만 잘 타면 큰 노력없이도 출세”, “9급 주사 능력도 안되는 1급 청와대 비서관”, “공개적으로 뽑았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 않았을 것”, “청년들을 좌절시키는 인사”와 같은 표현이 있었다.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며 문 대통령이 25세를 청년비서관에 임명했지만, 당사자인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 경력이 적은 대학생을 1급 공무원에 준하는 청와대 비서관에 임명한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청년과 소통하겠다는 메시지를 주려던 인사가 오히려 청년들의 민감한 ‘공정 감수성’을 건드린 셈이 됐다.
불공정 논란의 배경에는 ‘박성민은 이준석과 다르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청와대의 박 비서관 발탁은 이준석 돌풍을 고려한 것이란 시각이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 전당대회 ‘경쟁’을 통해 나경원·주호영 등 당내 거물 정치인을 이기고 당대표에 당선됐다. 2011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시작으로 10년간 정치 경력을 쌓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 박 비서관은 ‘발탁’을 통해 청와대 비서관이 됐다. 적지 않은 청년들은 ‘경쟁’과 ‘발탁’의 차이를 공정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한국 정치의 ‘청년 사용법’과 뿌리를 맞대고 있는 측면도 있다. 정치권은 위기 때마다 세대 교체라는 이름으로 ‘청년 마케팅’을 해왔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책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 “정당들은 선거 때만 청년을 ‘늙은 정당의 주름살을 가려주는 비비크림 같은 존재’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은 대체로 ‘깜짝 발탁’이나 ‘낙점’이란 형식으로 ‘비비크림 같은 존재’를 뽑아온 게 사실이다. 한 청년정치인은 “당 지도부가 누군가를 발탁하면 우리들은 ‘줄 타고 올라간다’고 표현했다. 그런 식으로 발탁되는 게 중요하다보니 청년들간의 수평적 연대 보다,기성 정치인과의 수직적 연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박 비서관도 민주당이 청년층의 외면을 받자 이낙연 전 당대표가 깜짝 발탁한 인사 아닌가. 이번 비서관 임명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들이 위에서 누군가를 찍는 식으로 순치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는데, 민주당에 그런 사례가 많았다. 박 비서관이 최고위원 때 당 대주주들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는 발언을 한 적은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불공정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정 청년정치인을 발탁하는 방식이 세대 교체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박성민 청년컨설팅 ‘민’ 대표는 “3김 시대 때부터 ‘젊은 피 수혈’이라는 건 있었다. 운동권 등 집단적 청년 세력이 없어진 2010년대 이후에는 의도적으로라도 청년정치인에게 길을 열어줘 정치적, 행정적 경험을 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이준석 대표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전날(22일) 방송에 출연해 “박 비서관 임명은 국민의힘 이 대표를 의식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 대표가 제1야당 대표가 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때 박 비서관에 대한 검증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