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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어 이란도 강경파 집권…‘강 대 강’ 파고 높아진 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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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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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이어 그 숙적인 이란에서도 강경 매파가 득세하면서 한국의 에너지 공급지인 중동에서 ‘강 대 강 대결’이 현실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감람산 전망대에 게양된 이스라엘 국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스라엘 예루살렘 감람산 전망대에 게양된 이스라엘 국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오스트리아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에 게양된 이란 국기. 로이터=연합뉴스

오스트리아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에 게양된 이란 국기. 로이터=연합뉴스

하레츠와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예루살렘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선 지난 13일 1948년 건국 이래 처음으로 좌·우파에 아랍계까지 8개 정당이 합쳐 ‘무지개 연정’을 구성했다.

〈YONHAP PHOTO-5115〉 Israeli Prime Minister Naftali Bennett sits next to alternate Prime Minister and Foreign Minister Yair Lapid as he speaks during the first weekly cabinet meeting of his new government in Jerusalem June 20, 2021. Emmanuel Dunand/Pool via REUTERS/2021-06-20 18:42:27/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YONHAP PHOTO-5115〉 Israeli Prime Minister Naftali Bennett sits next to alternate Prime Minister and Foreign Minister Yair Lapid as he speaks during the first weekly cabinet meeting of his new government in Jerusalem June 20, 2021. Emmanuel Dunand/Pool via REUTERS/2021-06-20 18:42:27/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스라엘에서 초강경파 총리 등장

지난 3월 23일 총선을 치른 이들은 기나긴 연정협상 끝에 2009~2021년 12년 넘게 집권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를 밀어내고 정권을 교체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에 반대하고 대이란 초강경파인 나프탈리 베네트가 신임 총리를 맡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네트는 취임 연설에서 “미국의 이란핵합의(JCPOA) 복귀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미국 사이엔 갈등이, 이스라엘과 이란 간에는 긴장이 감돌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강경파 베네트 총기 집권 #이란, 초강경 보수파 라이시 대선 당선 #서로 대결 강조해 충돌 가능성 고조 #이스라엘, 81년 이라크 원전 폭격 회고 #이란, 대리인 통해 이스라엘 타격 가능 #군 통수권자 하메네이도 대통령 지내 #라이시, 차기 최고지도자 수순 밟나 #미국 역할 강화…이란 제재 계속 유지 #이란, ‘약한 고리’ 한국 압박에 대비해야 #새로운 환경 맞춰 중동 외교 새판 짜야

지난 18일 이란 대선에서 당선한 에브라힘 라이시가 21일 테헤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지난 18일 이란 대선에서 당선한 에브라힘 라이시가 21일 테헤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이란서도 강경파 라이시 대선 당선

강경파의 등장이란 측면에선 이란도 마찬가지다. 지난 18일의 대통령 선거에서 초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가 당선해 8월 3일 취임할 예정이다. 라이시는 21일 테헤란에서 당선 뒤 첫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고 싶지 않다” “(JCPOA에 복귀하려면) 미국이 먼저 제재를 풀어야 한다” “(이란의) 미사일과 대중동 정책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을 쏟아냈다고 유로뉴스가 보도했다. 대미·대서방 관계에서 먹구름을 예고하는 강경 발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이탈했던 이란핵협상(JCPOA)에 복귀를 시도하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에도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다만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라이시의 배경에 국장과 함께 ‘이란 이슬람 공화국’, 그 아래에는 ‘내외신 기자회견’이라고 간단하게 적은 글자만 게시됐다. ‘미국에 죽음을’ 등 이란 강경파들이 전통적으로 외쳐온 살벌한 정치 구호는 없었다.

2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에브라힘 라이사 대통령 당선인의 내외신 기자회견 장면. 뒷쪽 벽면 위에는 이란 국장과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란 글자가, 아래에는 내외신 기자회견이라는 글이 각각 적혀 있다. 벽면 위에는 초대 최고지도자인 루홀라 호메니이(왼쪽)과 와 현재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이 걸려 있다. 애랫쪽 좌우에는 이란 국기가 세워져 있다. UPI=연합뉴스

2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에브라힘 라이사 대통령 당선인의 내외신 기자회견 장면. 뒷쪽 벽면 위에는 이란 국장과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란 글자가, 아래에는 내외신 기자회견이라는 글이 각각 적혀 있다. 벽면 위에는 초대 최고지도자인 루홀라 호메니이(왼쪽)과 와 현재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이 걸려 있다. 애랫쪽 좌우에는 이란 국기가 세워져 있다. UPI=연합뉴스

