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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법인 실적 31% 쑥…불붙는 4대 은행 동남아 영토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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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KB국민은행이 지난해 지분(67%) 인수로 경영권을 확보한 인도네시아의 부코핀은행. 부코핀은행은 인도네시아 자산기준 14위 중대형 은행으로 전국에 434개의 영업망이 있다. 국민은행 제공.

KB국민은행이 지난해 지분(67%) 인수로 경영권을 확보한 인도네시아의 부코핀은행. 부코핀은행은 인도네시아 자산기준 14위 중대형 은행으로 전국에 434개의 영업망이 있다. 국민은행 제공.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부코핀은행의 지분(45%)을 장부가보다 70~80% 할인된 가격에 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기회가 됐다.”

지난 17일 부코핀은행 주주총회에서 첫 한국인 행장으로 선임된 최창수(54) 전 국민은행 글로벌사업그룹 대표의 얘기다. 부코핀은행 인수합병(M&A)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최 행장은 “M&A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차례 출장길에 오르다 보니 지난해 코로나19 검사를 25번이나 받았다”고 했다.

1970년에 설립된 부코핀은행은 자산 기준 인도네시아에서 14위 중대형은행이다. 전국에 435개의 영업망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부코핀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당시 2대 주주였던 국민은행이 과감하게 투자에 나섰다. 지난해 7월과 9월 두 차례 유상 증자를 거쳐 보유 지분을 67%까지 늘리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전체 투자금은 4000억원이다.

국민은행으로 주인이 바뀌며 부코핀은행에 대한 시장평가도 달라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해 10월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로 상향 조정했다. 이뿐만 아니다. 인수 직전(6월 말) 주당 188루피아였던 주가는 올해 초 770루피아까지 4배로 뛰었다.

최 행장은 “조만간 증권을 비롯해 자산운용과 생명보험도 진출할 예정”이라며 “은행을 중심으로 한 종합금융사로 현지 고객에게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카드와 손해보험, 캐피탈 등 이미 진출한 KB금융그룹 계열사와 함께 인도네시아를 ‘세컨드 마더 마켓(제2의 KB종합금융)’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①해외법인의 코로나 반전 실적

4대 시중은행 해외 네트워크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4대 시중은행 해외 네트워크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여파로 하늘길은 막혔지만 국내 4대 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은행)의 영토확장 전쟁은 뜨겁다.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전략은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지난해 해외법인 실적(당기순이익)은 5753억원으로 전년(4377억원)보다 31% 증가했다.

성장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국민은행이다. 4대 은행 중에 출발이 늦고 규모는 가장 적지만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해 국민은행의 해외법인 순이익은 902억원으로 1년 전(154억원)보다 6배로 늘었다. 2008년 카자흐스탄에서 지분 인수로 쓴맛을 본 뒤 해외사업은 10년 넘게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지난해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을 비롯해 캄보디아의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인수하면서 해외사업에 다시 시동을 켰다. 특히 프라삭은 지난해 1183억원의 이익을 올리며 일찌감치 효자은행으로 자리매김했다.

하나은행의 성과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하나은행 해외법인 순익(1437억원)은 1년 전보다 2배 늘었다. 우리은행(1074억원)을 제치고 2위다.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갈등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며 중국 현지법인 순이익이 급증한 덕분이다. 4대 은행 중 지난해 실적 1위는 신한은행(2340억원)이다. 다만 전년(2378억원)보다 1.6% 소폭 줄었다.

4대 시중은행 해외법인 순이익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4대 시중은행 해외법인 순이익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②영토확장은 ‘동남아’로  

우리은행 캄보디아법인인 WB파이낸스의 직원이 고객과 상담중에 있다. 우리은행 제공.

우리은행 캄보디아법인인 WB파이낸스의 직원이 고객과 상담중에 있다. 우리은행 제공.

영토확장에 나선 국내 시중은행이 달려나가 깃발을 꽂는 곳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다. 코로나 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까지 매년 6~8%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신흥국으로 시장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돼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경제 성장 속도도 빠를 뿐 아니라 인구 구조상 젊은 층이 많아 금융 수요도 큰 편”이라며 “그에 반해 금융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에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한다”고 했다.

동남아 진출 성과도 좋다. 지난해 신한은행은 베트남ㆍ인도네시아ㆍ캄보디아 등지에서 1432억원의 수익을 냈다. 전체 순이익의 60%가 넘는다. 특히 신한은행은 베트남에서 당기순이익 등 재무실적 부문 외국계 1위 은행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은행도 베트남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4월 베트남 박닌 지점을 열면서 북부 하노이 지점과 남부 호치민 지점 등 15개의 영업망을 베트남 전역에 갖추게 됐다. 또 올해 말까지 추가로 베트남에 5개 지점을 개설하고, 내년까지 20개 이상의 영업점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③핵심 전략은 ‘디지털’

4대 시중은행의 해외진출 핵심 전략은 ‘디지털’이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기업금융에서 그치지 않고 현지 소비자를 고객(소매금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게다가 캄보디아 등의 사례처럼 은행 계좌 보유율은 낮지만 스마트폰을 대부분 사용하는 만큼 ‘모바일 뱅킹’을 앞세워 고객 공략에 나서고 있다.

동남아 각국에서 현지화 전략으로 4대 은행이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이체하는 모바일 앱을 운용하는 이유다. 국민은행이 2016년 9월 캄보디아에서 선보인 ‘리브캄보디아’가 대표적이다. 계좌가 없어도 상대방의 휴대폰 번호로 실시간 송금할 수 있고, 전자 결제도 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전체 이용자는 22일 기준 12만명을 넘어섰다.

정보기술(IT)업체와 손잡고 해외 시장을 뚫기도 한다. 하나은행은 지난 11일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협업한 디지털뱅킹 서비스 ‘라인뱅크’를 인도네시아에서 선보였다. 라인의 두터운 메신저 고객을 발판으로 정기예금과 체크카드, 공과금 납부 등의 각종 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진출은 단기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시간을 갖고 경쟁력을 키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현지화 전략을 펼치는 동시에 기업금융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며 “단순히 해외 진출국을 늘리는데 머물지 말고 증권·보험 등 비은행과 함께 진출해 종합금융사로 성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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