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리세스 오블리주

중앙일보

입력 2021.06.2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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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 이건희(전 삼성 회장)·정몽구(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정몽준(아산재단 이사장)·신창재(교보생명 회장)·신동빈(롯데그룹 회장)·이명희(신세계 회장)·정의선(현대자동차그룹 회장)·신동주(SDJ코퍼레이션 회장)·최태원(SK그룹 회장).

10여년 사이 뒤바뀐 10대 부자 순위
두 명만 그대로…IT·바이오서 약진
재산 걸맞은 사회적 책임 중요해져

2010년 포브스가 뽑은 대한민국 부자 순위 1~10위 명단이다. 11년이 지난 2021년, 이 순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서정진(셀트리온 명예회장)·이재용·김정주(넥슨 대표이사)·김범수(카카오 의장)·권혁빈(스마일게이트의 CVO)·홍라희(전 리움미술관장)·김범석(쿠팡Inc 의장)·정몽구·이부진(호텔신라 사장)·서경배(아모레퍼시픽 회장) 순이다. 지난해 타계한 고(故) 이건희 회장의 상속을 고려하더라도 순위 바뀜이 크다. 지난 11년 동안 10위 안에 남아 있는 부자는 두 명뿐이다. 그동안 바이오·IT(정보기술) 분야에서 5명이나 상위 순위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 국내 증시에서 카카오와 네이버가 플랫폼기업 1위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이은 3위 자리를 두고 증시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다. 카카오는 올 초보다 주가가 두배 가까이 오르며 약진했다. 이 기간 네이버도 주가가 35%가량 올랐지만 더 큰 폭으로 뛴 카카오의 추격을 허용했다. 22일 현재 카카오는 시가총액이 70조 원대, 네이버는 64조 원대로 차이가 벌어졌다. 카카오는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단위로도 상장사 시총 5위 그룹으로 뛰어올랐다. 삼성·SK·LG·현대차그룹에 이은 5위다.

카카오그룹은 2019년만 해도 그룹 시총 순위 13위였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사업이 주목받으며 7위로 뛰었고, 올해는 다시 두 계단이나 올라섰다. 전문가는 미래 성장성과 다양한 방면으로의 확장성 덕에 카카오그룹이 약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카카오그룹 계열사는 2015년 말 45개였지만 지난해 말에는 118개로 5년간 무려 162%나 늘었다.

서소문포럼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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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이런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한국 경제를 주름잡는 재계에 지각 변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최고 부자 자리는 전통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대기업 사주 일가 위주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자리를 IT·바이오산업에 올라탄 신흥 부자가 빠른 속도로 꿰차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대기업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야 하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한다. 카카오·네이버의 경우처럼 신흥 산업군에서도 영원한 승자는 없다.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라, 계속 우직하게)’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 최고 부자에 오르는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순식간에 최고 부자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속도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는 얘기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2010년 회사를 창업한 지 11년 만에 시가총액 70조원이 넘는 회사로 끌어올렸다. 올해 그의 지분 가치는 7조원을 넘어서며 한국 최고 부자 7위에 올랐다. 이런 흐름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부자 1위에 올라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 쿠팡이 덕평 물류센터 화재의 여파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공교롭게도 화재 발생 5시간 뒤 국내 법인 의장과 등기이사 자리에서 사임한다고 밝히면서 책임 회피 논란이 일었다. 쿠팡은 “지난달 말 확정된 내용을 발표한 것”이라며 화재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확산하면서 불매 운동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소비자는 이제 전통 부자나 신흥 부자를 가리지 않는다. 그가 일군 회사 규모, 보유한 재산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요구한다. 단순히 떠오르는 산업군이나 스타트업 출신이라 해서 그들만의 잣대로 보지 않는다. 제프 베이조스가 우주여행을 가겠다고 하자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청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것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잇단 SNS로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들자 그의 경영권을 박탈하겠다는 단체(Stop Elon)가 등장한 것도 이들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요즘 사회는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부자의 도덕·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묻고 있다. 160여 년간 5세대에 걸쳐 스웨덴 국민의 사랑을 받는 발렌베리 가문이 해 온 것처럼….

김창규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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