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거제도 해변에 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들고 있다. 왕준열PD
지난달 28일 경남 거제시 흥남해수욕장. 백사장 모래 사이로 하얀 알갱이들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잘게 부서진 스티로폼이었다. 모래 몇 줌을 집어 체에 담아 흔들어보니, 각양 각색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나타났다.
[플라스틱 어스] ①추적-그 많은 플라스틱은 다 어디로 갈까
해안을 따라 걸으며 쓰레기들을 모았다. 페트병, 마스크, 물티슈, 일회용 용기 등 대부분 일상에서 쉽게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이었다. 폐그물과 낚싯줄처럼 버려진 어업용품도 많았다.
이 많은 플라스틱은 다 어디서 온 걸까. 윤홍주 부경대 공간정보시스템공학 교수는 “거제도 동쪽의 흥남해수욕장은 남해안의 대표적인 '플라스틱 핫스팟' 중 하나”라며 “낙동강에서 흘러나온 각종 플라스틱이 해류를 타고 유입될 뿐 아니라 폐어구 같은 해양 쓰레기도 많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경로를 추적해보니…

부산 앞바다에 띄운 플라스틱 추적 부이. 왕준열PD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가 해마다 급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핫스팟'이 되고 있다. 육지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이 강을 거쳐 바다를 떠다니다 해안으로 돌아온다. 한강에서 버려진 쓰레기는 서해로, 낙동강 쓰레기는 남해로 유입된다. 중국·북한 등 주변국에서 버려진 플라스틱도 해류를 타고 온다.
중앙일보 연중기획 '플라스틱 어스' 취재팀은 강에서 바다로 유입된 플라스틱의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윤 교수와 함께 지난 1일 낙동강 하구 인근 부산 앞바다에서 GPS 추적장치를 단 플라스틱 부표(부이)를 띄웠다. 윤 교수는 15년 전부터 플라스틱 쓰레기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왔다.

낙동강 플라스틱 어디까지 갈까 01.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해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는 플라스틱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거가대교를 지나 4일 가덕도 해안에 도착했다. 취재팀이 찾은 가덕도 해안은 어딘가에서 떠내려온 각종 플라스틱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낙동강 플라스틱 어디까지 갈까 02.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또 다른 부표는 부산 앞바다를 떠돌다 해류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플라스틱은 보름 뒤 북한에 도달했다. 북한 앞바다를 시계 방향으로 돌던 부표를 남쪽으로 내려오더니 21일 현재 독도 앞바다(이동거리 약 1000㎞)에 닿았다.
낙동강에서 버린 플라스틱이 북한에 갔다가 되돌아온 거다. 윤 교수는 “비가 많은 장마철엔 육상에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낙동강으로 들어와 하구를 지나 제주도나 동해로 부유한다”며 “일부는 해류를 따라 북태평양의 '쓰레기섬(GPGP, Great Pacific Garbage Patch)'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만 해마다 20만t(15t 덤프트럭 1만3000여 대분)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육지에서 강을 거쳐 바다로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해양수산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건져내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 결국 나머지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를 떠다니다가 해안으로 되돌아오거나 먼 바다로 떠내려간다.
지구를 점령한 플라스틱…59%는 어딘가 버려져

페트병의 원료인 플라스틱 페트칩 알갱이들. 왕준열PD
문제는 플라스틱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육지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발표된 롤랜드 가이어 UC산타바바라대 교수팀의 논문에 따르면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195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만t에 그쳤다.

전세계 플라스틱 생산량.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특유의 편리함과 내구성으로 인해 플라스틱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불어났고, 2015년까지 65년 동안 총 83억t이 생산됐다. 이 중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25억t, 재활용된 1억t 등을 제외하고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49억t의 플라스틱이 쓰레기가 돼 어딘가에 버려졌다

플라스틱의 운명.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국·북한 플라스틱 쓰레기도 유입

거문도 해수욕장에 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들. 중국산 페트병도 보인다. 왕준열PD
대한민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특히 한반도는 중국·일본·북한 등에서 흘러나온 플라스틱이 모이는 '핫스팟'으로 꼽힌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연안에서 수거된 해양 쓰레기는 13만8000t으로, 2년 전인 2018년(9만5000t)보다 45%가량 많다. 해양 쓰레기 중 83%는 플라스틱이었다.
2015년 윤 교수 연구팀의 실험 결과, 중국 산둥반도 인근 서해에 버려진 플라스틱은 남쪽으로 이동해 흑산도와 제주도의 서쪽 해안에 도달했다. 실제로 취재팀이 방문한 남해 최남단의 거문도 해변에선 중국산 플라스틱 쓰레기가 다수 발견됐다. 중국과 북한은 국제적으로도 최악의 해양 쓰레기 관리 국가로 분류된다.

거제도 흥남해수욕장 모래 속에 스티로폼 알갱이가 섞여 있다. 왕준열PD
늘어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류·조류·포유류 등 해양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할 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이미 한국의 미세플라스틱 오염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8년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인천과 경기도 서해안의 미세 플라스틱 농도는 세계에서 두번째, 낙동강 하구는 세번째로 높았다.
"플라스틱, 생산 때부터 재활용 고려해야"

전세계 미세플라스틱 핫스팟.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전문가들은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되면 추적과 수거가 어려운 만큼, 육지에서부터 유입을 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했다. 또한 국가 간 협력과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특정 국가에서 유입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류에 의해 국경을 넘어 타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지구 전체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며“한∙중∙일 3국이 해양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관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생산-사용-재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폐플라스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플라스틱으로 물건을 만들 때부터 재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재활용 단계에서도 고품질의 재생원료로 만들어 재활용률을 높이고 추가 생산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천권필·정종훈·김정연 기자, 왕준열PD, 곽민재 인턴, 장민순 리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