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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 해도 어찌 이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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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뉴스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뉴스 팀장

71년 전 이맘때, 한강 이북 자강도의 아낙 장농숙이 인민군에 입대한 남편 황윤성에게 보낸 편지. “한 번도 답장이 없으니 (중략) 잘 생각하여 보시오. 사람을 아프게 해도 어찌 이토록 아프게 합니까.” 무정한 남편에 대한 원망이 꾹꾹 눌러쓴 두꺼운 펜글씨에서 뚝뚝 묻어난다. 남편이 어지간히 그리웠는지, 편지 끝 한 귀퉁이엔 이렇게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편지야, 빨리 가거라.”

남편이 무정한 게 아니었다. 장 씨가 편지를 쓴 건 1950년 6월 8일. 인민군의 남침 기습 공격을 2주 남짓 남긴 시점이다. 남편 황 씨도 한강을 건너 이남으로 진격했을 테고, 부인의 편지는 온 줄도 몰랐을 터. 편지는 조선인민군 우편함에 보관된 채, 종전(終戰) 아닌 정전(停戰)으로 6·25가 막을 내린 뒤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로 옮겨졌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이흥환 엮음)에 전해지는 이 편지는 매년 6월 꺼내 읽어도 먹먹함이 짙어질 뿐이다.

1950년 6월 8일 장농숙씨가 인민군에 입대한 남편에게 쓴 편지 원본. [사진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1950년 6월 8일 장농숙씨가 인민군에 입대한 남편에게 쓴 편지 원본. [사진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통일부를 취재하면서 만났던 이산가족들은 또 어떤가. 기자들과 당국자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울면서 일하는 현장이 이산가족 상봉 장소다. 60년 만에 만난 주름이 자글자글한 북녘 딸을 보고 남측의 치매 아버지가 “너는 누구냐”는데, 울지 않을 도리가 있나. ‘원쑤님’ 은혜 얘기만 하다가 남녘 아버지가 이별 버스에 오르자 눈이 잔뜩 빨개져서는 창문을 탕탕 두드리던 북녘 딸의 흐느낌도 선연하다. 실향민 가족인 기자 역시 명절 때마다 임진각 망배단에서 봐왔던 조부모의 쓸쓸한 뒷모습을 잊기 어렵다.

한반도의 분단은 우리 같은 범인(凡人)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다. 1950년 자강도의 장씨, 2018년 이산가족 현장에서 만났던 남쪽의 이삼희 할아버지, 북녘의 김경실 할머니 등이 무슨 죄인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2일 대화 가능성의 운을 뗀 미국을 향해 “꿈보다 해몽”이라며 “잘못 가진 기대는 더 큰 실망”이라고 잘라 말했다지만, 2018년을 끝으로 열릴 기미조차 오리무중인 이산가족 상봉은 어쩔 셈인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꺼내 드는 카드일 뿐인가. 사람이 먼저라더니 실상은 마지막 아닌가.

그렇다고 남북 높으신 분들께서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될 일이다. 평범한 이들 마음의 생채기를 보듬겠다는 진정성은 없이, 정치적 유산을 남기는 데만 눈이 멀까 봐 하는 얘기다. 역사의 상처를 겪어내고 이겨내고 삼켜내야 하는 건 보통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물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남매도 이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을 되새기길, 6·25를 이틀 남긴 오늘 다시 한번 진심으로 바란다.

전수진 투데이·피플 뉴스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