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쿠데타 3일째부터 목숨 걸고 다큐 만든 그들 "미얀마는 전쟁터"

중앙일보

입력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민주화운동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버마 스프링 21' 한 장면. 유혈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지난 2월 시위 초기엔 시위대가 군부의 군대, 경찰에 평화를 상징하는 장미꽃을 음식, 마실 것과 함께 건네며 비폭력 저항을 했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민주화운동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버마 스프링 21' 한 장면. 유혈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지난 2월 시위 초기엔 시위대가 군부의 군대, 경찰에 평화를 상징하는 장미꽃을 음식, 마실 것과 함께 건네며 비폭력 저항을 했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군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이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미얀마에 있는 친구‧가족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즉각 서로 공유했어요. 그간의 영화 제작 및 미얀마 역사‧군대에 관한 경험에 비춰볼 때 뭔가 큰일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죠.”

미얀마 민주화운동 다큐 '버마 스프링 21' #미얀마 안팎 영화인·일러스트레이터 60인 #군부 쿠데타 초기부터 십시일반 촬영·편집 #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평화상 후보 올라

미얀마 민주화운동 초기 현지 실상을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버마 스프링 21(Burma Spring 21)’ 제작에 참여한 미얀마 영화인 ‘바이 마르 눈’의 말이다. 미얀마 내 영화학교와 일해온 인연으로 이번 단편 편집을 맡은 독일 다큐 감독 ‘한나 훔트’와 그가 지난 13일‧8일 각각 중앙일보에 보낸 e메일에서다.

미얀마 민주화운동 다큐, 독일 평화상 후보에 올라

5분 길이의 이 다큐는 미얀마 안팎 영화인 11명, 일러스트레이터 49명이 군부 쿠데타 사흘째(2월 3일)부터 뜻을 모아, 십시일반 촬영‧편집해 완성했다. 2월 27일 유튜브‧비메오 등에 공개해 현지 상황을 전세계에 알렸고, 지난 4월엔 독일 시민단체가 주는 슈투트가르트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슈투트가르트 평화상은 평화‧정의‧연대에 공헌한 이에게 매 연말 주는 상으로, 미국 정보기관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 ‘위키리스크’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 등이 수상했다.

현재 온라인상에 공개한 다큐(https://youtu.be/BExTdNRGu60)는 원본에 있던 제작진의 이름을 빼고 다시 올린 버전이다. 미얀마 군부의 시위대 탄압이 강경해지고 현지 사망자가 수백명에 달하면서다. 바이 마르 눈은 “미얀마는 혹독한 시기를 맞았다. 우리 친구 중 몇몇은 체포되거나 숨거나 도망쳤다”면서 “최근에도 영화인 한 명이 체포돼 가능한 빨리 그녀를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버마 스프링 21'에서, 저항의 상징 세손가락 경례를 담은 그림이 지난 2월 미얀마 주택가에 빛으로 쏘아진 장면이다. 영화에도 삽입된 이 그림은 점차 다양한 그림체의 손들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이들이 연대에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다큐멘터리 '버마 스프링 21'에서, 저항의 상징 세손가락 경례를 담은 그림이 지난 2월 미얀마 주택가에 빛으로 쏘아진 장면이다. 영화에도 삽입된 이 그림은 점차 다양한 그림체의 손들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이들이 연대에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부산국제영화제‧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지를 선언한 한국 국제영화제들도 8일 “미얀마 프로듀서 ‘마 아앵’이 5일 집을 나선 이후 체포돼 소식을 알 수 없다”면서 “신속한 석방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바다. 해외에 거주중인 그와 한나 훔트가 본지와 실명 인터뷰에 나선 것도 더 많은 국제사회 도움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평화의 장미’ 건넨 시민들…“군부는 저격수 동원”

