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빠가 둘, 엄만 없어” 美어린이 방송 쑥 들어온 父父커플

중앙일보

입력 2021.06.23 05:00

'세서미 스트리트'의 게이 아빠 커플 등장 장면. [페이스북 '세서미 스트리트' 출연 배우 공식 계정]

'세서미 스트리트'의 게이 아빠 커플 등장 장면. [페이스북 '세서미 스트리트' 출연 배우 공식 계정]

“얘들아, 이분은 내 오빠인 데이브, 그 옆은 오빠의 남편인 프랭크란다. 인사하렴.”

미국의 대표적인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 게이 부모, 아니 부부(父父)가 등장했다. 1969년부터 전파를 타온 미국의 대표적 장수 프로그램이다. 쿠키 몬스터부터 빅 버드(Big Bird)까지 다양한 인형 캐릭터와 배우들등장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어왔다. 등장 인물 중 한 명인 미아(Mia)라는 소녀를 두고 ‘세서미 스트리트’ 제작진은 최신 ‘패밀리 데이’ 에피소드에서 게이 커플이 키우는 아이라는 설정을 제시했다. 유튜브에도 공유된 영상을 보면 아이들과 인형들은 자연스럽게 데이브와 프랭크 남남 커플을 보고 “안녕하세요”라며 즐겁게 포옹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21일(현지시간) 이를 두고 “미국 방송사에 남을 역사적 장면”이라고 평했다. CNN 역시 “아빠가 둘인 아이가 드디어 ‘세서미 스트리트’에 등장했다”고 반가움을 표했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게이 아빠 커플 등장 장면. [페이스북 '세서미 스트리트' 출연 배우 공식 계정]

'세서미 스트리트'의 게이 아빠 커플 등장 장면. [페이스북 '세서미 스트리트' 출연 배우 공식 계정]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성소수자들 이슈에서 진보 성향을 선명히 드러내왔다. 바이든이 부통령을 지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엔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됐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서까지 성소수자 커플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 중엔 이런 것도 있다. “어린이 여러분,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가족이 존재한답니다. 우리를 가족으로 만드는 건 뭘까요? 그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죠.”

WP는 “시청자인 어린이들에게 아빠가 둘인 상황을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고, ‘이런 가족 형태도 자연스러운 거랍니다’라고 설명하는 방식”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앨런 무라오카는 페이스북에 “‘세서미 스트리트’는 항상 나와 다른 남을 포용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왔다”며 “사랑은 그저 사랑일뿐”이라고 적었다. 남녀 성별을 가리지 말고 모든 종류의 사랑을 포용하자는 의미다. 이번 에피소드는 미국의 성소수자를 위한 축제인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를 기념해 제작됐다고 WP는 전했다.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측에선 반대 목소리도 들려오지만 전반적으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크다. 관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화나요' 등의 반응도 다수다. 그러나 이미 미국에 숫자가 많아지고 있는 성소수자 부모들의 문제를 외면 또는 질타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들의 입장에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접근법을 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는 분위기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인기 캐릭터 엘모와 함꼐 포즈를 취한 미셸 오바마 전 퍼스트레이디. AFP=연합뉴스

'세서미 스트리트'의 인기 캐릭터 엘모와 함꼐 포즈를 취한 미셸 오바마 전 퍼스트레이디. AFP=연합뉴스

이번 에피소드는 격세지감이기도 하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2006년, 인기 캐릭터인 어니(Ernie)와 버트(Bert)를 두고 “게이 커플을 묘사한 것 아니냐”는 논쟁에 휘말렸다. 당시엔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냈던 ‘세서미 스트리트’가 이번엔 게이 커플을 앞장서서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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