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유니콘 2개 나올때 中 50개···“아찔해서 창업했다”는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21.06.21 01:00

업데이트 2021.06.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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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토모큐브의 공동 창업자인 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왼쪽)와 홍기현 대표. [사진 토모큐브]

토모큐브의 공동 창업자인 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왼쪽)와 홍기현 대표. [사진 토모큐브]

#1. 체외진단기업 수젠텍은 지난 18일 이탈리아·벨기에 등으로부터 제품 판매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독일의 의료기기 회사인 다이아스와 공급 계약 이후 유럽 국가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엔 국내 기업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속 자가진단 키트에 대해 유럽 CE CoC(적합성 인증)를 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진단도 가능하다”며 “세계 주요국에서 코로나19 진단키트 공급 요청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혁신창업의 길
연구소·대학 출신이 말하는 ‘나의 창업’
“‘연구 뒷전, 돈벌이 나선다’는 시선 여전
제도적 지원과 함께 ‘인식 변화’ 절실해”

#2. 토모큐브는 급성 패혈증이나 폐렴을 몇 초 안에 진단하는 3차원(3D)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생산한다. 이전의 일반 광학현미경을 이용한 진단 방식은 세포를 염색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야 했다. 3D 홀로그래피 현미경은 살아있는 세포를 그대로 관찰할 수 있다. 이런 획기적인 신기술이 입소문을 타면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하버드 의대·존스홉킨스 의대, 서울아산병원 등이 이 회사의 장비를 주문했다.

실험실 창업이 대한민국 미래먹거리 책임

성과 없는 연구개발(R&D)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최근 들어 대학을 중심으로 혁신기술 기반의 창업이 늘고 있다.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연구하는 연구인력이 직접 창업에 뛰어들면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은 물론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도 최근 교수·박사 창업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출연 연구소 창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509개였다. 이 가운데 380개 기업이 현재 운영 중이다. 최근 10년 새 꾸준히 창업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수젠텍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속진단키트. [사진 수젠텍]

수젠텍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속진단키트. [사진 수젠텍]

전문가들은 이런 혁신창업이 한국의 미래먹거리를 책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최근 바이오 분야에서 교수와 연구진이 창업한 기업들이 코로나19와 맞물려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진단키트를 생산하는 씨젠, 백신 개발에 나선 제넥신 등이 대표적이다. 씨젠은 이화여대 교수 출신인 천종윤 대표가, 제넥신은 포스텍(포항공대) 교수인 성영철 회장이 설립했다.

수젠텍과 토모큐브 역시 혁신기술을 가진 연구자가 설립한 기업이다. 수젠텍은 LG생명과학·한국생명공학연구원 출신인 손미진 대표가 2011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유비쿼터스 바이오칩 리더기 기술을 이전받아 설립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소 기업(28호)이다. 토모큐브는 박용근 KAIST 물리학과 교수가 2015년 공동으로 창업했다. 두 회사 모두 지금까지 수백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하며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R&D)은 주로 신약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진단 시장은 공장에서 키트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식이 바뀌었다.

손미진 대표는 “코로나19뿐 아니라 다양한 감염병 위협이 커지고 있는 만큼 진단은 커질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며 “기술을 보유하고이해하는 사람이 직접 창업하는 것이 가장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토모큐브의 설립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박용근 교수는 “연구 결과가 사업화하는 걸 보고 싶었고, 제자에게 ‘창업하라’고 말하기보다 본보기가 되고 싶었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이 2개 나올 때 중국은 50개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아찔한 상황”이라며 “연구중심 대학에서 실제 창업으로 이뤄지는 사례가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출연 연구소와 교원 창업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 출연 연구소와 교원 창업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따가운 시선과 연구 중심 평가에 막혀  

하지만 교수 창업에 대한 대학 내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연구는 뒷전이고 돈벌이만 나선다’는 부정적인 인식 탓이다. 동료 교수들의 시선만 따가운 게 아니다.

익명을 원한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랩(연구실)에서 한 박사과정 학생이 대뜸 ‘저는 이곳에서 공부해 교수가 되려고 왔지, 부자가 되려고 온 게 아니다’며 말해 당황스러웠다”며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연구소는 순수하게 연구만 하고, 돈 버는 연구를 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여전하다”며 아쉬워했다.

또 다른 국립대 교수는 “창업에 나서면 학교에서 겸직을 허용해 준다지만, 연구나 강의를 그대로 소화해야 한다”며 “창업에 대한 의지가 크고 적극적인 젊은 교수들이 더 많은 학과 업무를 떠맡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많은 대학이 승진이나 고과 평가에 ‘연구’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사실도 걸림돌이다. 2018년 대학 창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학 중 교원 창업을 업적 평가에 반영하는 학교는 전체의 33.5%에 불과했다. 교원 창업 휴·겸직 제도가 아예 없는 학교도 60%였다.

과기부 산학연 공동법인 사업으로 ‘원프레딕트’를 창업한 윤병동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우수한 논문을 내는 것은 물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어떤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면서 “승진이나 정년보장 심사 때 창업을 했느냐, 비즈니스적으로 얼마나 성공을 했느냐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박사들에 ‘기업가정신’ 교육해야”

이런 현실에서 광주과학기술원(GIST) 사례가 눈길을 끈다. GIST는 교원의 창업 실적을 평가의 60%까지 반영하고, 겸직 허용은 물론 3년까지 휴직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교원창업 평가와 휴겸직 제도 운영.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교원창업 평가와 휴겸직 제도 운영.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김태원 GIST 창업진흥센터 연구원은 “창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더 큰 소득”이라면서 “교수 창업이 더는 ‘낯선 일’이 아닌 게 되면서, 석·박사 과정 학생이나 랩 소속 연구원도 ‘나도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혁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기업가정신’을 교육하자고 제안했다. 고 교수는 “성공 사례를 소개하면서 노하우를 공유하고, 기업가정신 교육을 통해 연구하고 돈을 버는 일이 자연스럽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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