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트북을 열며

대학 구조조정, 차라리 n분의 1로?

중앙일보

입력 2021.06.2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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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천인성 기자 중앙일보 EYE디렉터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나도 어떻게든 지방대를 살렸으면 한다. 그래도 무작정 지역별로 학생 줄일 대학을 할당한다는 게 말이 되나. 수도권에 있긴 해도 ‘S·K·Y(서울·고려·연세대)’와 ‘인서울’에 밀려 정부 돈 한 푼 못 받는 우리 대학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경기도 소재 사립대에서 처장을 맡고 있는 A교수의 하소연이다. 그가 사형선고라 말한 건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대학 구조조정 방안이다. 신입생 부족으로 지방대 몰락이 현실이 되자 교육부는 ‘권역별 정원 감축’이란 카드를 꺼냈다. 학생 충원율 등 기준에 미달하는 대학(하위 30~50%)에 정원 축소를 요구한다는 건데, 감축 대학을 수도권 등 권역별로 나눠 정한다.

‘지방대를 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해도 ‘정원 감축=수입 감소’를 눈앞에 둔 대학으로선 달가울 리 없다. 특히 수도권이란 테두리에 묶여 S·K·Y, 인서울 대학과 경쟁하게 된 경기도·인천지역 대학에선 벌써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이 나온다. 때문에 “차라리 모든 대학이 같은 비율로 정원을 감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식당 밥값을 머릿수로 나눠 내듯 정원 감축분을 ‘n분의 1’로 하자는 건데, 물론 서울 소재 대학들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뛴다.

노트북을 열며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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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신입생 미달 사태에 문재인 정부가 부랴부랴 꺼낸 구조조정 방안은 사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대학 구조개혁평가의 재탕이다. 지금 나오는 불만·비판도 당시와 비슷하다. 서울 대학들은 “입학 희망하는 학생이 많은데 왜 줄여야 하냐”고 되묻고, 지방 사립대에선 “자구 노력 없이 정부 돈 받던 국립대만 살아남을 것”이라 비판한다. 결국엔 제구실 못 하고 연명하는 ‘좀비 대학’만 늘 것이란 암울한 관측도 그때와 판박이다.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실대학 퇴출을 촉진할 법률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이 ‘과거의, 과거에 의한, 과거를 위한’ 구조조정을 답습한다는 점도 닮았다. 정부가 채찍(규제)과 당근(예산)을 쥐고 군림하는 상황(‘과거의’), 뿌리 깊은 대학 서열에 의해 좌우되는 양상(‘과거에 의한’), 수요자인 학생·학부모·기업 대신 교수 등 대학 기득권층의 이해에 흔들리는 모습(‘과거를 위한’)이 되풀이될 것 같다는 얘기다.

진정한 대학 개혁은 ‘학생이 줄었으니 대학끼리 고통을 나누자’는 발상이 아니라 인공지능(AI) 시대,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새 판을 짜겠다는 의지와 계획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학 개혁은 정치권의 외면, 국민의 무관심 속에 관료와 이해당사자의 손에만 맡겨져 왔다. 이번 구조조정은 내년 대선 뒤 출범할 새 정부에서 본격화한다. 다가오는 대선, 건설적인 대학 공약 제시와 진지한 토론을 기대한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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