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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 김정은 ‘대화’ 언급에 화답 “조건없이 만나자, 긍정 답변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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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 북핵수석 대표 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 북핵수석 대표 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6월 17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 방한한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 “우리 역시 어느 쪽이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대결’과 ‘대화’ 중 조선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강조한 김 위원장처럼 성 김 대표도 “언제 어디서든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고 언급해 일단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미국 새 행정부 출범 후 우려했던 핵·미사일 시험 발사 등 북한의 전략적 도발 가능성보다는 첫 협상을 위한 양측의 탐색이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 북·미 협상 탐색전 #중·러엔 유엔 대북제재 유지 촉구 #한·미·일 대표 북핵 연쇄 협의 #성 김 “김정은 대화·대결 언급 주목” #전략적 인내, 톱다운 방식 모두 탈피 #대북 제재 유지하며 대화 끌어내기

사실상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메신저 자격으로 방한한 성 김 대표. 그는 이날 한·미·일 북핵 협상 수석대표들과 연쇄 협의를 했다. 한·미→한·미·일→한·일→미·일 순서였다. 김 대표는 한국 측 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담하면서 대화와 관여를 강조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대화와 대결 모두를 언급한 것을 주목하며, 우리 역시 어느 쪽이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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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북핵 수석대표는 2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회담을 열고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 의사를 확인했다. 성 김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는 2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회담을 열고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 의사를 확인했다. 성 김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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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또 “우리는 여전히 북한에 만나자고 제안한 뒤 답을 기다리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대화를 말한 게 우리가 곧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김 위원장을 언급하며 ‘Chairman Kim’이라는 공식 직함으로 불렀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0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전원회의 발언에 대해 “흥미로운 신호이며 우리는 평양이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됐는지에 대한 분명한 신호를 기다린다”고 말했는데 같은 맥락이었다.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우리는 외교와 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추구라는 공동의 목표에 전념하겠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며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협의에서도 의미 있는 남북대화에 대한 미국의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노 본부장 역시 “북한과의 대화와 관여를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협의했다. 긴밀한 한·미 공조를 유지하면서 대화가 조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말말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말말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뒤이어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한·미·일 협의에서 김 대표는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한이 언제 어디서든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는 우리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응답하기를 계속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전제조건 없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그동안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대화 조건으로 내건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가타부타 조건을 붙이지 말고 일단 만나서 협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물론 김 대표는 이날 조건 없는 대화 시작과 함께 북한의 위협에 대한 단호한 대응 및 대북 제재의 견고한 이행 언급도 빼놓진 않았다. 그는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를 지속적으로 준수할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유엔 회원국, 특히 안보리 이사국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안보리의 대북 결의 준수는 곧 제재 체제의 유지를 의미한다. ‘안보리 이사국들’을 언급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다. 미국은 그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뒷문’을 열어준다고 공공연히 비판해 왔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은 균형 잡힌 접근을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한·미·일 3자 협의에서는 안보리 결의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대화에도 대결에도 모두 준비돼 있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김 대표의 발언을 종합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4월 말 대북정책 검토를 마무리하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처럼 북핵 문제를 방치하지도,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 방식’처럼 일단 정상회담부터 하는 보여주기식 접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그 사이에서 잠정적 입장을 정했다는 평가다.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는 “북한으로부터 일말의 긍정적인 신호가 포착됐으니 일단 대화의 기회로 나오라는 메시지와 함께 북한과 중국을 향해 한·미·일이 제재 체제를 느슨하게 가져갈 생각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현재로선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기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코로나19 방역 상황, 식량난 극복과 민생 안정 등 내치에 주력하고 있는 점, 특히 최근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신속한 대화 호응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미 간 탐색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유지혜·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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