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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춤을' 구애가 통했었다, 정치인 꼰대 탈출 '몸부림史'

중앙일보

입력

푹 눌러쓴 벙거지, 긴 팔 위에 반소매 티셔츠를 덧입은 ‘레이어드’ 패션, 손가락을 치켜든 어색한 양 손짓….

65세의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지난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 신인가수 ‘최메기(MEGI)’ 모습이다. 열흘 전(3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그는 “못 부른 노래지만 진심을 담았다. 내 노래가 웃음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걱정 마, 걱정 마, 당신은 귀한 사람. 함께해, 함께해,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란 반복 멜로디 노래를 11초짜리 영상에서 직접 불렀다.

나흘 뒤 여권 대선 주자 중 맏형인 정세균(71) 전 국무총리도 ‘힙합 전사’로 분한 모습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청바지에 가죽 재킷, 검정 선글라스, 금색 장신구까지 치렁치렁 걸친 모습의 그는 해당 영상에서 한술 더 떠 마술사, 해리포터, 카우보이 복장을 잇달아 선보였다. 맨 마지막 옷 티셔츠에 새긴 ‘독도는 우리 땅(Dokdo is Korea Territory)’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라고 한다,

6070 정치인들이 애써 변장에 나서는 건 ‘꼰대’로 비판받는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젊은 유권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여기에 지난 16일 “청년특임장관을 신설하자”(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공식 제안이 나올 정도로 내년 대선의 주요 화두가 된 청년 문제 해결에 대한 공감대가 덧입혀졌다. 앞서 최 지사는 국회 잔디밭에서 고용불안 몬스터를 때려잡는 고용 박사 ‘최박사’ 열연을 펼쳤고, 정 총리는 “안녕하세균”을 외치며 청년들을 만나는 영상을 올려 스킨십을 강조했다.

디지털·혁신 이미지를 강조 중인 이광재(56) 민주당 의원은 18일 국내 주요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플랫폼 ‘제페토’에 접속, 젊은 층 공략에 뛰어들었다. ‘우리별’ 닉네임이 붙은 캐릭터로 스키점프, BTS 댄스 등을 체험한 이 의원은 “여기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오겠다”며 “우리 (캠프) 사무실도 메타버스에서 일하는 걸 구현해보고 싶다”고 즐거워했다.

야권에서도 원희룡(57) 제주지사가 지난달 30일 ‘제페토’ 시작 소식을 알리며 증강현실 공간을 손수 홍보했다. 대학 졸업식, 기업 신입사원 연수, K팝 공연 등이 메타버스에서 이뤄지고 있는 세태를 고려해 새로운 소통 창구를 선점하겠다는 의지다. 지난달 ‘코인러(코인 투자자), 날 지지하라’는 영상을 올려 젊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원 지사는 그간 지역에서 힙합 전사, 산타클로스, 꼬마 해녀 등으로 여러 차례 변신해 “현실의 ‘분장 정치’ 단계는 이미 섭렵했다”(지역 주민)는 평을 듣는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달 20일 자신의 증강현실 캐릭터를 공개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달 20일 자신의 증강현실 캐릭터를 공개했다.

2018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해녀 탈을 쓴 원희룡 지사 모습. 원 지사 블로그 캡처

2018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해녀 탈을 쓴 원희룡 지사 모습. 원 지사 블로그 캡처

MZ세대 공략? 반응 제각각

최근 정치권의 이 같은 시도를 두고 ‘부캐(부캐릭터·제2의 정체성을 뜻하는 말) 마케팅’이란 말이 나오는 건 이른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가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릴 주요 세대로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인들의 친근함 마케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MZ세대의 일상 문법에 맞춰 이를 ‘부캐’로 포장·홍보하는 현상이 새롭게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여야 일각에서 15~60초짜리 짧은 영상 플랫폼인 ‘틱톡(Tiktok)’이나 유튜브 ‘쇼츠(shorts)’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것도 최신 트렌드다. 노년층이 주로 긴 길이의 영상을 소화하는 데 반해, 빠르게 소비되는 휘발성 콘텐트에 익숙한 MZ세대를 공략한 변화다.

다만 새로운 시도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유튜브 댓글 등에 “재밌다”, “신선하다”는 긍정 반응과 “비호감”, “보기 싫다”는 부정 반응이 엇갈린다. 지난 4·7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이재정·박주민 의원이 각각 유치원생·19세로 연기한 복고풍 콩트 ‘뽑기도 다시 한번’은 조회 수 1만6000회에 ‘좋아요’ 960건을 기록했지만 ‘싫어요’를 누른 시청자가 381명이었다.

지난해 4·15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위성정당이던 미래한국당에서 원유철 대표·염동열 사무총장 등이 시도한 ‘핑크 챌린지’ 역시 진영 내에서 “역효과가 컸다”는 결론이 났다. 당색인 ‘해피 핑크’ 가발을 쓰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홍보 영상을 찍은 이들에게 한국당 지도부가 “핑크색 옷까지는 좋은 데 가발은 보기 부담스럽다. 꼭 써야 하느냐”는 우려를 전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지난해 4월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핑크 챌린지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미래한국당 제공

지난해 4월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핑크 챌린지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미래한국당 제공

20년 전에도 ‘파격 홍보’

정치권 ‘영(young·젊음) 마케팅’의 흑역사는 2002년 16대 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나라당 소속이던 이회창 후보가 스승의 날 서울 시내 여고에서 일일 교사로 강의를 하던 중 “여러분들을 보니 명랑하고 ‘빠순이 부대’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오빠가 아니라 ‘늙빠(늙은 오빠)’”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이 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야권 인사는 “젊고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하라는 참모들의 권유가 있었는데, 거기에 익숙지 않은 후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었던 게 화근이었다”며 “현 대선 후보들도 무작정 젊은 층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승산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5월 15일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은평구 동명여자정보산업고에서 일일교사로 강연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5월 15일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은평구 동명여자정보산업고에서 일일교사로 강연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7년 15대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가 한창 인기였던 유행가 ‘DOC와 춤을’을 패러디한 ‘DJ와 함께’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윤흥렬 김대중 캠프 메시지팀장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광고에서 후보자를 희화화한 TV 광고는 ‘DJ와 함께’가 처음이었다”라면서 “당시 파격적이었던 이 광고를 통해 주된 흐름이던 구호성 정치광고가 생활밀착형 정치광고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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