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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쟁이는 “사장님 서운해요”, 사장님은 “‘빨간날’ 부담돼요”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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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폭소클럽'에서 정철규가 '블랑카' 코너에서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KBS '폭소클럽'에서 정철규가 '블랑카' 코너에서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

[키워드] 중소기업 ‘유급휴가’ 딜레마 #주요 대기업 코로나 백신 ‘1+2일 유급휴가’ #같은 울타리 쓰는 협력업체 “상당히 난감” #국회는 대체공휴일 확대 방안 논의 중인데 #현장선 “상처 받고 피해 보는 사람 늘 수도”

처음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지금도 회자하는 ‘불후의 유행어’다. 2004년 KBS2 개그 프로그램 ‘폭소클럽’에서 ‘스리~랑카에 온 블랑카(정철규 분)’는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에서 겪는 낯선 삶을 재치와 풍자로 풀어냈다.

블랑카는 처음에 주로 ‘사장님’을 비판 소재로 삼았다. 그러다가 도중 하차할 뻔했다. “외국인에게 부당 대우를 일삼는 ‘악덕 기업주’라는 편견이 생길 수 있다”며 중소기업 사장들의 항의가 있어서다. 그는 나중에 타깃(?)을 ‘봉숙이’로 바꿨다.

아무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무시, 불편한 시선을 꼬집으면서 “사장님 나빠요”라고 내뱉는 한마디는 여전히 여운이 짙다.

그런데 요즘 중소기업계에서 블랑카가 ‘소환’되고 있다. 엉뚱하게도 코로나19 유급휴가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등 굵직한 기업들은 백신 유급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대개는 접종 당일 하루, 이상 증상이 있으면 추가로 1~2일을 더 주는 식이다. 요즘 직장인 사이에선 “백신을 맞으면 ‘1+2일 유급휴가’가 생긴다”는 인식이 생겼다.

삼성전자는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가장 앞선 지난달 12일 백신 유급휴가를 도입했다. 이 회사는 사내게시판을 통해 ‘백신 접종 당일 하루 유급휴가를 제공하고, 이상 반응이 있을 경우 추가로 이틀 유급휴가를 준다’고 공지했다. 의사 소견서 같은 증빙 서류가 없어도 휴가를 연장할 수 있다.

“급여 달라도, 대우는 같게 해 달라”  

이게 ‘같은 울타리’를 쓰는 ‘다른 회사 얘기’라면 어떨까. 삼성전자엔 줄잡아 11만 명이 근무한다. 경기도 수원과 평택, 화성 등 주요 사업장에서 상주하는 협력업체도 상당하다. 설비 유지보수부터 물류, 환경, 청소, 조경 등등 분야도 가지가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상시 출입하는 협력업체 인원이 4만~5만 명은 될 듯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이 문제는 예민하게 등장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목소리는 간단하다. “삼성전자는 (백신 접종 후) 사흘 쉬는데 우리는 왜 아직 공지가 없나? 동일한 급여는 아니어도, 동일한 대우는 해 달라.”

코로나19 예방 접종이 실시된 18일 대전의 한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에게 화이자 백신을 접종 받은 어르신들이 이상반응 관찰을 위해 휴식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코로나19 예방 접종이 실시된 18일 대전의 한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에게 화이자 백신을 접종 받은 어르신들이 이상반응 관찰을 위해 휴식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협력업체로선 인건비가 걱정이다. 삼성전자 협력사에 근무하는 인사·지원 담당 임원 A씨가 중앙일보에 전한 고민을 요약하면 이렇다.

“다음달 국가기간산업 종사자에 대해 접종을 앞두고 직원들 눈치 보는 중이다. 유급휴가로 최소 하루는 줄 방침이다. (유급휴가가) 하루면 전체 인건비가 4~5%쯤, 사흘을 주면 10% 이상 늘어난다. 이렇게 공지하면 ‘삼성은 사흘 쉬는데, 왜 우리는 하루냐’는 불만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삼성처럼) ‘1 2 유급휴가’를 주면 적자가 날 수도 있다. 연간 단위 계약이라 삼성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 얘기를 블랑카 버전으로 옮기면, 봉급쟁이는 “사장님 서운해요”, 사업주는 “‘빨간 날(유급휴일)’ 부담돼요”인 셈이다.

정부에서도 ‘휴일 양극화’ 우려 

그런데 여기에 폭탄이 하나 더 떨어질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설날과 추석 연휴, 어린이날에 한해 지정하는 대체공휴일을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올해의 경우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성탄절 등 4일의 ‘빨간 날’이 더 생긴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체공휴일 확대를 논의하기 위한 입법 공청회가 진행되던 중 서영교 위원장(오른쪽)과 민주당 간사인 박재호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체공휴일 확대를 논의하기 위한 입법 공청회가 진행되던 중 서영교 위원장(오른쪽)과 민주당 간사인 박재호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오는 광복절부터 시행되도록 속도를 내겠다”며 “국민의 휴식권을 보장하면서 내수 진작 효과가 있고, 또 고용을 유발하는 윈윈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국민 여론도 70% 이상 찬성(서영교 민주당 의원)이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광복절이 토요일이어서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경우 소비 유발 2조원, 고용 증가 3만6000명이 기대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현재는 정부가 난색을 보이면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정부는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유급휴가를 적용하지 않는다. 대체공휴일법에선 일괄적으로 휴무일을 지정해 충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직장인 사이에서 ‘휴일 양극화’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으로선 대체공휴일에 출근하면 휴일근로수당(통상임금의 150%)을 지급해야 한다. 국회는 오는 22일 법안소위를 다시 열어 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다시 A씨의 얘기다. “기업 부담도 부담이지만, 휴일 때문에 상처받고 피해받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고려했으면 한다.”

이상재 산업2팀장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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