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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통행료 확 낮추자니 국민연금이 걸리네, 일산대교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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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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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대교는 경기도 고양시 법곳동(이산포 IC)과 경기도 김포시 걸포동(걸포 IC)을 잇는 길이 1.84㎞의 왕복 6차로 다리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27개의 자동차용 교량 중 하나다. 그런데 다른 다리와 달리 일산대교는 2008년 개통 초기부터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강 교량 가운데 유일하게 받는 통행료 때문이다. 현재 승용차 기준으로 편도 1200원이다.

한강 다리 중 유일한 통행료 징수 #국민연금, 일산대교 지분 100% #이재명 “과도한 통행료 중단돼야” #자칫 국민 노후자금 손실 우려도

한강 다리 중에는 고속도로 구간에 포함돼 유료도로인 곳도 있지만, 일산대교처럼 다리를 건너는 대가만으로 요금을 내는 경우는 없다. 굳이 전례를 찾자면 1981년 동아건설이 민자사업으로 준공한 원효대교가 있긴 했다. 당시 통행료는 200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통행료 탓에 운전자들이 이용을 꺼려 시설유지비도 못 뽑는 상황이 되자 1983년 2월 서울시에 기부채납됐고 이후 통행료가 사라졌다.

2008년 개통한 일산대교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27개 차량용 다리 중에 유일하게 통행료를 받고 있어 주민 반발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개통한 일산대교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27개 차량용 다리 중에 유일하게 통행료를 받고 있어 주민 반발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일산대교가 통행료를 받는 이유도 민자사업이기 때문이다. 대림산업, 현대건설 등이 참여해 수익형 민자사업(BT0, Build-Transfer-Operation)으로 건설됐다. 2248억원을 투입해 개통한 뒤 소유권을 경기도에 넘기는 대신 30년 동안 통행료를 받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추정 수입에 못 미칠 경우 경기도가 일정 수준까지 메워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 Minimum Revenue Guarantee)도 포함됐다.

고양과 김포 사이에 다리가 생긴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다른 다리와 달리 통행료를 내야 하는 건 주민들에겐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른 민자고속도로와 비교해도 요금이 무척 높다. 승용차로 서울춘천고속도로 전 구간(61.4㎞)을 다 달리면 승용차는 4100원을 낸다. ㎞당 67원꼴이다. 반면 일산대교는 ㎞당 652원으로 거의 10배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지난달 열린 민자도로 관련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유료도로법은 부근에 통행할 다른 도로가 있을 것을 유료도로의 요건으로 하고 있으나, 일산대교는 가장 가까운 김포대교와 8㎞ 이상 떨어져 있어 평균 1.6㎞ 간격인 서울시 구간과 비교했을 때 대체 도로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통근, 통학 등 빈번한 이동이 요구되는 도시 생활권역에서 3분이면 갈 수 있는 구간을 22분 이상 추가로 우회해 운행하게 되는 김포대교를 대체 도로라고 주장하는 건 불합리하다”라고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통 초부터 통행료를 낮추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다.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는 물론 경기도 의회와 이재명 경기지사까지 나섰다. 이 지사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로는 엄연한 공공재다. 불합리한 운영으로 정부와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면 시정하는 게 당연하다”고 적었다. 전임 남경필 지사도 통행료 인하를 두고 법적 다툼까지 벌였지만 패소했다.

일산대교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산대교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실 이런 형편이라면 민자사업자가 지역과 정치권 눈치를 봐서라도 통행료를 일부 낮췄을 만도 하다. 허나 그러지 못하는 사연이 있다. 일산대교 운영권을 100% 보유한 출자자가 바로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2009년 11월에 지분 100%를 2000억원에 사들이면서 경기도와 새로 실시협약을 맺었다.

당시 약속받은 연간 수익률이 8%가량이다. 당초 9%대에서 낮춰진 수치이지만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엔 상당히 쏠쏠한 수준이다. 국민연금으로선 운영권을 행사하는 2038년까지 꽤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 셈이다. 그런데 통행료를 내리면 별다른 지원이 없는 한 수익률도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노후자금 운용에 차질이 생기게 되는 거라 수용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측은 “통행료는 경기도와 체결한 실시협약에 의해 주무관청인 경기도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요금 인하가 어렵다면 아예 일산대교 지분을 전량 사들여 무료 통행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이성훈 경기도 건설국장은 “일산대교 출자지분, 관리운영권 인수 등을 포함한 방안을 추진 중으로 조속히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가격이다. 남은 운영 기간 국민연금이 얻을 예상 수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해서 사야 하는데 산정 방식에 따라 상당한 금액 차가 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2038년까지 국민연금의 통행료 수입이 7000억원에 달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관계자는 “지분 매입에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만큼 약정된 수익에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협의에 적극적으로 응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절대 손해 보는 거래는 못 한다는 의미다.

이재명 지사가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점도 부담이다. 요금 인하나 폐지를 위해 국민연금을 너무 강하게 압박했다가는 “자기 정치를 위해서 국민의 노후자금에 손실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민 불편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결국 재정지출은 최소화하면서 주민 부담은 덜어주고, 국민연금도 손해 보지 않을 묘수를 찾아야만 ‘일산대교의 딜레마’를 풀 수 있다는 얘기다. 당사자 간에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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