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동력을 불어넣을 ‘깜짝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성 김 대표는 오는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한·미-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시작으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 그는 지난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한·일과 생산적인 만남을 기대한다”는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싱가포르 합의' 이끈 북핵통
성 김 대표는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와 주한 미국대사와 등을 지낸 한반도 전문가이자 북핵통으로 불린다.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 결과물이자 문 대통령이 수차례 계승 의지를 밝힌 ‘싱가포르 합의’ 도출의 실무를 총괄한 것 역시 성 김 대표였다. 그는 2018년 북·미 정상회담 준비 실무단을 이끄는 한편 당시 북측 대표였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상대하며 취소될 위기에 놓였던 회담을 정상궤도로 복원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성 김 대표가 임명된 사실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깜짝 선물이었다”고 평가한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강조한 새 대북정책의 핵심 줄기인 ‘열린 외교’와 ‘실용적 접근’에 대해 북한 측이 ‘대화’를 언급한 것 역시 긍정적 요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7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미국의 새 대북정책을 언급하며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대결’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는 대내용 메시지 성격이 강하단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발언은 대화 필요성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비핵화·제재 원칙론 앞세울 가능성
다만 이같은 여건이 실제 남북 및 북·미 대화 기류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미 협상의 핵심 쟁점인 비핵화 및 대북 제재 문제에 있어 원칙론을 강조하고 있단 점이 핵심 변수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접근’은 북한이 CVID 등 비핵화 원칙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 제재 완화 역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성 김 대표가 10여년간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냉·온탕을 오가는 변덕을 지켜본 북핵통이란 점 역시 오히려 북·미 협상 과정이 까다로워지는 원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외교적 협상을 거쳐 이뤄진 1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국 2019년 ‘하노이 노 딜’로 끝나는 상황을 경험한 성 김 대표 입장에선 보다 원칙적이고 전통적인 대북 접근법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北 입장선 차라리 비건이 낫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성 김은 부시 행정부 때부터 북한 내에서 원칙론자로 알려진 인물”이라며 “북한은 스티브 비건 전 대표와 같이 협상 역사를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게 차라리 더 낫다고 여길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랜 시간 북핵 협상 실무를 경험한 성 김 대표는 북한 입장에서도 까다로운 상대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성 김 대표는 전형적으로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는 협상 스타일로, 2018년 북·미 정상회담 직전은 물론 회담이 끝난 이후에도 항상 북한의 ‘불확실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며 “결과적으로 북·미 정상 간 역사적 만남이 물거품이 되는 과정을 경험한 성 김 대표 입장에선 이번엔 더욱 신중하고 단호한 단계적 접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임기 말인 문재인 정부에서 자칫 조급한 대북 접근을 추구하거나 근거 없는 대북 유화책 제공에 나설 경우 성 김 대표의 원칙론 및 단계적 접근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