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체적 부실 그자체…국수본 밝힌 '붕괴참사' 원인 넷

중앙일보

입력 2021.06.22 12:05

업데이트 2021.06.22 12:21

지난 21일 붕괴된 건물 잔해가 치워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1일 붕괴된 건물 잔해가 치워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부실·미준수·과도·미이행 맞물린 人災

사상자 17명이 발생한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사고 원인으로 부실한 건물 해체 계획 등 다양한 원인이 결합된 것으로 추정했다.

서영교 행안위원장 요청 자료

중앙일보가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서영교(서울 중랑구갑) 의원을 통해 받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정확한 원인은 국과수 감식 결과 등이 나와야 파악할 수 있겠으나 그간 경찰 수사 상황을 종합해 보면"이라는 전제 아래 사고 발생 원인으로 크게 4가지를 꼽았다.

①부실한 건물 해체 계획 ②해체 계획서 미준수(당초 건물 좌측부터 철거하기로 했음에도 뒤쪽으로 임의 변경) ③과도한 살수로 인한 지반 약화 ④현장 관리감독 부재(감리의 현장 점검 미이행) 등이다. 단순히 하나의 원인 때문이 아니라 사고 직후 제기된 철거 계획부터 해체 과정, 감리까지 총체적 부실이 얽히고설켜 건물 붕괴로 이어졌다는 취지다.

중앙일보가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서영교(서울 중랑구갑) 의원을 통해 받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자료. 김준희 기자

중앙일보가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서영교(서울 중랑구갑) 의원을 통해 받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자료. 김준희 기자

"해체계획서 하자투성이, 이마저 안 지켜" 

지난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짜리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고 직후 붕괴 원인을 두고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무너진 건물의 해체계획서가 하자투성이"라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안전한 철거를 담보하기 위해 층별 철거 계획과 장비 투입·동선, 타격 및 철거 지점 등을 명시해야 하지만 해당 계획서엔 중요 요소가 빠져있었다. "부실한 계획서 탓에 현장 작업자가 임의적 판단으로 철거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중앙일보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학동 4구역 철거 허가 건물 해체계획서'에 따르면 붕괴된 건물은 지난달 10일 A건축사로부터 안전성과 철거 계획이 모두 '적합'한 것으로 기재됐다. 건물 도면과 벽면 강도, 외벽을 어떤 순서로 철거할 것인지도 적혀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층별 해체 계획은 부실했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 해체계획서 지침에는 해체 순서별 안전성을 포함, 철거 진행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광주시 동구청 확인 결과 해당 업체는 철거 순서도 어겼다. 계획서상 철거업체는 건물 5층 최상층부터 철거를 시작해 순차적으로 하향식 해체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붕괴 건물 인근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사진 등을 보면 상층부가 아닌 건물 중간부터 철거 작업이 진행됐다.

광주 동구 학동 붕괴 건물 감리업체 소장이 22일 오전 11시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광주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 동구 학동 붕괴 건물 감리업체 소장이 22일 오전 11시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광주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경찰 "사고 원인, 과실 유무 엄정 수사"  

건물 중간부터 해체된 탓에 건물 하층부가 상층부 하중을 못 이겨 도로를 향해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구청도 감리업체가 현장을 관리하지 않는 상태에서 철거업체가 규정을 어기고 하층부터 철거를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외벽 철거 순서도 해체계획서와 달랐다. 애초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외벽 강도가 낮은 좌측→후면→정면→우측 순서로 철거해야 했지만 철거업체는 후면 벽부터 철거했다. 이 탓에 전면부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찰은 사고 당일 살수차에서 대량의 물을 철거 현장으로 뿌려 건물 뒷면에 쌓인 토사 하중이 붕괴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따져보고 있다.

국수본은 서영교 의원이 요청한 광주 붕괴 사고 자료 대부분에 대해 "현재 수사 진행 중인 사안으로 관련 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관련자 조사, 압수물 분석 등을 통해 철거 작업의 적법성 등 사고 원인 및 과실 유무 전반에 대해 엄정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김준희·최종권·진창일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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