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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꼭 써야했다, 노학자의 맺힌 사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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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호 21면

문경의 새벽

문경의 새벽

문경의 새벽
김호진 지음, 윤성사

김호진(82)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통령 리더십과 노동 문제 전문가다. DJ 정부 시절 노동부장관·노사정위원장 등을 지냈고, 2008년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이라는 책을 펴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들을 품평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명예교수 말고도 현직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서울강북문협 회장이다. 시 쓰고 소설 쓰는 문인협회, 문협 말이다. 김 교수는 2015년 소설가로 등단했다. 젊은 날 자신의 연애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겨울 안개’가 등단작이다. 이 작품 제목을 ‘문경의 새벽’으로 바꾸고, 그동안 발표한 길고 짧은 단편 8편을 보태 첫 소설집 『문경의 새벽』을 출간했다. 논리와 신념의 세계에서 감성과 공감의 세계로, 학자에서 작가로의 ‘비가역적’ 변신이다.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 이런 명제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작가 배경 소개가 길었지만 작가 김호진의 세계는 간단치 않다. 세속에서 거의 모든 걸 이룬 듯한 사람이 인생 말년에 소설은 왜 쓰는 걸까. 소설의 이런 발생론적 궁금증에 답변이 될 만한 작품집이다. 김 작가의 경우 ‘쓸 수밖에 없었다’가 그 대답일 것 같다. 작가의 말에서 섬뜩한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글은 피로 써야 한다는 거다. 또 문장이 소설의 정수라고 믿는다. 뼈를 깎는 언어조탁이 짐작된다.

무엇이 그렇게 사무쳤던 걸까. 작가의 말에서 충격적인 가족사를 공개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밤손님(빨치산)에 의해 아버지가 변을 당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꼼짝없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비정상이다. 소설집에 실린 ‘그해 여름’ ‘변명’에 그런 사연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소설의 젊은 주인공들이 번번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도 모진 시대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와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느슨한 연작 소설이다. 김 작가의 소설적 분신일 마용태가 일종의 입회인이다. 여러 작품에서 세월을 증언하고 인물들을 복원한다. 작가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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