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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방지법 1호 위반자 간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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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한국 현대사의 왜곡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로 슈퍼 여당이 발의한 ‘역사왜곡방지법’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다. 이 법은 5·18역사왜곡처벌법의 처벌 대상과 달라 3·1운동 등에 대한 사실 왜곡, 일제강점기에 한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자신을 바친 의사와 열사의 업적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다. 다음은 이 법이 몰고올 파장과 부작용을 상상으로 엮어본 가상의 시나리오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간디와 김수환 추기경 평가 달라 #법으로 표현의 자유 억압은 안 돼

법 통과 직후 1호 위반자로 마하트마 간디(1869∼1948)가 지목됐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1주일 만에 간디는 기소됐다. 문제가 된 것은 간디가 쓴 ‘용감한 일본병사’(Mahatma Gandhi E-book, vol 10)라는 짧은 논평이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투쟁하다가 1909년 7월 10일부터 넉 달가량 영국 런던을 방문하던 중, 이토 히로부미(1841∼1909)가 한국인에게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한국인은 안중근 의사(1879∼1910)다. 간디는 이 글에서 두 사람 모두를 비판했다. 이토는 이웃 약소국을 침략했고, 안중근은 이토를 죽여서 비폭력, 즉 사랑의 원리를 어겼다는 것이다.

간디는 논평에서 일본에 대해 러시아의 피를 맛본 나라로, 세력에 도취한 나라로, 그리고 칼을 휘둘렀으니 칼로 망할 나라로 보고 책망하며 패망을 예견했다. 간디의 눈에 비친 이토는 용감한 자였지만, “한국을 예속시킨 것은 그가 용기를 나쁜 목적에 사용한 것이다.”(『진리와 비폭력』 나남)

간디는 일본이 서양의 방식을 모방해서 세력을 키우면 약한 민족 한국인을 정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서양문명이 주는 세력이 제국주의를 부추긴다고 보았다. 간디는 이 논평을 “인민의 참된 복지를 심정에서 생각하는 자라면 오직 사탸그라하(眞理把持)의 길을 따라서 인민을 인도해야 할 것”이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진리를 붙잡는 데, 그리고 불의의 세력과 싸울 때, 비폭력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안중근의 가해 행위에 대한 간디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한민족으로 살아가는 한,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일본과의 관계에서 찾는 한, 안중근은 의사로 기억될 것이다.

죽은 간디에 대해 한국의 수사 당국도 공소권은 없다. 그런데 간디의 저 논평을 한국인이 수긍하면, 그는 처벌 대상이 될까?

안 의사의 행위에 대한 한국가톨릭 교단의 평가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조선천주교 책임자였던 프랑스인 뮈텔 대주교(1854∼1933)는 이를 살인으로 단죄하고, 안 의사를 배척했다. 83년 뒤, 1993년 8월 김수환 추기경은 추모미사 강론을 통해 “안 의사가 독립전쟁 과정에서 이토를 살해한 것은 안 의사의 나라사랑이며 그리스도신앙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방위였다”며 “안 의사의 신앙과 의거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조선일보, 1993년 8월 22일자, 김홍수)

간디의 비폭력은 엄정했다. 인도 청년 마단랄 딩그라(Madanlal Dhingra, 1887~1909)는 1909년 7월 1일 런던에서 영국 관리를 암살하고 체포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암살은 인도독립을 위해서였다고 발언했지만, 영국 법정은 사형을 언도했고, 그는 8월 17일 처형당했다. 간디는 당시 딩그라와 그 배후 인도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상기 논평을 쓸 때 딩그라 사건도 마음에 있었을 것이다.

간디는 생애의 초기부터 세상의 폭력을 보고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가슴 깊이 새겼다. 그가 75세에 내보낸 ‘크리스마스 메시지’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진리로 생각하거나 옳다고 간주하는 것 때문에 타인을 해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리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 그 진리를 피로 축성(祝聖)해야 한다. ··· 예수께서 진리로 여겼던 것을 위해 십자가에 오르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문명·정치·종교』 나남)

추기경이 “당신은 비폭력에 가려 독립에 대한 한민족의 열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군요”하고 간디를 비판하면, 간디는 “추기경께서는 예수의 십자가 기준을 낮췄군요”라고 응수할 수 있다. 안 의사는 “두 분 모두 자신의 종교와 양심에 따라 발언한 것이니, 난 간여하지 않겠소”라고 했을까?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왜곡방지법은 이런 상상의 대화조차 금하고, 저 논평이 담긴 책은 태우고 학자는 파묻을 수 있다. 안중근은 사람이 각자의 자유를 지키는 것(各守自由)을 인간의 상정(常情)으로 보았다.(韓國人安應七所懷) 국법이 우리 개개인의 종교·양심·학문·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안 의사는 ‘내가 이런 나라를 위해 죽었나’하고 분연히 일어날지 모른다.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