한나 훔트는 “3월부터 도시는 전쟁터에 가까워졌다”면서 “군부는 시위대의 머리에 총을 쐈다. 그들은 무고한 시위자들을 죽이려고 저격수를 동원했고 이런 잔혹함 탓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가두시위를 포기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버마 스프링 21'에 담긴 미얀마 민주화운동 초기 장면. 거리 벽보에 시민들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토로한 글귀, 미얀마 군부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의혹 등이 담겨있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버마 스프링 21'에 담긴 미얀마 민주화운동 초기 장면. 거리 벽보에 시민들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토로한 글귀, 미얀마 군부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의혹 등이 담겨있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다큐엔 시위 초기 미얀마 시민들의 비폭력 시위가 주로 담겼다. 저항을 상징하는 세손가락 경례, 벽보 글귀 등이다. 또 시민들은 저녁마다 냄비‧팬 등을 두들겨 소리를 냈다. 바이 마르 눈은 이것이 악마를 쫓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대에 와서도 지역사회를 억압하는 악행이 있을 때 항아리와 냄비를 두들겼는데 1988년 항쟁 때도 이런 의식이 있었다”면서다.

완전 무장하고 버틴 진압부대에 시위대가 장미꽃을 꽂아주는 장면이 있다.  

바이 마르 눈(이하 눈): “장미를 선물하는 것은 설득과 화해를 상징하는 행위였다. 경찰과 군이 잔혹해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경찰‧군에게 ‘자애’를 보이도록 서로 격려했다. 장미와 함께 음식과 마실 것을 나눠주기도 했다.”

한나 훔트(이하 훔트): “우리 영화가 시위 초반이라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군대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자, 꽃을 주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다큐엔 군부의 직접적인 폭력 진압 장면은 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밤중 주택가 장면에 이어진 암전 화면에서 들려온 총성이 불안하게 다가왔다.  

훔트: “많은 사람들이 흔적 없이 수감‧실종되거나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폭력적인 이미지를 다큐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미지‧영상을 너무 많이 보게되면 비극에 무감각해진다. 대신 우리 영화의 밤 장면은 수백만 미얀마인이 느끼고 있는 위험과 위협을 보여준다. 기관총 발포는 군의 처형을 뜻한다.”

지금 미얀마는 얼마나 더 위험해졌나.  

눈: “영화‧예술‧문학계 친구들의 상황은 그들이 만들었던 허구나 예술작품보다 더 극적이다. 안전상의 이유로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그 이야기들을 세상에 들려줄 것이다.”

훔트: “바이 마르와 나는 유럽에 있지만 미얀마에 있는 영화계 친구들은 생계를 위해 새 직업을 찾아야 할 처지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느라 바쁘다. 미얀마 국가 경제는 침체됐고 더 혹독해질 것이다.”

국제사회의 어떤 행동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나.  

눈: “처음에 미얀마 사람들은 국제기구들이 그들을 돕고 보호해주러 올 것이라 기대했다. 비록 이제 그런 희망은 사라졌지만, 국제사회가 더 강력한 지지자가 돼줄 것이라 내다본다. 난민과 영장실질심사 대상자, 아프고 굶주린 가족들을 위한 기부가 가장 절실하다.”

다큐멘터리 '버마 스프링 21'에서 세손가락 경례로 저항의지를 표한 미얀마 시민의 모습이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다큐멘터리 '버마 스프링 21'에서 세손가락 경례로 저항의지를 표한 미얀마 시민의 모습이다. [사진 한나 훔트, 버마 스프링 21]

이번 단편을 장편 다큐로 발전시킬 계획도 있나.  

훔트: “우리에겐 더 많은 영상이 있다. 바이 마르는 또 다른 협업을 통해 3~5월에 촬영된 시위 장면들을 확보했다. 장편 제작을 위한 자금처를 찾고 있고, 완성된다면 영화제를 통해 공개할 것이다.”

눈: “어느 정도 안전이 담보되고 상황이 갖춰지면 장편을 만들려고 생각해왔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한국에서 이 영상을 볼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말은.  

훔트: “한국인 여러분, 한눈 팔지 말아주시라! 피난처를 찾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을 여러분의 나라로 데려가 주길! 그리고 가능한 많은 미얀마 영화를 상영해 달라고 한국 영화계에 청하고 싶다. 미얀마 내엔 군사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방법도, 민주화 운동에 관한 영화를 함께 볼 창구도 없는 상태다. 미얀마 상황을 잊지 않기 위한 영화들을 상영해서, 미얀마인들이 이 무거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여러분의 지지를 그들이 알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관련기사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