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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와인이 여긴 2만원 저긴 9만원…"온라인서 왜 안파나"[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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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값이 기가 막힌다. 

무학주류상사가 수입하는 스페인산 스파클링 와인인 '보히가스 그랑 리저브 엑스트라 브뤼'. 그런데 누구는 1만9000원에 사고 또 다른 사람은 9만원에 산다면? 똑같은 와인의 가격 차가 7만원이 넘는다면 정상적인 가격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와인 애호가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독점 판매권을 가진 수입사들의 '가격 조정'이라는 오랜 관행, 국민 건강을 이유로 온라인 판매를 금하는 국세청 때문에 와인을 덮고 있는 두꺼운 베일은 벗겨지지 않고 있다.

들쑥날쑥한 와인 가격에 분노하는 애호가

먼저 와인 업계가 전하는 와인가 결정 과정은 이렇다. 와인 역시 보통 수입 물품처럼 수입사→도·소매상→소비자의 유통 과정을 거친다. 와인은 여기서 수입 신고가의 30%의 주세, 주새액의 10%가 교육세로 부과된다. 또 수입사와 도·소매상의 마진이 붙고, 최종 소비자가의 10%가 부가가치세로 붙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 와인의 최종가는 보통 수입신고가의 1.5~3배로 결정된다는 게 와인업계 설명이다.

수입가보다 10배 이상 비싼 경우 흔해  

현실은 고개를 가로젓는 소비자가 많다. 일단 너무 비싸다는 쪽이 많다. 해외(산지가 아닌)에서 3만~4만원을 주고 마신 와인이 한국에서는 20만원 후반대에 팔린다는 불만은 흔하다. 프랑스에서 3000~4000원짜리가 한국에선 3만~4만 원대로 둔갑한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와인 업계 설명과 딴 판이다. 또 하나 불만은 판매점마다 가격이 들쑥날쑥하다는 것이다. "비싼 건 괜찮지만, 남들보다 비싸게 마시는 건 못 참는다"는 한국 소비자의 화를 제대로 돋우는 대목이다.

수입사들, "너무 싸게 팔지 말라"  

들쑥날쑥한 가격에 수입사나 도매상을 의심하는 소비자가 많다. 실제로 "일부 수입사들이 관행적으로 판매가를 조정하고 있다"는 게
와인 업계의 정설이다. 판매점에 와인가의 하한선을 주고 그 밑으로는 팔지 말라고 압박한다는 것이다. 만약 마진을 줄여가며 수입사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싸게 팔면 물량을 대주지 않는 식으로 소외시켜 버린다. 이젠 소비자들도 이같은 관행을 알아차렸다. 각자 산 와인의 영수증을 공유한다. 무수한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내가 지금 사려는 와인을 다른 사람은 다른 곳에서 얼마에 샀는지 알 수 있게 됐다. 국내 최대 와인 커뮤니티로 꼽히는 '와쌉'은 이미 와인가 조정 혐의가 짙은 몇몇 수입업체 리스트를 올려놓고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국세청, "국민건강 위해 온라인 판매 금지"  

또 하나, 와인 애호가를 답답하게 하는 게 온라인 판매 금지다. 와인 가격이 공개되지 않는 데는 온라인 판매 금지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온라인판매가 허용되면, 각 쇼핑몰 업체마다 판매하는 와인을 올려놓고 가격도 명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와인뿐만 아니라 모든 주류는 청소년 음주 문제와 탈세 이슈 때문에 인터넷 판매가 오랫동안 금지돼 있다. 다만 국세청은 2009년 우리 술 고급화와 전통주 복원, 한식 세계화 등을 위해 전통주의 인터넷 판매만 허용했다. 지금은 음식 주문을 전제로 생맥주의 배달 등 일부 주류 배달이 허용된다.

또 와인의 온라인 판매를 둘러싼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요즘 편의점들은 1분에 2병꼴로 와인을 판매한다. 와인 수입사나 도매상, 소매상들 역시 주요한 와인 유통 채널이다. 먼저 편의점이 속해 있는 슈퍼 체인유통사업협동조합은 "와인까지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면 소주, 맥주도 팔 수 있게 돼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반대한다. 하지만 온라인쇼핑협회는 "와인은 일반 주류와 달리 음식문화와 연관돼 있고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면 가격 거품도 빠져 소비자들이 이득이다"라고 반박한다.

유통 채널도 가격도 투명하게 바꿔야  

와인 소비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와인 수입량은 5만4172t(수입액 3억3002만 달러)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1987년 수입자유화 이후 처음으로 5만t을 넘겼다. 이는 한 해전보다 수입량은 24.4%, 수입액은 27.3% 각각 증가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온라인 성인 인증을 통해 청소년의 주류 구매는 쉽게 막을 수 있는 IT 기술을 갖고 있다. 온라인 유통에서도 세금계산서를 정확히 발행해 탈세도 걱정할 게 아니다. 이제는 와인 가격도, 판매 채널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장정훈 산업1팀장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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