정치적 학살 서슴지 않은 체제 수호 시아파 사제  

라이시는 이란의 이슬람 사제다. 이슬람 시아파의 울라마(성직자) 중 서열 3위에 해당하는 ‘후자투르 이슬람’이라는 지위에 있다. 검찰총장(2014~2016년)과 사법부 부수장(2004~2014년)과 수장(2019~)을 지낸 이슬람 법학자다. 그는 국제앰네스티로부터 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직후 반정부 정치범 학살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2019년 총선 직후 벌어진 부정선거 규탄 운동도 유혈 진압한 협의를 받는다.
미국은 2019년 고문 등을 이유로 그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서방 시각에서는 이란의 이슬람 체제 수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보수 강경파 인물이다. 그런 그이지만 이날 회견에선 자신이 “인권과 사회적 권리를 옹호해왔다”고 강변했다. 외부의 인식과는 사뭇 다른 견해다. 서방의 인권 문제 지적에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서방과 아예 다른 이란 시아파 성직자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이란 대선에 최종 출마한 4명의 후보. 왼쪽부터 압돌나세르 헤마티, 모흐센 레자에이, 아미르호세인 가지자데-하셰미, 그리고 에브라힘 라이시. AP=연합뉴스

올해 이란 대선에 최종 출마한 4명의 후보. 왼쪽부터 압돌나세르 헤마티, 모흐센 레자에이, 아미르호세인 가지자데-하셰미, 그리고 에브라힘 라이시. AP=연합뉴스

역대 최저 투표율…신정체제에 대한 불만 고조

문제는 라이시에게 대통령 자리를 안긴 이번 대선이 역설적으로 그가 그동안 수호해온 이란식 이슬람 체제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투표율이 48.8%로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13차례 치른 대선 중 가장 낮은 데다 무효표가 370만 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대선 투표율은 보수파인 라이시와 개혁파인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이 맞붙었던 2017년에는 73.33%에 이르렀다. 낮은 투표율과 높은 무효율은 신정체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 표시로 볼 수 있다. 정권으로선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란 대선은 군주제가 득세한 중동에서 그나마 형식적으로 여론조사·TV토론·유세 등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후보를 이슬람 당국이 심사해 취사선택하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 선거’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19일 이란 대선 당선인인 에브라힘 라이시(오른쪽)가 현직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함께 회견을 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슬람 시아파 사제이지만 로하니는 개혁파이고 라이시는 보수파로 분류된다. AP=연합뉴스

지난 19일 이란 대선 당선인인 에브라힘 라이시(오른쪽)가 현직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함께 회견을 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슬람 시아파 사제이지만 로하니는 개혁파이고 라이시는 보수파로 분류된다. AP=연합뉴스

헌법수호위, 522명 중 7명 후보 골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선 552명이 출마를 신청했으나 헌법수호위원회가 이를 심사해 7명에게만 자격을 부여했다. 3명이 자진 사퇴해 최종적으로 4명이 출마했다. 지난 2017년 선거에는 1636명의 신청자 중에서 4명만 후보로 선정됐다. 올해는 신청 자격을 ‘석사 이상’으로 제한한 때문으로 보인다. 당국이 신청자를 심사해 최종 출마자를 고른다는 것 자체가 서구식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이 때문에 ‘선거 전에도 당선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개혁파로 분류되는 에샤크 자한기리 수석부통령, 증도 성향의 알리 라리자니 최고지도자 고문, 모함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이 탈락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약식 여론조사에서 37%의 지지를 보였던 마무드 아미디네자드 전 대통령도 출마가 저지됐다. 개혁파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부 장관은 과거 혁명수비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녹취가 공개되면서 출마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왜 이런 녹취가 하필 선거를 앞두고 공개되는지 유권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란의 부셰르 원전. 핵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으로 의심 받는 시설이다. AP=연합뉴스F

이란의 부셰르 원전. 핵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으로 의심 받는 시설이다. AP=연합뉴스F

중도파 탈락시켜 보수파에 표 몰리게 ‘유도설’

