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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치매 걱정하는 만두 아줌마에게 권한 위스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25) 

“하루 종일 서 있느라 다리 아파 죽겠어요.”

한 아주머니가 우리 가게를 처음 찾았다. 근처 대형마트에서 판매일을 하고 있는데 함께 일하는 팀장에게 위스키 파는 곳을 물어 찾아왔다고 한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네요. 위스키 파는 데는 원래 다 이래요?”

그는 대형 마트에서 만두를 판다. 하루 종일 만두 판매대 앞에서 만두를 찌고 굽는다.

“이번에 나온 신제품인데 1+1 행사하고 있습니다. 고객님~ 만두소가 얼마나 알찬지 몰라요~ 다른 만두보다 고기가 아주 많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이 만두피가 얼마나 촉촉한데요. 쪄먹기 귀찮으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해도 이렇게 맛있어요!”

그녀가 하루에 몇 시간씩 서서 만두를 팔아 손에 쥐는 돈은 150만 원 남짓.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얼마 전부터 행사 알바도 시작했다. 하루 근무가 끝나고 5시간만 더 행사를 뛰면 7만 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만두를 파는 아주머니가 우리 가게를 처음 찾았다.. [사진 pixabay]

대형마트에서 만두를 파는 아주머니가 우리 가게를 처음 찾았다.. [사진 pixabay]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죠. 더 나이 들면 이 일도 못 해요.”

20대 초반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IMF로 남편이 실직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녀의 첫 직장은 대학교 구내식당. 초등학교 졸업인 그녀에게는 몸을 쓰는 일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새벽같이 출근해 음식 재료를 다듬고, 식당 청소를 하고, 설거지하고…. 몸은 고됐지만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모든 피곤함을 씻어줬다.

“그래도 그때 식당에서 일하길 잘했던 것 같아요. 남은 반찬을 집에 싸 와 애들한테 줄 수 있었거든요. 엄마가 되가지고 일하느라 반찬도 제대로 못 해줬으니까요. 잔반 싸가는 게 좀 자존심 상하기도 했는데, 집에서 애들이 잘 먹는 거 보면 금방 마음이 풀렸어요.”

그러나 식당 일은 나이가 들자 버티기 힘들었다. 허리 다친 걸 계기로 일을 그만뒀다. 몇 달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다시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잘 안 풀렸어요. 신세 한탄도 많이 했죠. 우리 남편 일 다닐 땐,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아파트 부녀회 총무까지 했었거든요. 언젠가 좋은 날 오겠지 하며 살아온 게 20년이 넘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네요.”

“아이고 참, 그래야 하는데…. 제가 오늘 여기 왜 온 지 아세요? 위스키가 치매에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거든요. 얼마 전부터 깜빡깜빡해요. 다른 집처럼 애들한테 이것저것 해주지도 못했는데, 치매에 걸려 애들 고생시킬 순 없잖아요? 일도 계속해야 하고…그래서 요즘 치매에 좋다는 건 다 찾아다니고 있어요.”

“저도 뉴스에서 위스키가 치매에 효과 있다는 걸 본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제 좀 취미도 갖고 쉬셔도 되지 않아요?”

“저도 그럴까 했는데 막상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어차피 고생해온 인생, 앞으로 고생하는 거야 두렵지 않은데 애들한테 짐을 물려주면 어쩌나 하고요.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오늘 여기도 온 거예요. 정말 건강하게 애들한테 폐 안 끼치고 살려고요.”

올드파 위스키. 병 모서리로 중심을 잡아 세울 수 있다. [사진 김대영]

올드파 위스키. 병 모서리로 중심을 잡아 세울 수 있다. [사진 김대영]

백바에서 검고 뭉툭한 위스키를 꺼내 스트레이트 잔에 담아 손님에게 건넨다.

“‘올드 파(Old Parr)’라는 위스키입니다. 영국에 152살까지 살다 간 농부가 있었다고 해요. 그 사람 이름이 토마스 파였는데, 그 사람 이름에서 따온 위스키입니다.”

“와! 152살이요? 정말 대단하네요. 제가 그때 까지 살 수 있다면….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지 못한 셈이네요.”

“토마스 파는 80살에 결혼했고, 122살에 재혼까지 했다고 합니다. 오래 산 것도 오래 산 거지만, 죽을 때까지 정말 건강했다는 거죠. 이 위스키가 맘에 드신다면, 앞으로 오랫동안 저희 가게를 찾아주세요. 건강한 모습으로요. 비록 의사 면허는 없지만, 정말로 위스키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면 저희 가게에 좋은 약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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