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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배의 시사음식

문화재가 된 막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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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정배 음식평론가

박정배 음식평론가

문화재청이 최근 ‘막걸리 빚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한민족 정서가 밴 술을 국가가 공인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고, 요즘 엄청나게 달라진 막걸리 시장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막걸리는 한민족의 오랜 쌀농사를 대변하는 술이다. 농작 상황에 따라 권장과 금지를 거듭해온, 이른바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음식사회학의 결정체다. 막걸리라는 단어 자체는 19세기 초 유행한 백과사전 『광재물보(廣才物譜)』에 탁주와 함께 ‘막걸니’로 처음 나온다. 한문으로 료(醪)·앙(醠)·리(醨)로 쓰고, 거르지 않은 탁하고 걸쭉한 술이란 뜻의 탁료(濁醪), 하얗다 해서 백주(白酒), 술 도수가 낮다 해서 박주(薄酒), 신맛을 중화시키기 위해서 재를 넣은 탓에 회주(灰酒), 찌꺼기가 있는 술이라 재주(滓酒), 탁한 술이라서 혼주(渾酒) 혹은 탁주(濁酒), 농부들이 일할 때 먹는 술이라 해서 농주(農酒) 또는 사주(事酒)로 불렀다. 『삼국사기』에 이미 탁주를 뜻하는 료(醪)가 등장할 만큼 쌀농사를 기반으로 한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술이다.

[사진 박정배]

[사진 박정배]

막걸리는 우리네 아픔과 함께해왔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한반도를 장악한 일제가 1909년 주세법을 적용하면서 집에서 누구나 빚어 먹던 막걸리는 통제의 긴 터널로 빠져든다. 1916년에 28만9356명에 달했던 막걸리 판매업자는 1932년 1명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 1965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막걸리는 법적으로 금지됐고. 살균 탁주의 공급구역 제한이 풀리면서 부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막걸리는 2008년부터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2010년경 1차 막걸리 붐이 일어난다. 한류 바람도 톡톡히 봤다. 막걸리가 최근 2차 붐을 일으키고 있다. 2017년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제가 시행되면서 제조 문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홈파티나 홈술이 증가하면서 가격보다 취향에 맞는 술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막걸리 인기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온라인 주문이 자리를 잡고 전통주 전문 소매점이 생겨난 것도 한몫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막걸리 소매시장 규모는 2016년 3000억 원대에서 지난해 5000억 원대로 확대했다. 1차 붐이 양적 성장을 주도했다면 2차 붐은 품질 향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멀다. 그저 그런 비슷한 모양의 막걸리병과 투박한 디자인부터 풀어야 한다. 국내 쌀 사용에 따른 법적·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일본의 사케처럼 쌀 도정 문제도 안정된 질 관리를 위해 필수적이다. 막걸리 전용 쌀 개발과 국(麴·누룩)과 효모의 분리 같은 기술적 개발도 숙제로 남아 있다. 프랑스 와인, 중국 백주, 일본 사케 같은 술이 되려면 좀 더 세밀한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박정배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