AFP 통신은 “(헌법수호위원회)가 (중도파인) 라리자니를 탈락시켜 갈 곳 잃은 표가 라이시로 몰리도록 유도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중도와 개혁 성향의 거물을 탈락시켜 정치적 다양성을 위축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란의 이슬람 당국이 갖은 수단을 동원해 라이시를 대통령에 안긴 셈이다. 물론 지난해 1월 3일 이란 혁명수비대의 중동 특임부대인 쿠드스군(예루살렘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국제공항에서 미군 드론 공격에 암살된 뒤 이란 민심이 격앙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과반수가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슬람 체제나 당국의 대선 후보 솎아내기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지난 18일 이란의 투표 현장, 온몸을 가리는 차도르를 입거나 검고 짙은 복장을 하는 사람은 보수파이거나 공무원이거나. 정부 자금이 들어간 기관에 다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8일 이란의 투표 현장, 온몸을 가리는 차도르를 입거나 검고 짙은 복장을 하는 사람은 보수파이거나 공무원이거나. 정부 자금이 들어간 기관에 다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에선 핵시설 폭격 ‘데자뷔’ 거론

이처럼 중동에서 숙적인 이스라엘과 이란에서 모두 강경파가 집권하면서 위기가 가속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7일은 81년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1200㎞ 이상을 비행해 핵 프로그램을 가동하던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전을 과감하게 폭격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스라엘 일간지 예루살렘 포스트는 지난 20일 이를 거론하며 자국의 군사 모험주의 가능성을 경계했다. 이 신문은 예비역 공군 장성인 렐리크 샤피르을 인용해 “이란 핵시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으며 지하나 산속에 숨어있고 주변에 촘촘한 방공망이 설치돼 여건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샤피르도 “중동 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인간의 욕구도 동일하다”며 폭격 가능성은 배제하진 않았다. 이란이 개발을 시도하는 핵무기가 이스라엘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인식이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예멘에서 열린 시아파 후티 반군 전사자들의 장례식. 이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예멘에서 열린 시아파 후티 반군 전사자들의 장례식. 이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이란 대리인 내세워 이란 타격 가능성도

이란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시리아의 알라위파(시아파의 한 분파로 간주)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 등 이스라엘과 경계를 맞댄 ‘대리인’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타격해 중동 정세 뒤흔들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과거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 항구 등으로 로켓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등으로 발사한 탄도 미사일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받는 이란이 그 미사일을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을 건너 불과 200㎞정도 떨어진 이스라엘의 새로운 수교국 아랍에메리트(UAE)나 바레인 등을 위협할 때 써먹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일은 이에 따른 엄청난 책임을 질 각오가 있고, 이로 인한 정치적·전략적 이득이 외교적·경제적 손실보다 크다고 이란 권력층이 판단한 다음의 일이다. 이란의 이슬람 권력층으로선 경제 악화로 인한 국민의 불만 고조가 더 무서울 수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기권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AP=연합뉴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AP=연합뉴스

이란의 군통수권자는 대통령 아닌 최고지도자

따져볼 점은 이란의 군 통수권이 선거로 당선한 대통령이 아닌 시아파 사제인 최고 지도자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공식 명칭이 ‘이란 이슬람공화국’인 이란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 아니다. 최고지도자(라흐바르 에 모아잠)로 불리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 성직자다. 1979년 이란혁명 직후 만든 헌법은 ‘지도자(라흐바르)’가 국가원수와 최고 종교지도자는 물론 군 통수권자와 사법부·입법부·행정부의 상징적 수장을 겸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일 뿐이다. 종교인인 최고지도자가 종교는 물론 국정까지 좌지우지한다. 사실상의 정교일치 또는 종교우위 체제다.
최고지도자는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최종 임명하는 것은 물론 의회의 3분의 2 찬성을 얻으면 대통령을 해임할 권한도 있다. 사법부와 군부의 인사권도 쥐고 있다. 임기 8년의 대법원장과 국영방송 사장에 육·해·공군 수장까지 임명하고 해임한다. 서구에서 이란을 사실상의 신정국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전문가회의(지도자 선출전문가회의라고도 함)라는 합의체에서 선출한다. 이 회의는 보통·직접 선거로 뽑힌 임기 8년의 의원 86명으로 이뤄졌다. 전문가회의는 최고지도자 다음가는 최고 권위의 조직이다. 헌법을 해석하고 대통령과 의원 선거를 감독하는데 입후보자 자격을 심사·인증하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국회가 가결한 법안이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부합하는지 심사해 합법성을 보증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다. 의회 위에 종교조직이 자리 잡은 셈이다. 라이시는 전문가회의의 2인자다.
이런 조직이 생긴 이유는 79년 이란혁명을 주도한 아야툴라 호메이니(1902~89)의 이상 때문이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율법학자와 세속 법학자를 망라한 법학자들이 지배하는 제정일치의 법치를 꿈꿨다. 최고지도자를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보호자’로도 부르는 이유다.
전문가회의는 최고지도자의 활동을 감독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각 주도의 중앙 모스크에서 금요예배를 주도하는 이맘(이슬람 예배지도자이자 종교지도자)을 임명하는 권한도 있다. 하지만, 임기 8년의 의원이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를 견제하기란 쉽지 않다.
이란에는 국민이 뽑은 의회(마슈레스)가 존재하지만 이슬람 법학자 6명과 일반 법학자 6명 등 모두 12명으로 이뤄진 감독자평의회가 있어 상원 역할을 한다. 이슬람 법학자 6명은 최고지도자가 지명하며 일반 법학자는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 중에서 의회에서 최종 선출한다.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당선인. 8월에 취임한다. AP=연합뉴스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당선인. 8월에 취임한다. AP=연합뉴스

