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94)
귀촌여지도② 강원도 편
한참 직장을 다닐 때다. 강원도를 간다고 하면 그냥 설렜다. 학생도 아닌 직장인이어도 어쩌다 워크숍이나 단합대회를 강원도로 간다고 회사에서 말해 주면 설레고 신났다. 무조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던 시절이다. 기차를 타고 가면 안동까지 내려갔다가 태백으로 넘어가니 너무 돌았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쭉 가면 강릉이었다. 물론 중간에 두 번은 쉬었다. 굽이굽이 대관령이나 미시령을 넘어가려면 미리미리 쉬고 먹고 충전해야 했다.
홍천을 거쳐 횡성, 인제, 평창을 지나면서 이승복 기념관 표지판이 보이는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태백산맥 큰 고개 위에서 한번 쉬고 내려가면 바다였다. 해변에 내리자마자 소주부터 두어병 깠다. 오징어 회가 있으면 두병 더 깠다. 마침 그 당시 ‘강원도의 힘’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다들 영화는 보지도 않았으면서 ‘강원도의 힘’이라고 외치며 놀았다. 진짜 강원도에는 힘이 있다고 느껴졌다. 첩첩산중과 바다가 있는 곳. 강원도는 그냥 좋았던 곳이다. 적어도 서울 촌놈에게는 말이다.
강원도는 아마도 최초의 귀농·귀촌 붐을 일으킨 곳일 것이다. 1990년대부터 강원도는 펜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숙박이 유행한다. 다소 이국적인 양식의 건축물에서 하루를 지내는 민박인데, 펜션(Pension)은 원래 ‘연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유럽 사람도 민박을 지어 노후에 소득을 올리겠다는 의미로서 펜션을 민박이라고 쓴다. 어쨌든 한국에서도 같은 의미이다. 많은 도시인이 강원도와 같은 경관이 수려한 곳에 가서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며 민박을 하며 얼마씩 돈을 받아 유지비로 사용했다. 지금은 펜션이 너무 많아 경쟁이 심해 그다지 재미가 없지만, 한때는 펜션은 꽤 돈이 되는 사업거리였다.
최근의 강원도에 관한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2018 평창 올림픽’이었다. 대회를 개최하기 전 십수 년 전부터 올림픽은 지역의 관심사였고 부동산으로만 보면 큰 호재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강원도 평창과 주변에 땅을 사들이고 이주했다. 문제는 올림픽이 끝난 이후였다. 올림픽이 끝나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강원도가 조용해졌다. 무언가 좋은 일이 연속해 일어날 것 같았는데 그게 끝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무대는 정적만이 남았다. 큰 아쉬움이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두고 해안지역과 내륙지역으로 나눈다. 그래서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으로 부른다. 산과 바다가 함께 있으니 매우 다양한 물산이 나오고 먹을 것이 풍부하다. 지역마다 특색이 뚜렷해 춘천 사람과 삼척 사람이 만나면 같은 강원도 사람이라고 불리기가 민망할 정도다.
홍천군은 귀농·귀촌 1번지라고 자부할 만큼 귀농·귀촌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체류형농업창업지원센터가 있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가족이 1년 동안 머물면서 영농 실습을 하며 시골 생활을 체험하는 시설이다. 총 28세대가 구비되어 있다.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가 초기에는 홍천까지 뚫렸기 때문에 십여년 전부터 서울과 경기도에서 많이 건너갔다. 귀농·귀촌인들끼리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 ‘컬러팜 웨딩’이라는 결혼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수제 맥주를 만들고 이색 팜파티를 하는 곳이다. 문화관광부의 ‘관광두레’가 초기에 잘 정착이 되었던 곳인데, 담당 PD 또한 귀촌인이었다. 도시인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감성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낸 것이다. 홍천군은 귀농체험학교와 귀농창업지원제도 말고도 마을단위로 ‘찾아가는 융화교육’을 실시해 마을 주민과 귀농·귀촌인이 서로 잘 융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영월군은 단종과 김삿갓으로 유명한 곳이다. 두 인물로 지역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으나 읍내에 있는 장릉과 청령포를 가면 단종의 애환이 느껴지고 김삿갓면에 가면 모두 김삿갓이 되어 방랑객이 되어 하룻밤 묵고 싶어진다. 지금은 박중훈과 안성기가 더 유명하다. 영화 ‘라디오 스타’의 배경지가 영월이고 두 배우는 영화의 주인공이다. ‘라디오 스타 박물관’도 생겼다. 영화의 배경이었던 옛 KBS영월 방송국을 리모델링해서 박물관으로 바꾸었다. 영화에 나왔던 청록 다방은 아직도 시내에 있다. 이렇게 소개를 하니 영월이 영화의 도시 같다. 맞다. 단종과 김삿갓은 모두 영화의 소재이자 주인공이었으니까.
