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올가미” 비판했던 한·미 워킹그룹 해체 수순…대북 유화 분위기 조성용?

중앙일보

입력 2021.06.22 12:08

업데이트 2021.06.22 16:23

한미 북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는 21일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하는 방향에 대해 합의했다. 이로써 한미 워킹그룹은 출범 약 2년7개월만에 해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뉴스1]

한미 북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는 21일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하는 방향에 대해 합의했다. 이로써 한미 워킹그룹은 출범 약 2년7개월만에 해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뉴스1]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제재에 저촉되지 않도록 효율적 논의를 위해 만들어진 한·미 워킹그룹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는다. 외교부는 22일 “전날(21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시 기존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하는 방향으로 검토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한·미 양국은 국장급 협의를 강화, 사실상 워킹그룹의 역할을 대체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임갑수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은 이날 오전 정 박 미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를 만나 한·미 워킹그룹 해체 후속조치를 포함한 양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한·미 워킹그룹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었던 2018년 11월 출범했다. 당초 출범 목적은 북·미 간 협상이 급물살을 타는 상황에서 한국이 배제되지 않도록 별도의 협의 채널을 만들어 한·미 간 북핵 관련 협의를 원활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한국 측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협의체였다.

실제 워킹그룹을 운용하는 과정에서는 남북 경협 문제가 주로 다뤄졌다. 2018년에만 총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며 남북 간 다양한 사업과 인도적 지원에 속도가 붙었고, 이런 대북 지원 과정에서 제재를 어기지 않도록 사전에 점검하고 필요시 제재 유예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제재 위반 여부 논의부터 유예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하다는 효율성이 강점이었다.

'장애물' '족쇄' 불만 누적 

2019년 5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 회의. 이도훈(왼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오른쪽)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2019년 5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 회의. 이도훈(왼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오른쪽)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국내 일각에선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 협력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대북 제재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남북 협력 사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여권 일각에선 한·미 워킹그룹이 모든 대북 지원 사업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대북 제재 위반 여부를 검증하는 탓에 ‘족쇄’처럼 작용한다는 불만이 많았다.  

실제 2019년 2월엔 한·미 워킹그룹의 승인이 늦어지며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 행사 당시 취재진이 노트북을 가져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당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관계를 제약하는 기제로 작동했다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미 워킹그룹은 곧 (대북) 제재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 차관은 워킹그룹이 해체될 경우 그 대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북핵외교기획단장 등 한·미 국장급 정책대화를 통해 (대북) 제재와 관여를 논의한다” “워킹그룹이라고 하면 제재로만 느껴졌기 때문에 (그 범위를) 넓혀서 포괄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北 "미국의 흉심" "친미사대 올가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당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제약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뉴스1]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당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제약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뉴스1]

워킹그룹을 종료한다고 해서 남북 경협 사업의 제재 위반 여부가 논의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 차관의 말대로 국장급 협의가 기존 워킹그룹이 수행한 역할을 포함, 대화와 관여를 위한 방안까지 보다 확대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워킹그룹의 역할을 확대하면 되는데 굳이 이를 폐지하고 국장급 협의라는 새로운 형식을 취한 것은 북한을 향한 신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북한은 그간 한·미 워킹그룹의 존재 자체를 반대하며 거세게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한·미 워킹그룹 출범 직후엔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논평을 통해 “북남 협력사업들에 나서지 못하게 항시적으로 견제하고 제동을 걸며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아무 때나 파탄시키려는 미국의 흉심이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6월 한·미 워킹그룹을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라고 평가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은 “정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남북 협력 사업이나 인도적 지원이 무산된 건 한·미 워킹그룹의 문제라기보단 북한 측에서 이를 거부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며 “다만 북한이 워킹그룹 운영을 반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해체하는 건 북한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만들어진 협의체를 반드시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워킹그룹에 부정적인 한국내 여론도 고려했을 수 있다.

워킹그룹 해체, 대북·대미 메시지?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1일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를 지속적으로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새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연합뉴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1일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를 지속적으로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새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연합뉴스]

다만 한·미 워킹그룹 해체와는 무관하게 남북 협력 사업 및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제재 준수 원칙은 일관되게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말 새 대북정책 검토를 끝낸 이후 줄곧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21일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를 지속적으로 준수할 것”이라며 “모든 유엔 회원국, 특히 안보리 이사국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같은 취지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 역시 대북정책 추진 과정의 제재 유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워킹그룹 해체가 남북 협력 사업과 관련한 제재 완화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한국으로선 북한에 대해 유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워킹그룹을 통한 대북제재 검증은 지나친 간섭이었다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메시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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