호메이니-하메네이 잇는 최고지도자, 라이시로 이어질까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는 호메이니가 맡았다. 그가 89년 세상을 떠나자 오른팔이던 알리 하메네이가 자리를 이었다. 하메네이는 어려서 이슬람 종교학교에 다닐 적 호메이니의 제자였다. 그는 혁명 전인 60년대 이슬람 활동으로 친미 샤(이란 군주) 정부에 체포되기도 했다. 샤 정부의 박해를 피해 소련으로 피신했다. 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샤가 해외로 망명하자 오랜 망명생활을 끝내고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한 호메이니는 제자인 하메네이를 수도 테헤란의 금요예배 이맘에 임명했다. 자신의 오른팔로 공인한 셈이다.
하메네이는 국방부장관과 혁명수비대 감독관을 지내는 등 혁명 정부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81년 폭탄을 이용한 암살 기도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는 그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95%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돼 3대 대통령에 올랐다. 유권자들이 하메네이가 호메이니의 복심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메네이는 대통령이라는 세속 권력을 경험하고 최고지도자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라이시가 이번에 대통령 임기를 수행한 뒤 다음달로 만 82세가 되는 하메네이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에 오르는 시나리오가 이란의 이슬람 권력 내부에서 진행 중일 가능성도 있다. 헌법수호위원회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학력 규정을 ‘석사 이상’으로 높이고 개혁파를 철저히 배제하면서 라이시를 자리에 앉히려고 노력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란은 이미 포스트 하메네이를 준비하면서 강경파 중심으로 체제 결속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대이란 제재 유지한다는 입장…압박 가속화  

이런 이란에 대해 미국은 JCPOA에 복귀해도 제재 해제는 미루겠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미국의 토비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지난 9일 연방상원 세출 위원회에 출석해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경제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해 외화에 목마른 이란이 한국에 석유 수출대금 지급을 더욱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수출대금 지급은 경제제재 위반이기 때문에 미국의 특별 허가가 필요하고 미국이 이를 허가할 가능성은 이미 풀어놓은 인도주의 지원 외에는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이란의 한국 괴롭히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을 약한 고리로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란 정부는 자국에서 무엇인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정치적 제스처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건설·무역 시장이 조만간 열릴 가능성은 안타깝지만, 지극히 작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바이든이 당선인 시절의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바이든이 당선인 시절의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다루듯 북한 다룰 가능성 커

주목할 점은 미국이 중동에서 이란을 다루는 방식으로 북한을 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미사일·로켓 등 살상 무기의 확산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점이 많다. 군사 전문가들은 로켓 무기의 확산을 지난 5월 6~2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로 로켓포를 발사하고 이스라엘이 보복 폭격을 하면서 벌어진 2021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의 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서방 정보 당국은 이 로켓 무기의 기술과 재료 등이 북한에서 비롯해 이란을 거쳐 이전됐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아울러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이 발사하는 탄도 미사일도 같은 경로로 기술과 재료가 이전된 뒤 이란에서 제조돼 이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본다. 예멘에선 후티 반군이 정부군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파 연합군과 싸우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본국이나 예멘 서쪽에 있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선박으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해 중동 지역 안보 위협으로 지목돼 왔다.

미국에 이란과 북한은 한 갈래의 고민거리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선 북한과 이란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기 확산부터 경제제재까지 같은 갈래의 고민거리일 수도 있다. 한반도 인근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함께 북한과 중국의 동향을 감시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이 중동을 눈여겨보면서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할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