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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쓰레기 봉지에 든 귤 껍질, 그건 천국의 향기였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54)

(지난 53회에 이어)투명한 비닐봉지에 깨끗하게 쌓인 주황색 빛깔의 그 무엇. 내 손은 어느새 봉지를 주워들고 있었다. 봉지를 뜯고 열어보니 과일 껍질 같았다. 그것은 금방 나무에서 딴 듯 무척 싱싱했고 선홍빛이 돌았다. 그것을 천천히 코에 가져다 댔다. 껍질에서 나는 향기는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천국의 향기였다. 나는 그것을 조금 뜯어 입에 넣었다. 껍질이라 당도는 없었지만 싱그러운 향기와 함께 목으로 잘도 넘어갔다. 난생처음 보는 그 과일 이름을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쓰레기장에 서서 그 껍질을 모두 다 먹어치웠다.

그것이 귤이라는 과일의 껍질이었다는 것을, 나는 몇 년이 더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시절 귤은 매우 비싼 과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손에 만져보기도 힘든 과일이었다. 그렇게 처음 껍질로 먼저 알게 된 귤이라는 과일. 그 후로 어른이 되어 큰맘 먹고 귤 3000원어치를 사면 누구 입으로 들어간 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다. 박스로 사 놓고 먹는 것은 부자나 가능한 일이었다. 내게 귤은 마음껏 먹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오래전 양평 벌판 쓰레기장에서 태어나 처음 만져봤던 그 귤을 화물차 한가득 실은 그날, 마당에 서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시절 귤은 매우 비싼 과일이었다. 귤을 팔기 위해 화물차에 한가득 실은 어느 날, 나는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사진 pixabay]

어린시절 귤은 매우 비싼 과일이었다. 귤을 팔기 위해 화물차에 한가득 실은 어느 날, 나는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사진 pixabay]

“아! 나는 크게 성공했구나! 내가 이렇게 많은 귤을 가질 수 있게 되다니! 배가 터질 때까지 죽도록 먹고 먹어도 남을 귀한 귤이 내 눈앞에 산더미로 쌓여있다니! 그것도 껍질이 아닌, 달콤한 알맹이만 꺼내 먹어도 도무지 끝이 안 날 만큼 많은 귤을 드디어 내가 가지게 됐다니.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나는 성공했다. 인생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화물차 적재함에 높다랗게 쌓인 귤 박스를 바라보며 살면 된다는 희망을 배웠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고 가슴이 끝없이 부풀어 올랐다. 그날의 벅참과 느낌은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뇌리에 생생하다. 이 소박하고 어이없는 성공담에 혹자는 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만큼은 실로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어릴 때는 안전하게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잘 자랄 수 있는 동물이다. 어릴 때 안락한 가정과 능력 있고 따뜻하며 자상한 부모를 꿈꾸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그러나 세상 여건은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느 영화배우의 대사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 아무리 외쳐도 이미 태어난 이상 되물릴 수도 없다.

평화롭고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하는 그 아이들. 요즘도 순조롭게 자라지 못할 환경에 놓인 아이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비극의 가족사를 듣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울리고, 혹독한 삶과 인생의 경기는 인정사정없이 시작된다. 시간은, 그 아이가 혹독한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됐느냐 안 됐느냐는 전혀 관심 없다. 그냥 링 위로 아이의 등을 잔혹하게 떠밀어 넣으면 그뿐이다. 세상살이는 홀로 생존하는 아이에게 더 힘든 장애물 천지가 된다.

혹독한 삶과 인생의 경기는 인정사정없이 시작된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세상살이는 힘든 장애물 천지이다. [사진 pixabay]

혹독한 삶과 인생의 경기는 인정사정없이 시작된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세상살이는 힘든 장애물 천지이다. [사진 pixabay]

아늑한 울타리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보호자가 방패가 되어 같이 싸워준다. 싸울 수 있는 무기도 스킬도 매우 다양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풍족한 아이에게는 세상 어떤 장애도 더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선택의 여지 없이 태어나고, 홀로 자신을 지켜내며 성장해야 하는 아이가 있다. 지원군도 없이 이 매서운 삶과의 전쟁에서 싸우고 스스로 지키며 살아남아야 하는. 이쯤 되면 경기의 공평이란 없으며, 그것은 이미 무용지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 시간은 냉혈한처럼 피 묻은 칼을 들고 아이에게 로봇처럼 달려든다. 준비가 안 된 아이에게 세월이라는 적은 실로 잔혹하기 짝이 없다. 삶이라는 경기는 그 아이에게 한시도 정신 차릴 틈을 주거나 관대하지 않다. 피도 눈물도 없이 한 치 오차도 없이 헝거게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승리해 환호하고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어 어두운 골목으로 잊힌다.

이것은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특별(가난)하게 태어났는가?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그 특별함을 넘어설 더 특별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삶의 특공대가 되어야 한다. 당신을 지켜줄 이는 오로지 당신뿐이다. 지쳐도 되는 자유란 꿈 꾸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부디 안심하라. 이 세상을 이길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악조건 속에도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당신을 도울 사람이 아직 하나 남아 있다. 그대를 지키고 박수쳐주고 응원할 사람, 그대의 손을 잡고 계속 성장해나가게 할 사람이 남아 있다. 그는 바로 당신 속의 당신이다. 게임 캐릭터처럼 당신의 스킬을 계속 키우고 끝까지 당신을 책임져 줄 그를, 오늘 당신 안에서 만나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나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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