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6주인데 '고소 취하' 문자 믿은 경찰…오피스텔 살인 전말

중앙일보

입력 2021.06.20 17:23

업데이트 2021.06.20 17:41

지난 13일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감금된 채 시신으로 발견된 A씨가 사망 전 7개월간 두 차례 이상 경찰관을 만났으며, 7차례 통화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기간 A씨의 가족들은 경찰을 찾아 두 차례 가출 신고를 하고, 피의자들에 대해 상해죄 고소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경찰은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A씨의 얘기와 피의자들의 거짓말에 속아 보강 수사를 하지 않았다.

15일 오전 마포 원룸 나체 사망사건의 피의자인 20대 초반 남성 2명이 서울서부지법에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출석하고 있다. 편광현 기자

15일 오전 마포 원룸 나체 사망사건의 피의자인 20대 초반 남성 2명이 서울서부지법에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출석하고 있다. 편광현 기자

"고소 취하하겠다" 말만 믿은 경찰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월 17일 영등포서는 상해죄 고소사건의 피해자였던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대질 조사를 위해 경찰서에 출석하라'고 말했다. 이에 A씨는 "서울이 아니라 출석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후 담당 수사관에게 '고소를 취하하고 싶다'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때 A씨의 옆에는 피의자 김모(21)씨와 안모(21)씨가 있었다. '고소 취하' 문자 메시지도 이들에 의해 전송됐다고 한다.

사건추적

'전치 6주' 진단서까지 확보한 상황이었지만 영등포서는 당사자의 고소 취하 의사를 반영해 지난달 27일 '증거불충분'으로 상해죄 사건을 종결했다.

두 차례 가출 신고도 방치

지난 4월 30일에는 A씨 아버지의 두 번째 가출 신고가 있었다. A씨 아버지는 지난 3월 말 김씨, 안씨와 함께 서울로 올라간 아들이 연락을 받지 않자 경찰을 찾았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 명의로 휴대전화 3대가 개통됐다', '아들이 사채를 사용했으니 돈을 갚으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 아들이 상해죄로 고소한 친구 2명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고도 경찰에 전했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신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찰법 시행에 따라 서울지방경찰청이 30년만에 서울경찰청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경찰에 따르면 행정기관 명칭에 포함된 '지방'이라는 용어는 해당 지역에서 '국가사무를 분담해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지방'이라는 명칭이 삭제되면서 국가경찰사무 외에 자치경찰사무도 동시에 수행한다는 법률개정취지를 반영하게 됐다. 사진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깃발. 2021.1.4/뉴스1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신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찰법 시행에 따라 서울지방경찰청이 30년만에 서울경찰청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경찰에 따르면 행정기관 명칭에 포함된 '지방'이라는 용어는 해당 지역에서 '국가사무를 분담해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지방'이라는 명칭이 삭제되면서 국가경찰사무 외에 자치경찰사무도 동시에 수행한다는 법률개정취지를 반영하게 됐다. 사진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깃발. 2021.1.4/뉴스1

하지만 대구 달성경찰서는 가출 신고를 받은 뒤에도 위치 추적 등 강제 수사를 하지 않았다. A씨가 경찰과의 통화에서 '두 사람과 함께 있지 않으며 잘 지낸다'는 취지로 말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전화를 받은 김씨와 안씨도 "A씨의 행방을 모른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지난 3월 30일부터 세 사람은 동거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망 9일 전에도 A씨와 통화한 경찰

경찰에 따르면 A씨가 시신으로 발견되기 9일 전인 지난 3일에도 그는 경찰관과 통화를 했다. 당시 A씨는 통화가 어려울 정도로 말을 더듬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경찰은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물었고,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범행을 눈치챌 만한 사전 신호가 충분했다"고 지적한다. 경찰 출신 프로파일러 배상훈씨는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경찰이라면 협박을 받고 있다는 상황을 눈치챘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조치했다면 살인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개월이나 조사를 미룬 것도 부족한 점"이라며 "'이는 경찰이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당사자들에게 줄 수 있다"라고도 했다.

서울 마포경찰서. 연합뉴스

서울 마포경찰서. 연합뉴스

지난 16일 서울경찰청은 서울 영등포서 담당 수사팀에 대한 감찰 조사를 지시했다. A씨의 상해죄 고소 사건 처리 과정에서 부실한 부분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경찰은 또 달성서의 2회 가출 신고와 해제 과정도 적절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김씨와 안씨를 22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당초 적용했던 살인 혐의뿐 아니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 혐의 적용이 유력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감금돼있는 동안 강요한 행위가 많다"며 "검찰 송치 시 정확한 혐의명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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