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어쩌다 유럽 순방
6박 7일과 7박 8일. 방문국 수는 3개국으로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유럽 순방 이야기다. 기간도 비슷하고, 3개국을 방문한 건 똑같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순방에만 이런 질문이 따라붙는다. “지금? 꼭?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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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일 영국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까지는 두 정상의 일정이 같았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벨기에 브뤼셀로 가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 정상회의를 진행했고, 스위스 제네바로 이동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퍼스트 레이디인 질 바이든 여사는 G7 정상회의 일정 뒤 곧바로 미국으로 귀국했다.
문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뒤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연이어 방문했다. 정상회담 외에 의회 연설, 시청 방문, 비즈니스 포럼 참석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김정숙 여사는 박물관과 식물원 방문 등 별도의 일정을 진행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체력적으로 매우 벅찬 여정이었다”고 했을 정도로 다채로운 일정이었다. 국가 정상의 행보는 외교 저변의 확대와 직결된다. 문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정부는 오스트리아 및 스페인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고, 협력 확대를 위한 협정 및 양해각서도 여러 건 체결했다.
문제는 일정의 밀도와 순방 목적의 시급성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은 “지금? 꼭? 왜?”에 대한 답이 명확하다. ‘바이든의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고, 미국의 가장 중대한 외교 현안인 중국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지 동맹ㆍ우방과 함께 청사진을 그렸다.
모든 일정이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였고, 그의 순방 기간 8일 중 정상 관련 행사가 아닌 일정은 영국에 주둔 중인 미군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가 사실상 유일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문 대통령의 순방 역시 이런 시급하고 중대한 전략적 이익이 걸려 있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고통을 겪는, ‘평시’가 아닌 ‘전시’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평시라면 대통령이 어느 지역을 찾을 때 여러 국가를 묶어 함께 방문해 정상 외교의 효과를 높이고, 영부인이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 문화 외교를 펼치는 건 박수 보낼 일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은 백신 수급을 우려하며 잔여 백신을 맞기 위해 ‘광클’ 중이다. 확진자 발생 수는 매일 꾸준히 500~600명대를 유지하며 여전히 위기감이 높다.
1년 넘게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는 데서 오는 박탈감도 상당하다. 백신을 맞고 유럽의 아름다운 성당과 궁을 방문하는 대통령 부부를 보며 “잘한다”는 말보다 “부럽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게 현실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지금 같은 때에 정상 순방을 하려면 우리 기업의 이익이나 우리 국민의 안전 같은, 꼭 대통령이 움직여야 해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 있어야 국민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특히 스페인에서 마드리드뿐 아니라 바르셀로나까지 가서 경제인협회 연례포럼과 관광라운드 테이블 참여, 추기경 면담만 하고 온 것은 ‘한가하다’는 비판을 듣기에 충분했다”고 말했다.
여권은 문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며 언론을 탓한다. “역대급 외교적 성과에 대한 언론의 보도량이 아쉽다”(정세균 전 국무총리), “언론이 국격을 못 따라간다”(윤건영 민주당 의원) 등이다.
하지만 정상외교 성과에 스스로 흠집을 낸 건 정부다.
청와대는 인스타그램에 문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방문 소식을 전하며 독일 국기를 올렸다. 즉각 수정했지만, 외교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 특히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던 역사를 고려하면 실수로 넘어가기 어려운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G7 단체사진에서 문 대통령이 앞줄 중앙에 선 것을 ‘대한민국의 위상’에 비유한 것은 무지의 소치다. 국가원수인 대통령, 그 중에서도 재임 기간이 긴 대통령의 의전 서열이 가장 높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좋은 자리에 선 것 뿐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이번 G7 정상회의에 초청된 4개국 중 인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의장국인 영국과 관계 있는 영연방 국가인 만큼, 한국이 사실상 유일한 초청국”이라고 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외교 소식통은 “한마디로 다른 세 나라는 과거 영국 식민지였어서 초청했다는 뜻인데, 해당 국가들이 알면 아연실색할 일”이라며 “모두 각기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나라들이기에 초청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G7 단체사진을 게시하며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을 잘라낸 것은 심각한 외교 결례다. 공교롭게도 라마포사 대통령이 유일한 흑인이었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적이라는 오해마저 살 우려가 있는 대형 사고다.
마침 G7 전체 세션에선 이와 반대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의장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회의를 시작하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라마포사 대통령과 문 대통령 등 초청국 정상들을 차례대로 소개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이든 대통령이 “그리고 남아공 대통령도 있죠”라고 지적하며 손가락으로 라마포사 대통령을 가르켰다. 존슨 총리가 그를 빼놓고 소개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자 존슨 총리는 “네, 남아공 대통령이요. 제가 아까 말한대로요”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눈이 동그래지며 “아, 소개했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존슨 총리는 이제 가만히 있으라는 듯 바이든 대통령에게 손짓까지 하며 “네, 했어요. 확실하게 했어요”라고 말했고, 참석한 정상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초청국 정상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려던 바이든 대통령의 ‘오버’가 만들어낸 유쾌한 해프닝이었다. 한 국가 정상만 잘라낸 사진을 버젓이 공식 SNS 계정에 올린 정부의 ‘실수’가 더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