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과 함께 일상 회복을 준비하던 전 세계가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았다. 전파력이 강한 델타(인도발)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며 영국, 미국, 이스라엘 등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까지 위협하면서다.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지 않으면 올가을 이후 '델타 팬데믹'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AID) 소장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델타 변이가 코로나19 방역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파우치 소장은 "이달 첫 주 미국 내 신규 확진자 중 델타 변이 감염자의 비율은 10%에 불과했는데, 2주 만에 20.6%로 급등했다"며 강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델타 변이 감염자는 2주마다 두 배씩 늘고 있다. 이런 강한 전파력에 로셸 월렌스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도 다음 달쯤에는 델타 변이가 미국 내에서도 지배적인 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뚫고 확산…이스라엘 "마스크 다시 쓰라"
지난해 10월 인도에서 처음 발생한 델타 변이는 기존의 알파 변이(영국발)보다 전파력이 60%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델타 변이가 코로나 바이러스 중 확산 속도가 가장 빠르고, 치명적이며, 기존 백신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며 ‘우려 변이(variants of concern)’로 지정했다.
현재 델타 변이가 확인된 곳은 최소 92개국에 달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국제 인플루엔자 정보공유기구(GISAID)의 코로나19 추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각국의 신규 확진자 중 델타 변이 감염률은 영국 98%, 러시아 99%, 포르투갈 96%, 캐나다 66%, 이탈리아 26%, 벨기에 16%, 독일 15% 등으로 나타났다. GISAID는 전 세계 코로나19 신규 확진 사례에서 델타 변이가 차지하는 비중을 87% 이상으로 분석했다.
이 여파에 영국은 다시 확진자가 급증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며 1000명대까지 떨어졌던 하루 신규 확진자는 최근 사흘째 1만 명 선을 넘고 있다. 이 가운데 99%가 델타 변이 감염자라는 분석이다. 당초 지난 21일로 계획했던 봉쇄 전면 해제 조치도 다음 달 19일로 연기한 상태다.
영국은 백신 1차 접종률이 63%에 달한다. 이런 영국마저 델타 변이에 뚫리는 조짐에 주변 유럽국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지금은 델타 변이 감염자의 비율이 적은 듯 보이지만 몇 주 전 영국의 상황도 그랬다"며 “델타 변이가 지배종이 되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포르투갈도 리스본을 중심으로 델타 변이 감염 사례가 급증하자 지역 간 이동을 금지하는 등 방역 고삐를 죄고 있다.
'마스크 해방'을 선언했던 이스라엘도 방역 조치를 복원시키고 있다. 델타 변이 여파에 확진자 수가 다시 반등하는 조짐에 총리가 "실내에선 다시 마스크를 써달라"고 권고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당국은 최근 신규 확진자 가운데 70%가 델타 변이 감염자로 추정된다며 공항 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해외여행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가을 팬데믹 우려…"백신 2회 접종 서둘러야"
이같은 무서운 확산 기세에 올가을 이후 델타 변이가 새로운 대유행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존스홉킨스 공중보건대학원은 ‘코로나19 시나리오 모델링’ 을 통해 여름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최저점을 찍은 뒤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부터 다시 증가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내 사망자 수도 지금보다 1000명가량 많은 주당 3000명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백신 접종률이 낮은 어린이·청소년 사이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해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최대한 빨리 백신 접종을 2차까지 마무리하는 게 최선의 대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국 공중보건국(PHE)에 따르면 델타 변의 경우 백신 1회 접종 시 예방 효과는 33.5%에 불과했지만 2회 접종 시 80.9%로 크게 올라갔다. 짐 맥미나닌 영국 스코틀랜드 공중보건국(PHS) 국장은 이를 근거로 “백신을 2회 모두 맞으라고 독려해야 델타 변이의 위협에 맞설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경우 백신 1차 접종률 63%에 달하지만 2차 접종까지 마무리한 비율은 46%로 아직 절반에 못 미친다.
백신 접종률이 정체 상태에 접어든 미국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접종을 독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월렌스키 미 CDC 국장은 “백신 접종이 늦어지면 델타 변이는 또 다른 변이를 만들어 백신 효과를 더 떨어뜨릴 것”이라며 “더 위험한 변이로 이어지는 감염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당장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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