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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벼슬이냐" 막말에 또 멀어진 교사 정치 참여[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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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교육팀장의 픽 : 천안함 막말 교사

"천안함이 폭침이라 '치면' 파직에 귀양갔어야 할 XX가…(중략)…천안함이 무슨 벼슬이냐? 천안함은 세월호가 아냐 XX아."

지난 11일 서울 휘문고 교사 A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됐습니다. 한 학생의 제보로 이 글을 알게 된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14일 A교사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A씨는 논란이 커지자 게시물을 삭제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생각없이 써댄 행위를 반성한다"는 사과문을 올렸지만 최 전 함장은 "학생들을 위해 사과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페이스북 캡처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페이스북 캡처

휘문고는 학부모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내고 A교사가 맡은 학급의 담임을 교체했지만 A교사를 처벌하라는 요구는 거셉니다. 시민·학부모 단체가 학교 앞에서 집회를 열고 A교사를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 정치인들도 A교사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휘문고 교사 발언, 세 가지 문제점

A교사 발언은 몇 가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먼저 최 전 함장에 대한 원색적인 욕설을 공공연하게 게시했기 때문에 명예훼손 및 모욕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이미 최 전 함장이 명예훼손과 모욕죄 혐의로 A교사를 고소한 상태입니다.

또 교육공무원(사립교사 포함)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발언이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습니다.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은 징계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보수 성향 단체들은 이를 근거로 A교사의 징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14일 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 앞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욕설 등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고등학교 교사 A씨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14일 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 앞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욕설 등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고등학교 교사 A씨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교사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논란은 과거에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지난 정부 시절에는 경기도 평택의 한 중학교 교사 B씨가 '종북 척결' '종북 검사 구속'이라고 쓴 종이를 든 학생들의 사진을 SNS에 게시해 논란이 됐습니다. B교사는 보수 성향 단체 활동을 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비난 글을 자주 SNS에 올렸습니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은 B교사가 교육의 중립성을 위반했다며 학교 측에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국민 공감대 얻지 못하는 '교사 정치 참여'

이런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교육계에서는 교사의 정치 참여를 위한 길이 또 멀어졌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교원의 정치 활동 금지는 헌법과 정당법, 공직선거법 등 여러 법률에 걸쳐 규정됐습니다. 대학 교원을 제외한 초·중등학교 교사는 중립을 지켜야 하고, 정당 활동이나 선거 운동을 해서도 안됩니다. 헌법재판소는 "감수성과 모방성, 수용성이 왕성한 초·중등학생에게 교사가 미치는 영향이 크고, 교사의 정치활동은 학생의 수업권 침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정치 활동 금지를 합헌이라 판단(2004.3.25)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조총연맹, 전교조 관계자들이 3월 17일 국회 앞에서 공무원,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법안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조총연맹, 전교조 관계자들이 3월 17일 국회 앞에서 공무원,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법안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롯한 진보 성향 교육 단체들은 교사의 정치 참여 보장을 강력히 요구해왔습니다. 보수 성향의 한국교총도 교실 밖에서의 활동과 출마 자격 등에 대한 제한이 과도하다고 주장합니다.

정치권도 선거철이 되면 이러한 교사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해왔습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안철수 후보 등이 교원의 정치 참여 확대를 약속했죠.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공무원·교원 정치 참여 허용을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 정권이 1년 남짓 남은 지금까지도 교원의 참정권 확대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폐기되기만 반복해왔습니다. 내년에 선거를 앞둔 가운데 이번 국회에서도 교원의 정치 참여를 보장한다는 법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법안이 통과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교원단체와 정치권의 필요만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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