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새벽
김호진 지음, 윤성사
김호진(82)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통령 리더십과 노동 문제 전문가다. DJ 정부 시절 노동부장관·노사정위원장 등을 지냈고, 2008년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이라는 책을 펴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들을 품평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명예교수 말고도 현직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서울강북문협 회장이다. 시 쓰고 소설 쓰는 문인협회, 문협 말이다. 김 교수는 2015년 소설가로 등단했다. 젊은 날 자신의 연애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겨울 안개’가 등단작이다. 이 작품 제목을 ‘문경의 새벽’으로 바꾸고, 그동안 발표한 길고 짧은 단편 8편을 보태 첫 소설집 『문경의 새벽』을 출간했다. 논리와 신념의 세계에서 감성과 공감의 세계로, 학자에서 작가로의 ‘비가역적’ 변신이다.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 이런 명제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작가 배경 소개가 길었지만 작가 김호진의 세계는 간단치 않다. 세속에서 거의 모든 걸 이룬 듯한 사람이 인생 말년에 소설은 왜 쓰는 걸까. 소설의 이런 발생론적 궁금증에 답변이 될 만한 작품집이다. 김 작가의 경우 ‘쓸 수밖에 없었다’가 그 대답일 것 같다. 작가의 말에서 섬뜩한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글은 피로 써야 한다는 거다. 또 문장이 소설의 정수라고 믿는다. 뼈를 깎는 언어조탁이 짐작된다.
무엇이 그렇게 사무쳤던 걸까. 작가의 말에서 충격적인 가족사를 공개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밤손님(빨치산)에 의해 아버지가 변을 당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꼼짝없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비정상이다. 소설집에 실린 ‘그해 여름’ ‘변명’에 그런 사연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소설의 젊은 주인공들이 번번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도 모진 시대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와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느슨한 연작 소설이다. 김 작가의 소설적 분신일 마용태가 일종의 입회인이다. 여러 작품에서 세월을 증언하고 인물들을 복원한다. 작가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