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조건 없이, 제재는 확고히" 바이든식 北 접근법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21 17:34

업데이트 2021.06.21 17:44

북핵문제를 담당하는 미국의 성 김 대북특별대표가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국의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핵문제를 담당하는 미국의 성 김 대북특별대표가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국의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트럼프식’도 ‘오바마식’도 아니라던 ‘바이든식 북핵 해법’은 조건 없는 북한과의 대화 시작과 북한이 가하는 위협에 대한 단호한 대응, 대북 제재의 견고한 이행이었다. 사실상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메신저 자격으로 방한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1일 밝힌 모범답안에 가까운 원칙이다.

한ㆍ미ㆍ일 북핵 수석대표 연쇄협의
성 김, 김정은 ‘대화’ 언급에 주목
“北 만남 제안에 호응하길 기대”
“안보리 결의 지켜야, 특히 이사국”
中도 겨냥 “제재 완화 없다” 강조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한ㆍ미ㆍ일 북핵 협상 수석대표들 간 연쇄 협의가 이뤄졌다. 한ㆍ미→한ㆍ미ㆍ일→한ㆍ일→미ㆍ일 순서였다.
김 대표는 한국 측 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담하면서 대화와 관여를 강조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정책을 언급하며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점에 주목했다.

김 대표는 “김 위원장이 대화와 대결 모두를 언급한 것을 주목하며, 우리 역시 어느 쪽이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여전히 북한에 만나자고 제안한 뒤 답을 기다리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대화를 말한 게 우리가 곧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협의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그는 “우리는 외교와 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추구라는 공동의 목표에 전념하겠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며 “(지난달) 한ㆍ미 정상회담에 이어서 이번 협의에서도 의미 있는 남북 대화에 대한 미국의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말말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말말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북ㆍ미 및 남북 대화 조기 재개에 적극적인 한국과의 협의 기회를 계기로 북한을 향해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노 본부장 역시 “남북 간, 북ㆍ미 간의 기존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과의 대화와 관여를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협의했다. 한ㆍ미 간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면서 대화가 조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뒤이어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ㆍ대양주국장도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한ㆍ미ㆍ일 북핵 협의에서 김 대표는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한이 언제 어디서든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는 우리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응답하기를 계속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가타부타 조건을 붙이지 않을 테니 일단 만나서 무슨 생각인지 이야기해보자는 뜻이나 다름없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재를 꺼냈다. “동시에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를 지속적으로 준수할 것”이라면서다. 또 “우리는 모든 유엔 회원국, 특히 안보리 이사국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가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보리의 대북 결의 준수는 곧 제재 체제의 유지를 의미한다. 특히 ‘안보리 이사국들’을 언급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은 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프랑스ㆍ영국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은 그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뒷문’을 열어준다고 공공연히 비판해왔는데, 김 대표의 발언도 같은 취지로 읽힌다.

결국 미국은 한국과 함께한 자리에서는 북한에 대화의 손을 뻗고, 일본까지 합류한 자리에서는 제재 준수를 강조한 모양새다.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한ㆍ미 협의 전후 김 대표의 발언만 보면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만 치우쳤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균형 잡힌 접근을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3자 협의에서는 안보리 결의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대화에도 대결에도 모두 준비돼 있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김 대표는 한ㆍ미ㆍ일 협의 모두발언에서 대화를 언급할 때도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증진하기 위한 실용적 진전을 추구하면서”라는 전제를 달았다. 안보리 결의 준수를 이야기하며 “북한이 가하는 위협”을 명시한 것도 고려하면 북한의 도발 등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점도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왼쪽부터)와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왼쪽부터)와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이날 김 대표의 발언을 종합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은 ‘북한과 만나 대화하는 것은 좋지만, 위협을 가하는 행동의 변화 없이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를 해줄 생각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4월 말 대북 정책 검토를 마무리하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처럼 북핵 문제를 방치하지도,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 방식’처럼 일단 정상회담부터 하고 보는 보여주기식 접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그 사이에서 잠정적 입장을 정했다는 평가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황준국 전 주영 대사는 “북한으로부터 일말의 긍정적인 신호가 포착됐으니 일단 대화의 기회로 나오라는 메시지와 함께 북한과 중국을 향해 한ㆍ미ㆍ일이 제재 체제를 느슨하게 가져갈 생각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며 “기존의 원칙과 맞닿아 있는 입장으로, 특별히 새로운 입장 변화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유지혜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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