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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소문' 악귀 이홍내, 동성애자 취준생 변신 "제 20대 떠올랐죠"

중앙일보

입력

23일 개봉하는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감독 김조광수)에서 첫 스크린 주연을 맡은 배우 이홍내를 9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엣나인필름]

23일 개봉하는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감독 김조광수)에서 첫 스크린 주연을 맡은 배우 이홍내를 9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엣나인필름]

“소속사를 통해 시나리오를 접하고, 제가 감독님한테 먼저 ‘하늘’이란 친구를 표현해보고 싶다고 청했어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할 수 없는 ‘하늘’의 현실이 제 20대 시절과 맞물려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에 왔지만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았던 시절요. 하늘이가 배달 아르바이트 하러 가는 장면은 제 과거가 생각나서 애틋했죠.”

23일 개봉 '메이드 인 루프탑' 첫 주연 이홍내 #드라마 '더 킹' '경이로운 소문' 마초 벗고 변신

23일 개봉하는 첫 스크린 주연작 ‘메이드 인 루프탑’(감독 김조광수)에서 동성연인과 갈등을 겪는 취업준비생 ‘하늘’로 변신한 배우 이홍내(31)의 말이다. 9일 화상 인터뷰에서다.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2020‧SBS)의 북한억양의 황실 근위대 부대장 석호필,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020~2021‧OCN)의 악귀 들린 살인마 지청신 등 묵직한 캐릭터로 주목받은 그가 이번엔 발랄한 퀴어 청년이 됐다. 3년 사귄 남자친구 정민(강정우)에게 가짜 이별을 통보했다가 같이 살던 집에서 쫓겨난 하늘은 BJ인 친구 봉식(정휘)의 옥탑방에 신세지며 정민과의 ‘밀당’을 이어간다. 애교섞인 앙탈을 부리고, 봉식과 라이브 방송을 하며 수줍은 듯 노래하는 장면에선 이홍내에게 저런 매력이 있었나, 놀라게 된다.

김남길·이제훈 잇는 얼굴 “착한 소년미 있죠”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제작자(청년필름 대표)이자, 퀴어 영화 감독으로 활동해온 김조광수 감독은 연출작마다 미래의 스타를 발굴해온 터. ‘후회하지 않아’(2006)의 김남길, ‘친구 사이?’(2009)의 이제훈‧연우진 등이다. 그는 이홍내를 그룹 방탄소년단의 ‘컴백홈’(2017)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봤다며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쁘고 착한 소년미가 있었다. 타고난 ‘하늘’이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이홍내에겐 ‘더 킹:영원의 군주’를 끝낸 직후, ‘경이로운 소문’보다 먼저 따낸 주연 기회였다. 그는 첫 퀴어 역할에 “부담감은 있었다”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 그게 연기하는 재미”라고 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란 감정의, 모양이나 태도에서 차이점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고 그 표현 방식을 절대 허투루 연기하지 않으려고 김조광수 감독님한테 많이 의지했다”면서다.

“3년 가까이 헤어스타일이 삭발이었거든요. 매 작품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지만 거칠고 남성적이고 와일드한 캐릭터란 공통점이 있었죠. 이번 ‘하늘’은 연기 변신을 생각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걸 시도했는데 전작들과 상반된 느낌이 많았던 것 같아요.”

