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동네 싫다…‘아파트 키즈’의 절규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19 00:31

업데이트 2021.06.1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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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호 01면

[SPECIAL REPORT]
‘기승전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전국의 아파트 수는 1128만호(2019년 기준)로 전체 주택의 62%에 달하지만, 아직도 공급이 수요에 훨씬 못 미친다. 아파트가 가장 많은 지자체는 경기도(302만호)다. 서울(172만호)보다 많다. 전체 주택 대비 아파트의 비율은 세종시(85%)가 가장 높다. 사진은 저층·고층·초고층 아파트가 공존하는 경기도 고양시·파주시의 아파트 단지 모습. 박종근 기자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전국의 아파트 수는 1128만호(2019년 기준)로 전체 주택의 62%에 달하지만, 아직도 공급이 수요에 훨씬 못 미친다. 아파트가 가장 많은 지자체는 경기도(302만호)다. 서울(172만호)보다 많다. 전체 주택 대비 아파트의 비율은 세종시(85%)가 가장 높다. 사진은 저층·고층·초고층 아파트가 공존하는 경기도 고양시·파주시의 아파트 단지 모습. 박종근 기자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새 아파트인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 입주가 시작됐다. 삼호가든3차를 재건축한 800세대 단지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지상에는 보행로를 따라 향나무와 백일홍을 심었다. 군데군데 분수와 테이블, 국내외 작가들의 미술품을 배치했다. 웬만한 공원보다 산책하기 좋다. 피트니스, 사우나에서 실내골프연습장, 실내암벽등반장까지 5000㎡ 규모의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도 마련했다. 가격은 84㎡ 기준 30억원을 넘나든다. 좁은 골목 사이로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빌라촌이나 성냥갑 같은 건물 사이로 이중 삼중으로 주차된 차량이 빼곡한 30년 된 아파트 단지와는 천양지차다.

서울 373만호 중 아파트 172만호
신축·재건축 안돼 16%가 30년 넘어

고급 대단지, 배타적 공동체로 변화
“주택가도 살 만한 동네 만들어야”

“한국에서 아파트는 그 자체로 사회 경제적 위치의 상징이 됐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차이를 ‘사회적 구별짓기’로 설명했다. 아파트 이름만으로 반포라는 지리적 위치에서 살고, 같은 반포 중에서도 디에이치 라클라스에 속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1982년 가수 윤수일이 ‘쓸쓸한 너의 아파트’를 불렀을 때만 해도 아파트는 그렇게 대중적인 주거형태가 아니었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는 80년 18만호에서 85년 30만호로 늘어나는 단계였다. 올림픽을 전후해 급증한 아파트는 2001년 100만호를 넘어섰고, 2019년에는 172만호에 달했다. 전체 주택 373만호의 46%를 차지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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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가 첫선을 보이고 가장 먼저 보급된 서울이지만 의외로 지금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부르기에는 2% 부족하다. 우리나라 국민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의 비율은 세종시가 73.1%로 가장 높고, 전국 평균은 50.1%다. 서울은 제주·전남·경북과 함께 하위권이다. 서울은 아파트가 가장 낡은 도시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16%가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 신도시 중심으로 발달한 세종(0.3%)과 경기도(4.2%)에는 상대적으로 새 아파트가 많다. 2030세대는 아파트의 대중화와 함께 자라난 ‘아파트 키즈’다. 아파트는 살기 편하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알아서 관리도 해준다. 방범·주차·청소 등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 대단지 아파트 대중화는 정부와 수요자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다. 경제개발 시기 돈이 없던 정부는 주차장·도서관·공원 등의 공공 인프라를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떠넘겼다. 대신 입주자들은 안전하고 편안한 배타적 공간을 얻었다.

이런 ‘빗장 도시(gated city)’에서 살던 아파트 키즈들이 성인이 되면서 원룸·빌라로 분가했다. 아파트와는 다른 열악한 환경에 놀라고,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인한 자산 격차에 공포를 느낀 이들은 급히 매매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부터 30대는 40대를 제치고 가장 아파트를 많이 산 연령층이 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0대 거래 비중은 올해 1월 39.6%로 연령별 통계를 발표한 2019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20대를 합치면 올 1~4월 전체 아파트 거래의 40%를 차지한다. 경기도 역시 아파트 매수자 가운데 30대가 28%로 가장 많았다. 2017년 이후 44만 명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기도 신도시 아파트로 이동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30대가 사들인 경기도 아파트는 4만5970가구에 달한다.

아파트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은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노무현 정부도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지지도가 급락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로 쏠리는 수요를 분산하려면 단지가 아닌 지역의 인프라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아파트가 아니면 살 만한 동네가 없기 때문에 아파트를 좋아하는 것”이라며 “계속해서 빌라·단독주택 동네를 방치하면 몽땅 아파트 단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벽화 그려주는 수준의 도시재생이 아니라 빌라촌에 공공 주차장·공원·도서관을 지어주는 실질적인 재생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연구한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2007년 『아파트공화국』에서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프랑스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1986년 대비 6배 올랐고(KB주택가격동향), 경기도의 아파트는 300만호를 넘어섰다. 아파트가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줄레조에게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를 답으로 제시했다. 대단지 아파트가 배타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시민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쪽에서도 대안을 내놓을 때다. 지은 지 40년이 돼가는 시영아파트, 주공아파트와 온종일 햇빛도 들지 않는 빌라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창우·김나윤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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