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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득 찬 '고양이 빌딩' 지은 日 다치바나 다카시 별세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서 '지(知)의 거인'으로 불리며 다양한 분야에서 100여 권의 저작을 남긴 탐사 저널리스트이자 평론가·작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지난 4월 30일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으로 별세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23일 보도했다. 향년 81세.

4월 30일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으로 세상 떠나 #다나카 총리 정치자금 파헤친 탐사보도 선구자 #'知의 거인'으로 불리며 100여 권 저작 남겨 #10만권 장서 보관 위해 '고양이 빌딩' 지어 #

다치바나 다카시(2013.12.25) [교도=연합뉴스]

다치바나 다카시(2013.12.25) [교도=연합뉴스]

1940년 일본 나가사키(長崎県)현에서 태어난 다치바나는 도쿄(東京)대 불문과를 졸업한 후 출판사 분게이슌주(文芸春秋)에 입사했다. 2년 후 퇴사하고 도쿄대 철학과에 다시 입학해, 재학 도중 프리랜서로 문필 활동을 시작했다.

1974년 현직 총리의 정치자금 문제를 파헤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연구-그 금맥과 인맥'이라는 기사를 '분게이슌주'에 실었다. 일본 탐사보도의 선구적인 사례로 자리 잡은 이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다나카 총리 퇴진을 이끌었다.

이후 『일본 공산당 연구』 『천황과 도쿄대』 『우주로부터의 귀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등 정치·사회·과학 등 분야를 넘나들며 깊이 있는 저작들을 남겼다. 1979년 제1회 고단샤 논픽션상, 1998년 제1회 시바 료타로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에도 그의 저작이 20권 넘게 번역·출간돼 있다.

2013년 자신의 서재로 쓰이는 '고양이 빌딩' 앞에 선 다치바나 다카시. [교도=연합뉴스]

2013년 자신의 서재로 쓰이는 '고양이 빌딩' 앞에 선 다치바나 다카시. [교도=연합뉴스]

건물 전체가 서가로 채워져 있는 '고양이 빌딩'의 내부. [사진 문학동네]

건물 전체가 서가로 채워져 있는 '고양이 빌딩'의 내부. [사진 문학동네]

10만여권의 책을 보유한 장서가이자 독서가로, 책 보관을 위해 도쿄도 분쿄(文京)구에 지하 2층, 지상 3층의 건물을 지었다. 건물 모서리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 있어 '고양이 빌딩'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과 작가의 독서 편력을 소개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라는 책도 출간됐다.

아사히 신문은 23일 다치바나에 대해 "이과와 문과, 과거·현재·미래 등의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선 종합지식인"으로 평했다. 그는 생전에 "미지의 경계를 철저히 파고들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 왔다. 이런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조사하고 쓴다"고 했다.

2013년 도쿄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이어령(왼쪽) 교수와 다치바나 다카시. [중앙포토]

2013년 도쿄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이어령(왼쪽) 교수와 다치바나 다카시. [중앙포토]

2013년 도쿄도서전에서 한국 이어령 교수와 가진 대담에서 다치바나는 "한국인의 감정을 일본이 언제 이해하게 될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0년 일본에서 출간한 『지식의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내가 책 3만권을 읽고 100권을 쓰면서 생각한 것』이라는 책에서 그는 "장례식에도, 무덤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다. 고인의 생전 뜻대로 장례식은 수목장으로 치러졌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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