마초적 전작 ‘살기’ 걷어내며 180도 변신

첫 등장부터 연인과 티격태격하는 하늘이 밉지 않게 보이도록 수위 조절에 신경 썼단다. “하늘이 취직 문제나,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 때문에 불평을 많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귀여운 친구거든요. 감독님이 섬세한 분이셔서 제가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면 옆에서 잡아주셨어요. ‘지금은 조금 살기가 있다’ ‘그런 건 상대방이 무섭지 않을까?’ 하고요. 마초적인 역할을 맡아 에너지 쓰는 연기를 해오면서 좀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게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로맨스 영화지만, 극중 정민이 처한 상황 탓에 연인인 그보다 함께 살던 집 대문이나 같이 키우던 고양이, 정민의 동생(염문정) 등 엉뚱한 대상에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더 많은 것도 도전이었단다.
평소 “속으로 삼키고, 상대에겐 최대한 친절하게 하려는 편”이란 그다. ‘경이로운 소문’ 때도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배우가 덩달아 날카로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현장에서 많이 웃고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했다. 속에 없는 말을 빙빙 돌려 하며 투정부리는 하늘과는 정반대 성격. “촬영하며 감독님한테 하늘이가 왜 그러는지 많이 물어봤어요. 저희 누나도 집에서 통화할 때 상대방을 좋아하면서도 괜히 당분간 보지 말자고 했던 게 기억나서 참고했죠. 정말 헤어지려는 사람은 오히려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늘의 사랑 쉽게 표현하지 않으려 고민했죠”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사진 엣나인필름]

가장 고민한 대목은 하늘이 갑자기 마주한 정민의 가족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병원 장면이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말 못하는 모습을 쉽게 표현하면 안 되겠다 싶어 준비를 많이 했다”고 했다.

“봉식과 노래 장면요? 제 애창곡이 버즈의 ‘가시’, 에메랄드캐슬 ‘발걸음’이거든요. 노래방 가는 걸 엄청 좋아해서 노래 잘하는 줄 알았는데 ‘노래방 가수’였더라고요. 촬영 들어갔는데 악기까지 연주하며 하려니까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뮤지컬을 많이 한 정휘 배우가 도와준 덕에 촬영해냈죠. 먼저 마음을 열어줘서 재밌게 할 수 있었어요.”

봉식의 옥탑방 건물 이웃 역은 배우 이정은이 맡았다. 이홍내는 “정말 든든했고 아이디어가 많으셨다. 버팀목이 돼주셔서 감사했다”고 했다. 또 ‘자이언트 펭TV’(EBS) 염문경 작가가 이번 영화 각본 겸 정민의 여동생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펭수를 잘 몰랐는데 이번에 몰아보고 팬이 돼서 누나한테 남는 (펭수) 아이템 있으면 달라고 투정도 부렸어요.”

‘경이로운 소문’ 지청신 땐 일부러 공동묘지 가기도

‘경이로운 소문’에선 절대 악을 표현하기 위해 새벽에 공동묘지에 가서 음산한 기운을 느껴보기도 했다는 그다. “많이 고민하고 최선을 다했던 만큼 크고 작은 부상은 있었지만, 작품을 끝내고 아쉬움 없이 홀가분했다”고 돌이켰다. ‘메이드 인 루프탑’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 소시민을 연기하고 싶던 꿈을 풀었다”고 했다. “지금 1990년대생을 표현하려 애를 썼죠. 청춘의 모습으로 이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양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영화가 좋았다. “저희 부모님, 친구 아버지도, 친구의 친구 아버지도 공장에 다니셨어요. 공업도시에서 다들 정해진 삶을 살아가셨죠. 크게 잘하는 것 없던 제게 영화는 특별했어요. 아침에 도시락 싸서 DVD방에 가서 다섯 편씩 보고 저녁에 왔죠.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은 (영화 속 사람들처럼) 저도 특별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죠.”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악귀 들린 살인마 지청신(오른쪽)을 연기한 이홍내. [사진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악귀 들린 살인마 지청신(오른쪽)을 연기한 이홍내. [사진 OCN]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해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아르바이트 틈틈이 모델 일을 병행했다. 연기 데뷔작은 영화 ‘지옥화’(2014). 이후 영화 ‘위대한 소원’ ‘도어락’, OCN 드라마 ‘구해줘’ ‘트랩’ 등 조단역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다른 알바를 하지 않고 배우란 직업만으로 서울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몇 년 이상 고민도 했거든요. 정말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왔다는 게 행복해요. 작품을 하면 늘 설레던 감정에서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부담감도 생긴 것 같아요. 체력관리도 신경 쓰면서 영화‧드라마 각각 차기작도 준비하고 있죠. 보여드리지 않은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다가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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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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