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생긴 뒤 처음으로 대로변 1층이 비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24 00:02

업데이트 2021.06.24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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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 극장 옆의 한 상가에 통신사 간판이 떼어진 채 비어 있다. 함종선 기자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 극장 옆의 한 상가에 통신사 간판이 떼어진 채 비어 있다. 함종선 기자

“대로변 1층에도 7~8군데가 비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처럼 이렇게 대로변 1층 대형 상가가 많이 비어 있는 건 강남역 상권이 만들어진 후 근 40년 만에 처음 봅니다.”

8곳 ‘임대 문의’…공실률 6% 넘어
재택근무 등 영향 유동인구 급감
강남역 승하차 인원 22% 줄어
월세 밀린 자영업자 야반도주도

서울 서초초등학교 옆 서초빌라 등 강남역 인근에서만 40여 년을 살았다는 김모(68)씨는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강남역 일대 상가 공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대표 상권인 강남역 상권이 흔들리고 있다. ‘입점 대기’가 줄을 서던 대로변 1층 점포에도 공실이 늘어나고, 이면도로변 점포에는 점포를 빌려 장사하던 자영업자가 보증금을 다 까먹고 ‘야반도주’ 하는 경우까지 벌어진다.

서울 핵심 상권 임대료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서울 핵심 상권 임대료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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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상권은 1982년 말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이 개통되면서 형성됐다. 강남역 상권 중 가장 인기가 높고 임대료가 비싼 곳은 신논현역에서 강남역 사이의 강남대로 변이다. 교보문고 강남점, 나이키 강남 직영점, 쉑쉑버거 한국 1호점, 지오다노(의류), 시코르(신세계백화점의 화장품 편집숍), 카카오프렌즈(카카오 팬시용품 판매점), 메가박스 등 각 분야에서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의 대표 매장이 모여 있다. 현재 이런 매장 사이사이에 8곳의 1층 매장이 비어 있다. 옛 유니클로 강남역점의 경우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임대 문의’가 붙어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 한국지사의 남신구 이사는 “지금 공실이 난 곳들을 보면 계약 만료 기간 1~2년 전부터 각 브랜드 회사가 찾아가 임대 예약을 하던 곳”이라며 “매출이 줄어든 브랜드는 그냥 빠져나갔고, 추가 출점을 고민하는 브랜드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공실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C&W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강남역 메인로의 공실률은 6.2%로 1년 전 4.3%에 비해 1.9%포인트 증가했다.

수천만원 권리금 포기도 속출

강남대로 뒤편 이면도로변의 상권은 상황이 훨씬 안 좋다. 대기업 브랜드가 버티는 대로변과 달리 이면도로변은 자금 여력이 없는 자영업자의 점포가 많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역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 코로나까지 왔다”며 “엎친 데 덮친 격인데, 더 절망적인 건 출구가 안 보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한 영업시간 단축과 재택근무 확산 등으로 강남역 상권의 유동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데 최저임금은 내년에도 올라갈 예정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호선 강남역 유동인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호선 강남역 유동인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실제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강남역의 지하철 승하차 인원은 전년 동기 대비 2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양대 노총은 내년 최저임금으로 시급 1만원 이상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월세를 못 내 보증금을 다 까먹은 상황에서 계약기간이 끝날 경우 세입자는 자기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원상복구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어 건물주와 연락을 끊고 임차인이 야반도주하는 일도 벌어진다”며 “계약기간 전에 보증금을 다 날린 후 건물주와 법적 다툼을 벌이는 곳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건물값 내릴라” 건물주는 임대료 고수

자영업자는 장사를 시작할 때 이전 점포 운영자에게 내고 들어왔던 수천만원의 권리금(일종의 영업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강남역 CGV 뒤편에서 올 초까지 퓨전식당을 운영했다는 김모(57)씨는 “5000만원의 권리금을 포기하고 장사를 접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한 결정”이라며 “적자를 견디지 못해 식당 문을 닫고 남은 임대 기간의 월세만 건물주에게 내는 사장님도 봤다”고 말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빈 점포에 ‘임대 문의’를 붙여 놓았다는 건 임차인 입장에선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간 최악의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강남역 상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임대료 인하 조짐은 없다. 강남역 대로변 1층의 경우 전용면적 기준 평당 임대료가 100만원선으로 1년 전과 같다. 상가뉴스레이다 선종필 대표는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값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건물주는 임대료를 조정하지 않는다”며 “공실이 늘어 ROI(투자자본수익률)가 떨어져도 건물값은 올라가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국내 상권 중 강남역이 제일 먼저 살아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김혁 KYG상권분석연구소 연구원은 “강남역은 유동인구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교통 여건과 콘텐트를 갖고 있고, 입점 시기를 저울질하는 업체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남역 상권은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신분당선 강남역 등이 지나고 일산·동탄·남양주·김포 등 수도권 각 지역으로 가는 광역버스가 다녀 하루 평균 100만 명 이상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던 대한민국 최대 상권이다. 1990년대에는 뉴욕제과·타워레코드 등이 명소였다.

함종선·김원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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