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군단’ 독일이 ‘디펜딩 챔피언’ 포르투갈을 꺾고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20)에서 첫 승을 거뒀다. 독일은 독일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유로2020 F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포르투갈을 4-2로 물리쳤다. 1차전에서 프랑스에 0-1로 진 독일(승점 3)은 조 2위로 올라섰다. 포르투갈은 독일과 승점이 같지만, 대회 규정인 승자 승 원칙에 따라 3위로 밀렸다.
유로2020, 포르투갈 4-2로 격파 #독일 4골 중 3골이 고젠스 발끝서 #티셔츠 교환 거절 옛 굴욕 되갚아 #호날두, 선제골 넣고도 고개 숙여
경기 초반은 포르투갈의 수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6·유벤투스) 독무대였다. 호날두는 전반 15분 역습 상황에서 디오구 조타(25·리버풀)의 패스를 받아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포르투갈 골문에서 상대 페널티박스까지 불과 12초 만에 주파한 호날두의 스피드가 돋보였다. 대회 3호 골. 호날두는 자신의 이 대회 통산 최다 골 기록을 12골로 늘렸다. 국가대표 경기(A매치) 개인 통산 107호 골로 역대 최다 골 기록 보유자인 이란의 알리 다에이(109골)에 두 골 차로 따라붙었다.
호날두의 ‘독일 징크스’도 깨질 것 같았다. 호날두는 메이저 대회에서 독일을 네 차례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경기 전날 호날두는 세계 최초로 인스타그램 팔로워 3억명을 돌파했다. 만약 이날 이겼다면 호날두 인생에서 여러 가지로 기억될 만한 날이었다.
호날두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든 건 독일의 신예 수비수 로빈 고젠스(26·아탈란타)였다. 고젠스는 독일이 0-1로 뒤진 전반 35분 상대 자책골을 유도했다. 그는 페널티박스로 쇄도하던 동료 카이하베르츠(22·첼시)를 향해 왼발로 강하게 공을 패스했다. 공은 포르투갈 후벵 디아스(24·맨체스터시티) 발에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패스가 워낙 빨라 디아스가 어찌할 수 없었다. 포르투갈 수비진은 당황했다. 결국 4분 뒤 포르투갈 하파엘 게헤이루(28·도르트문트)가 또 자책골을 기록했다.
고젠스는 독일이 2-1로 앞선 후반 6분 대회 첫 도움을 기록했다. 왼쪽에서 크로스를 올렸는데, 골 지역으로 쇄도하던 하베르츠가 오른발을 갖다 대 골망을 흔들었다. 3-1로 앞선 후반 15분 고젠스는 요슈아 키미히(26·바이에른 뮌헨)가 크로스한 공을 헤딩슛으로 마무리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독일의 4골 중 3골에 관여한 고젠스는 후반 27분 교체돼 유유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고젠스는 스타 군단 독일 대표팀에서도 낯선 이름이다. 지난해 처음 국가대표가 됐고, 이번 대회 전까지 A매치 출전이 7경기뿐이다. 자국 팬도 별로 듣지 못했던 이름이다. 하지만 고젠스는 2020~21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32경기에 출전해 11골·6도움을 기록할 만큼 공격을 잘하는 수비수다. 전문 스트라이커를 뽑지 않은 요아힘 뢰브(61) 독일 감독은 그를 과감하게 뽑았다. 경기가 끝난 뒤 독일 언론은 고젠스를 소개하기 바빴다. 빌트는 “고젠스는 누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성장 과정을 자세히 다뤘다. 슈포르트1은 “독일의 새로운 영웅”이라고 집중 조명했다.
사실 고젠스는 과거 호날두로부터 굴욕을 당한 일이 있다. 고젠스 소속팀 아탈란타는 2018~19시즌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호날두의 유벤투스와 맞붙었다. 아탈란타가 3-0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고젠스는 자신의 롤 모델로 생각했던 호날두에게 유니폼 교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호날두는 단칼에 “노(No)”라고 거절했다.
고젠스는 자서전에서 “호날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참하고 초라하게 느껴져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자서전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팀 동료들은 호날두 유니폼을 주문해 고젠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고젠스는 “이번에는 호날두에게 유니폼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온전히 승리의 기쁨을 즐겼다”고 말했다. 독일 빌트는 “고젠스가 호날두를 그라운드에서 지웠다”고 썼다. 뢰브 감독은 “고젠스는 공격 본능이 뛰어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