영월엔 영월이 좋아 간 사람이 많다. 첩첩산중에 동강과 서강이 흐르는 곳으로 농경지가 적지만 워낙 풍광이 수려하고 생태가 살아 있어 귀촌하는 이가 많다. 귀촌하면서 작은 펜션을 지어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협력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김삿갓 흙집 이야기’라는 펜션을 운영하는 정연균 사장은 에버랜드 서비스맨 출신답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을의 사무장을 맡아 봉사도 하고 있다. 영월군은 귀농 창업 모델개발 교육 수료자 중 성적 우수자를 뽑아 1000만원을 주고, 귀농인 영농정착지원 차원에서 영농 시설과 농기자재 구입비를 지원하고, 귀농인 중에 3명을 선발해 1년 차에 월 80만원을 주고 2년 차에는 월 50만원을 주는 정착지원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올림픽과 함께 소개했던 평창군은 그래도 역시 도시인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평창군도 올림픽을 치러냈던 저력이 있는 만큼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민간이 주도하는 관광이 진짜 관광이라며 관광두레와 농촌관광경영체를 지원하고 있다. 평창군 미탄면의 청년 농가 5개가 모여 만든 ‘와우 미탄’이 대표적이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마을 일을 하며 농업과 생태계를 지키고 지역 활성화까지 노리는 5인의 청년은 평창의 미래이다. 미탄면에 가면 미탄 아리랑을 들을 수 있고 송어를 맛볼 수 있고, 아름다운 백룡동굴과 육백마지기를 볼 수 있다. 어름치마을에 가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북으로 올라가 접경지역인 철원군은 군사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탄강 용암지질과 두루미 도래지로도 더 유명하다. 화산 폭발과 함께 용암이 흘렀던 곳이라 그런지 철원 쌀은 품질이 좋다. 오대미다. 쌀과 함께 지금은 청년 귀농인이 재배하는 파프리카가 유명해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철원에서 고추냉이가 재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와사비로도 알려진 고추냉이는 일정하게 찬 물이 흐르는 곳에서만 서식하는데 철원의 샘통이 같은 환경이라 고추냉이 농장이 있다. 철원군에 가면 철원군청의 이상화 계장을 만나봐야 한다. 관광개발기획실의 농촌관광 담당인 그는 여러 책과 매체에서 소개되었을 만큼 철원을 사랑하고 철원을 알리는 여장부다.
태백산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가다가 북으로 올라가면 고성군이다. 남북한 경계선이 바다로 이어지는 곳이다. 고성군은 경상남도에도 있고 강원도에도 있다. 둘 다 해안지역이라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둘 다 물회가 맛있다. 그래도 전혀 다른 지역이다. 강원도 고성은 예전의 명성은 어마어마했다. 명태가 나던 시절에 그랬다. 화진포, 거진, 간성과 같은 이름은 다들 들어 봤을 것이다. 한적한 곳이라 일부러 귀농한 사람이 있다. 지금 고성군은 인구를 늘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아이디어 공모전도 했다. 도시인을 위해 귀농체험학교를 열고, 귀농인에게 주택수리비를 500만원가량 지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귀농·귀촌인이 오면 환영회를 열어 준다.
고성부터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의 소도시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로 오히려 젊은이의 성지가 되고 있다. 푸른 바다와 산이 주는 힘이 젊은이들을 부르고 있다. 동해안이 서핑 명소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전원주택과 펜션에서 시작된 귀농·귀촌은 지금이야말로 ‘강원도의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강원도라는 청정자연에서 삶을 즐기려 도시인이 향하고 있고, 강원도는 도시민들과 함께 힘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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