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구팀 "화재 진압 소방관 몸에서 유해 난연제 검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7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마와 사투를 벌인 소방관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마와 사투를 벌인 소방관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관의 체내에서 일반인들보다 많은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재 전후 소방관 소변·혈액 분석 #소방 자체가 '2급 발암물질' 노출

또, 화재 진압에 참여한 소방관의 체내에서 난연제 등 유해물질 농도가 화재 진압 전보다 상승하는 것도 확인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속 연구팀은 화재 진압을 전후해 소방관의 혈액·소변 시료에서 난연제 등 유해물질 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분석, 최근 국제 위생·환경보건 저널에 발표했다.

난연제는 타기 쉬운 성질이 있는 플라스틱이나 천 등에 바르거나 첨가해 불에 잘 타지 않도록 하는 물질을 말한다.

최근 각 가정·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가구·카펫·전자제품 등에는 난연제가 들어있어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들이 난연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화재 진압 후 난연제 성분 증가 

18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는 물건이 불에 타면서 다양한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연합뉴스

18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는 물건이 불에 타면서 다양한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연합뉴스

연구팀은 111㎡ 크기의 목조 실험용 주택에 침대·의자 등 가구와 TV를 배치하고, 화재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소방관은 인근 장소에서 대기하다 1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바닥재 등을 교체하면서 12차례 화재 실험이 반복됐고, 이 중 3차례 실험에서 총 36명의 소방관을 대상으로 소변과 혈액 시료를 채취했다.

소변 시료는 화재 발생 전과 화재 진압 후 3시간, 6시간, 12시간 등 4차례 채집했고, 유기 인산염 난연제(OPFR)를 분석했다.
혈액 시료는 발화전과 진압 23시간 후에 각각 채집, 폴리브롬화디페닐에테르(PBDE) 난연제와 퓨란·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소방관 체내의 난연제 성분이 화재 전보다 화재 진압 후 상승한 것이 확인됐다.

특히, 유기인산염 난연제의 하나인 디페닐인산(DPhP)의 경우 화재 진압 후 6시간까지의 농도가 화재 전보다 50% 이상 높아 통계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유기인산염 난연제의 하나인 BDCPP, 즉 비스(1,3-디클로로-2-프로필)인산도 화재 진압에 참여한 소방관에서 상승하는 게 확인됐지만 많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BDCCP는 이미 화재 진압에 투입되기 전 소방관 체내에서 이미 일반인의 3배 이상 높은 농도로 검출됐다.

건물 내 진입한 소방관 더 높아 

19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경기도 안전 특별점검관, 국토교통부 건축구조기술사, 국토안전관리원 주무관 등 전문가들이 소방관과 함께 건물 구조 안전진단을 위해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경기도 안전 특별점검관, 국토교통부 건축구조기술사, 국토안전관리원 주무관 등 전문가들이 소방관과 함께 건물 구조 안전진단을 위해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소방관 중에서도 건물 내 진입해 진화한 경우와 건물 외부에서 진화 작업을 수행한 경우 오염물질 농도에서 차이가 났다.

DPhP의 경우 화재 6시간 후 건물 외부에서 작업한 소방관은 소변 크레아티닌 1g당 1.38㎍(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이 검출됐으나, 실내 진입한 소방관의 경우 1.66㎍이 검출됐다. 일반인에게서 검출되는 0.8㎍의 두 배다.

연구팀은 "외부에서 작업하는 소방관은 호흡을 통해 유해물질을 흡수할 수도 있지만, 내부에 진입하는 소방관의 경우 공기호흡기(SCBA)를 착용하기 때문에 호흡기보다는 피부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화재 진압 투입 전 소방관의 몸에서는 인체 발암물질인 2,3,4,7,8-펜타클로로디벤조퓨란(23478-PeCDF)의 경우도 일반인들보다 높게 검출됐다.

작업 할당 때 유해물질 체내 반감기 고려해야

18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IARC)는 화재 진압 등 소방관의 활동 자체를 발암물질 2B 그룹(인체 발암 가능)으로 분류하고 있다.

IARC는 난연제인 PBDE를 인체 발암물질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국가 독성프로그램(NTP)에서는 쥐 실험을 통해 PBDE의 발암성 증거를 발견한 바 있다.

일부 PBDE는 난분해성 유기오염물질(POPs)로 분류되면서 스톡홀름 협약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용이 제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PBDE 대신 OPFR의 사용이 늘고 있지만, OPFR 중에서도 TDCPP나 TCEP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잠재적 발암성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소방관들은 난연제뿐만 아니라 물건이 타면서 발생하는 다이옥신·퓨란 등에도 노출될 수 있다.

연구팀은 "소방관의 개인 보호 장비나 사무실 등에서 높은 농도의 난연제가 검출되고 있고, 캐나다 연구에서는 소방서 먼지에서 난연제 BDE-209의 농도가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며 "소방관들이 BDE-209 등에 만성적으로 노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팀은 또 "화재 진압 후 샤워를 하면 피부에 묻은 오염물질이 일부 제거될 수 있는데, 장시간 화재 대응으로 피부 세척이 지연되면 체내 농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방관의 건강을 위해 작업 할당 때 오염물질의 체내 반감기를 고려할 필요도 있고, 화재 진압 후 장비의 세척 등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DPhP의 체내 반감기는 9.5일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