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 인력도 없는데, 반년간 개성공단에 전력 보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22 05:01

업데이트 2021.06.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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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전력이 지난해 1월 개성공단에서 남측 인력이 모두 철수한 이후에도 수개월간 개성공단에 전력을 공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6월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에도 송전(送電)한 의혹까지 불거졌다. 대한민국이 생산한 공공재를 북한이 유용할 수 있게끔 정부가 방치했다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북한의 전기 유용 정부가 방치 의혹
야당 “북이 쓰게 방치한 배경 뭐냐”
전문가 “군사전용했다면 제재 위반”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판매 기록도
한전 “서류상 수치, 폭파 뒤 안보내”

21일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와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전은 지난해 1~6월 총 898㎿h의 전력을 개성공단에 판매했다. 한전의 분류 기준으로는 ‘산업용’ 4곳, ‘주택용’ 1곳, 이밖에 상업시설 등에서 쓰는 ‘일반용’ 9곳 등 14곳에서 전기를 사용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와 지원시설, 정배수장ㆍ폐기물처리장ㆍ소방서를 비롯해 숙소ㆍ식당ㆍ생활단지 등에서 쓰였다. 수치와 사용처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가운데 정배수장으로 보낸 전기는 북한 개성 주민에게 공급할 하루 1만5000t의 물을 정수하고 공급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에서 지난해 북한이 폭파시킨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왼쪽 붉은 원)와 폭파 시 충격으로 훼손된 개성공단지원센터(오른쪽 붉은 원)가 1년 째 방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에서 지난해 북한이 폭파시킨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왼쪽 붉은 원)와 폭파 시 충격으로 훼손된 개성공단지원센터(오른쪽 붉은 원)가 1년 째 방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지난해 1월 이후 개성공단을 관리ㆍ점검할 남측 인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2016년 북한의 무력도발에 따른 개성공단 폐쇄로 기업인들은 일찌감치 철수했고, 2018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후 파견된 인력도 지난해 1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개성공단으로의 전력 공급은 북측에 대한 전력 제공이 아니라, 연락사무소 운영과 우리 인원들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남측 인력은 한명도 없는데, 북한에서 산업용ㆍ일반용ㆍ주택용 등 남측의 전기를 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해당 전기 요금은 전액 남측에서 부담한다. 개성공단 업무에 관여했던 전직 공공기관 임원은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2018년 이전에도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남측의 전기를 무단으로 끌어다 써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1~6월 개성공단에서 사용한 전력량은 월평균으로는 약 150㎿h다. 지난해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의 월평균 전력 사용량을 감안하면 약 640여 가구가 한달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윤영석 의원은 “그나마 이는 개성공단 현지 검침이 불가능해 추산한 수치로, 실제 전력 사용량은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은 이어 “공기업인 한전이 대북 송전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라며 “전선만 연결하면 얼마든지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데 북한이 무단으로 전기를 쓰게끔 방치한 배경이 뭔지, 북한에 보낸 전력이 이밖에도 더 있는지 등을 정부가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비록 대북 인도적 지원 성격이 있더라도, 구체적인 상황을 국민에게 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며 “투명하게 대북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뭔가 숨긴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대북정책의 신뢰성만 떨어뜨린다”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누가 어떻게 전력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전 측은 “전기를 보내고, 요금을 징수하는 것 외의 일은 한전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해당 전력은 시설 유지를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이 통일부의 지침에 따라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것이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관여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야당에서는 지난해 6월16일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에도 한전이 개성공단에 전력을 공급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당시 정부는 “폭파 직후 전기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지만 문서 상에는 지난해 7월 50㎿h, 11월 904㎿h 등 총 954㎿h의 전기를 판매한 것으로 나와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1월은 개성공단 내에서 이례적인 인력ㆍ자재ㆍ차량의 움직임이 포착된 때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당시 관련 위성사진를 공개하며 “개성공단 내 전기ㆍ전자 회사와 섬유제품 생산구역 인근 공터 등 최소 12곳에서 인원이나 물체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윤 의원은 이와 관련 “이번에 드러난 대북 송전과의 연관성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전의 개성공단 전력 판매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해 한전의 개성공단 전력 판매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러나 한전은 지난해 6월 이후 개성공단에 보낸 전력은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954㎿h의 전력은 내부 결산을 위해 기록한 서류상의 수치라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한전 측은 “개성공단 14곳 각각의 정확한 전력 사용량을 구하려면 개성공단에 설치된 계량기를 봐야하는데, 검침이 불가능했다”며 “내부적으로 판매 실적을 집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2~6월에 전년과 똑같은 전력량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차액을 추후에 일괄 청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전기공학과 교수는 “개성공단으로 전기를 보내는 문산변전소를 관리하는 급전분소의 로그시트(운영기록지)를 확인하면 6월 이후 송전이 이뤄졌는지, 그간 송전량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한전의 설명은 ‘전력을 보내긴 했는데 개성공단에서 얼마나 많이 썼는지 정확한 집계는 힘들다’는 뜻인데, 정부의 개성공단 전력 관리가 그만큼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남측 관리 인력이 없는데도, 전력을 보낸 것이 유엔(UN)의 대북제재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력 자체는 대북 수출금지 품목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전력이 군사용으로 전용됐다는 정황이 있다면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2270호의 캐치올(Catch-All) 규제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손해용ㆍ김남준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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